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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1호 2018년 4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진영 싸움’ 아닌 ‘가치 싸움’ 보고 싶다

방문신 SBS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


기자로 밥벌이를 한 지 만 30년이 넘었다. 좋게는 ‘거악척결의 한 축’, 나쁘게는 ‘권력에 기생하는 부패의 한 축’으로 입방아에 오르내리지만 그래도 누군가 기자의 업(業)을 묻는다면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꿔 생각해보는 사람들”이라고 답한다. 폼나게 말하면 ‘진실찾기’이다. 진실은 흔들리지 않는 판단기준이다. 그러나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꿔보는 못된(?) 직업적 습관은 여기서 도출되는 전제를 쉽게 허(許)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진실 앞에서 겸허하고, 그래서 진실의 가치는 정치적 진영논리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당연한 듯한 문장에도 물음표를 던지는 것이다.


대중들은 누군가 권력의 위선을 폭로할 때 환호한다. 진실을 향한 진군을 응원한다. 동시에 그 공격수들이 무기로 활용했던 가치가 (정의든, 인권이든, 먹고 사는 문제든) 그들 내부에서는 더 엄격하게 적용되길 기대한다. 상대 진영에게 ‘손목을 자르라’고 공격했다면 자기편에게는 ‘팔뚝을 자르라’는 아픔을 감내해야 한다. 진짜 가치라면 응당 그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과연 그런가? 애국을 외치는 진영이 자식을 군대에 안 보내는 자기모순의 민낯을 드러내며 ‘안보 가치’의 진정성을 상실했듯이 최근 그 반대 진영 또한 자기 가치에 대한 이중성을 드러냈다. 이른바 ‘젠더’이슈가 ‘미투! 운동’으로 확산되며 아이러니컬하게 진보진영을 불태우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 보여준 대응이 그러했다. 상대 진영을 공격할 때의 날카롭던 송곳 논리는 돌연 ‘음모론’으로 물타기 되고 “미투 운동이 변질됐다”는 솜방망이 논리로 바뀌었다. 이런 건 가치가 아니다. 가치를 상대 진영의 공격무기로 활용했을 뿐이라는 부끄러운 고백이다. 얼치기 진영주의자가 아닌 진짜 가치주의자들은 현 정부가 인사청문회 5대원칙(탈세, 투기, 병역특혜, 위장전입, 논문표절 불가) 약속조차 못 지킨 것을 안타까워 한다. 상대 진영을 욕했던 그 이상의 부도덕한 사례가 나왔는데도 ‘불법은 아니었다’며 옹호했던 이중 잣대를 어떻게 설명한 것인가? 진영을 택할 것인가, 가치를 택할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가치를 포기한 셈이다. 독배였다. 그때의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은 “가치와 진실은 진영논리를 뛰어 넘을 것”이라던 기존 생각의 마침표를 물음표로 바꾸는 단초가 됐다.


권력 속성상 선한 권력은 없다고 한다. 선하다고 착각하는 권력자가 있을 뿐이다. 선(善)과 정의에 대한 자기확신이 강할수록 그 권력은 진실을 명분 삼아 ‘확증편향(자신의 생각과 일치하는 내용만 받아들이고 일치하지 않는 내용은 무시하는 태도)’으로 흐를 수 있다. 상대 진영에는 가혹하고, 자기 진영에는 관대해지는 오류이다. 그 오류가 몰고 올 권력의 불행을 막기 위해서라도 ‘동일 가치, 동일 잣대’의 원칙은 더더욱 중요하다. 그래야 편가르기와 죽기살기 싸움의 무한반복도 멈출 수 있다. 싸우더라도 ‘진영 패싸움’이 아닌 ‘가치의 싸움’이 가능해진다. 위선의 껍데기가 사라진 진짜 가치 싸움을 보고 싶은 것이다.


방문신(경영82-89) SBS 논설위원·본지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