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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2017년 6월] 뉴스 기획

당신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모교 출신 호국영웅 7인


당신들이 있어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모교 출신 호국영웅 7인


일러스트=소여정(디자인09-13) 동문



올해로 6·25 전쟁이 발발한 지 67년이 된다. 본지는 2015년 6월호(447호)에서 기획 ‘서울대와 6·25’를 통해 재학생 전몰자를 재조명하고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아직 찾지 못한 순국자를 비롯해 한국전쟁에 젊음을 바친 동문들은 더욱 많을 것이다.
2015년 한국군사문제연구원은 ‘지역별, 학교별, 주요 전투별 호국영웅 발굴 및 선양방안 연구’ 보고서를 발간했다. 그동안 부각되지 않았던 지역의 호국 영웅을 발굴한다는 취지였다. 이 연구 결과에 7명의 서울대 출신 호국영웅이 포함됐다. 심 일, 김용섭, 김용배, 김창기, 안영걸, 강승호, 함준호 동문이다.
이들 중에는 직업 군인뿐만 아니라 학도의용군도 있다. 학도의용군은 개전 초 국군의 병력 보충에 큰 역할을 했다. 고 김재순(경제47-52) 본회 고문, 고 김영삼(철학47-51) 전 대통령도 학도의용군에 입대해 전쟁을 치렀다. 서울대 70년사에 따르면 한국전쟁 학도의용대로 참전해 전사한 서울대생은 22명이었다. 서울대 출신 호국영웅으로 알려진 7명의 이름과 그 공적을 소개한다. 정리=박수진 기자



어론리 전투서 전차특공대 자원
강승호 (1924.2.6~2008.3.8) 모교 화공과 출신(추정)


강승호 동문은 신경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제9기생으로 입교해 1950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보고서에는 모교 화공과 출신임이 병기돼 있다. 제6사단 제2연대 제5중대 소대장으로 1950년 홍천 북방 어론리 전투에 참전해 20명의 전차특공대를 자원해 편성하고 적군 전차에 뛰어올라 수류탄을 던져넣었다. 이어진 2.36인치 대전포 공격에 선두 전차 2대가 파괴되고 후속 전차 8대가 후방으로 도주하는 전과를 올렸다. 1950년 12월 화랑무공훈장을 수훈했다.



영천전투 승리로 낙동강방어선 사수

김용배 (1923.4.21~2006.3.13) 서울법전 졸업


김용배 동문은 모교 법대 전신인 서울법전을 졸업하고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해 1946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제8사단 제21연대장으로 참전한 김 동문은 1950년 9월 낙동강방어선 사수를 결정짓는 영천전투에서 승리에 지대한 공헌을 세웠다. 당시 북한군이 영천을 점령한 다음 대구로 진출하기 위한 최후공세를 준비하던 상황이었기에 이는 수세를 공세로 전환시키는 원동력이 됐다. 영천지구전투를 비롯한 많은 전투에서 세운 공로로 1953년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했다.



포항지구 전투서 학도병중대 지휘
김용섭 (생몰연도 미상) 사범대 2학년 재학 중 참전


김용섭 동문은 사범대학 2학년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했다. 개전 초기 조직된 ‘대한학도의용대(수도사단 학도의용대)’ 중 71명이 포항여중에서 부대를 재편했을 때 중대장을 맡아 포항여중 전투에서 탁월한 지휘력을 발휘했다. 포항여중 전투는 포항 점령을 기도한 북한군의 공격을 수회에 걸쳐 저지하고 국군 제3사단 및 포항 시내 아군부대의 철수를 위한 시간을 제공함으로써 아군의 재편성 및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다.



406고지 전초진지쟁탈전 중 산화
김창기 (1926.3.10∼1953.7.24) 상과대학 재학 중 참전


김창기 동문은 상과대학 재학 중 육군 장교과정(갑종 4기)에 입대해 1951년 육군 소위로 임관됐다. 제7사단 제3연대 제1대대 제1중대장으로 1953년 김화지구 별우 전초진지인 406고지 및 425고지 전투에 참전해 적과 교전하던 중 적의 포탄에 의한 전신 파편상으로 현지에서 전사했다.
화천 북방 425고지와 406고지 전투는 유엔군과 공산군 양측이 휴전협정 체결을 앞두고 치열한 마지막 공방전이 벌어지던 곳으로 중공군의 집요한 공격으로 고지의 상실과 탈환을 거듭한 끝에 제16연대 제1대대가 승리했다. 김 동문은 을지무공훈장을 수훈하고 육군 대위로 추서됐다.



육탄공격으로 북한군 자주포 격파
심 일 (1923.6.5∼1951.1.26) 교육학과 2학년 수료 후 참전


심 일 동문은 사범대학 교육학과 수료 후 육군사관학교 제8기로 입교해 1949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제6사단 7연대 대전차포대 2소대장으로 참전해 1950년 6월 춘천지구 전투에서 특공조 5명과 수류탄, 화염병을 들고 육탄공격을 감행해 조선인민군 자주포 3대를 격파했다. 음성 전투와 영천지구 전투 등에서도 탁월한 전투능력을 발휘했으나 1951년 영월지구 전투에서 정찰 도중 적군의 총격으로 전사했다. 1961년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했으며 육군 소령으로 특진 추서됐다.



학도병중대로 포항지구 전투 참여
안영걸 (1928.3.1~2012.8.14) 수의학47-51


안영걸 동문은 수의학과 2학년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자원입대해 제3사단 소속의 학도의용군으로 1950년 포항지구 전투에 참전했다. 학도병중대는 부족한 병력과 무기를 가지고 11시간 동안 네 차례에 걸친 북한군의 파상공격을 저지했고 실탄이 바닥난 후에는 수류탄을 던지며 최후까지 백병전을 전개했다. 이 전투에서 학도병 48명이 전사하고 5명만이 생존했으며, 행방불명 4명, 포로 13명, 부상후송은 6명이었다. 학도병들의 항전으로 포항 시민들은 영일만에서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다.



창동전투서 서울 사수 위해 적 전차에 대항
함준호 (1921.11.17~1950.6.27) 경성법전44졸


함준호 동문은 모교 법과대학 전신인 경성법학전문학교 졸업 후 군사영어학교에 입교해 1946년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제7사단 1연대장으로 부임한 함 동문은 전쟁 발발 후 동두천과 의정부 방어를 맡다가 서울 사수를 결의하고 창동 전투에 참전했으나 우이동으로 접근하는 적군의 전차에 맞서다 전사했다. 개전 이래 연대장으로서 최초의 전사자였으며 수도를 사수하고자 결사항전한 정신이 많은 지휘관의 귀감이 됐다. 1951년 7월 태극무공훈장을 수훈했으며, 육군준장으로 추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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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전 참전군인 찾아 26개국 여행한 김예진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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