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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호 2005년 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서울대의 「천연기념물」

 내가 취재한 `박사' 가운데 영국 우주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은 경이로운 석학이다. 그가 머리 속으로 창안한 모형에 따르면 우주는 지금처럼 계속해서 팽창하다가 언젠가는 다시 수축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원점으로 돌아가고 만다. 이러한 `사고실험'을 그는 거듭한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컴퓨터 언어합성기를 조종해서 나의 질문에 짤막하지만 명쾌하게 답변했다.  얼마 뒤 나는 서울대학교가 자연과학대학 천문학과 교수로 새로 영입한 30대의 朴昌範박사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서 우주론을 전공한 그는 지도교수와 함께 슈퍼컴퓨터 모의실험(시뮬레이션)으로 초기우주로부터 중력에 의해 은하계들이 생성되는 과정을 재현하고 우주의 크기를 산출해 한국 우주물리학의 자랑거리가 됐다. 그는 탁월한 미국 박사이다.
 요즘 `미국 박사'에 관한 분석자료가 나와서 우리를 성찰하게 만든다. 서울대학교의 인터넷 뉴스 스누나우가 한 시사주간지와 공동으로 심층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대학교가 미국 바깥에 있는 대학만 놓고 보면 미국 박사 취득자수 1위이다.  한국 땅에 미국 박사가 풍미하는 것은 사실이다. 대학에서 교수를 임용할 때도 외국 박사와 국내 박사를 따로 서열화하여 점수를 합산하는 실정이다. 개인적으로는 서울대학교를 비롯한 국내대학 박사에게 대등한 비중을 두고 싶지만 `서열규격'으로 말미암아 `미국 박사 우선'으로 기울어지는 것을 본다. 미국 박사를 열망하는 풍토는 미국대학의 연구환경이 한국대학 보다 낫다는 점에서 비롯한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수가 되려면 미국 박사가 필수라는 한국적 병리현상이 고착되었다고 보는 것이다.  비판자들은 특히 사회과학계열에 미국 박사가 더 심하게 편중된 현상을 염려한다. 미국 박사학위 소지자들이 가지는 문제의식이 우리 현실과 맞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어떤 기사를 보니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의 몇 안 되는 국내 박사를 `천연기념물'이라고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공계의 천연기념물이라면 체세포 복제 유래 줄기세포 배양연구로 세계적으로 떠오른 黃禹錫박사이다. 그는 서울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토종학자이다.  지금부터 서울대학교는 실력 있는 토종박사를 배출하고 미국 외의 여러 나라 박사를 균형 있게 흡수하는 방책을 세울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