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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2017년 6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서울대 폐지론과 서울대인의 책임

채경옥(경영86-90) 매일경제신문 주간부국장, 본지 논설위원



‘서울대 폐지론’이 다시 화두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5월 대선에서 ‘국공립대 통합네트워크’ 를 만들어 학생 선발과 학위 수여를 공동으로 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한 탓이다. 극심한 학벌주의를 없애기 위해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지난 1996년 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서울대의 나라’라는 저서에서 처음 이슈를 제기한 이래 이른바 진보정치권의 단골메뉴가 됐다. 2004년 노무현 정부 때는 실제로 대통령직속 교육혁신위원회에서 서울대 폐지를 구체적으로 공론화 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이해찬 당시 교육부장관의 주도로 이뤄진 교육개혁은 ‘한 가지만 잘해도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게 하겠다’는 달콤한 목표를 내세웠다. 하지만 지난 30년간 공교육은 더 황폐화됐고 학생들은 한 가지가 아니라 백 가지를 잘해도 원하는 대학을 가기 어렵게 됐다. 그 공백은 고스란히 사교육이 메웠다. 가계는 사교육 부담에 무너지고 국민들은 기회의 사다리조차 없어져버린 현실에 절망했으며 아이들은 초등생부터 스펙과 입시경쟁에 내몰리게 됐다. 차라리 전두환 정권 때처럼 학력고사 점수로 줄세우는 게 더 낫겠다는 자조가 나올 정도다.


서울대 폐지 찬성론자들은 입시폐해를 막기 위해 학벌주의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부터 없애자고 주장한다. 이들은 1968년 이후 프랑스가 모든 국립대학을 파리1∼13대학으로 평준화 한 사례를 든다. 하지만 그런 프랑스가 그랑제꼴이라는 별도의 엘리트 교육기관을 두고 있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서울대 폐지론은 하버드, 옥스퍼드가 전 세계적인 입시 경쟁을 유발하고 있으니 하버드, 옥스퍼드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만큼이나 어처구니 없는 것이다. 서울대를 하버드 이상의 세계 최고 대학으로 육성할 궁리를 해도 모자랄 시간에 도토리 키 맞추기나 하겠다는 발상이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지금 한국은 소득 5만달러의 선진국으로 재도약을 하느냐, 아니면 중진국 함정에 빠져 주저앉느냐의 중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 속에서 세계를 상대로 최고의 아이디어와 기술을 찾아내고 구현할 인재들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이다.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인 서울대 폐지논쟁이 당장 중지돼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서울대인들의 처절한 자기반성 또한 절실한 시점이다. 시흥캠퍼스를 둘러싼 갈등, 걸핏하면 터져나오는 교수들의 추문, 대학입시 파행의 정점에서 이기주의의 극단을 선도하고 있는 서울대의 입시정책 등이 서울대에 대한 국민적 믿음을 갉아먹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대다수 서울대인들이 국가 중추조직의 핵심에 있으면서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속에서 권력의 하수인 노릇에 급급했던 서울대인들의 모습 역시 국민적 실망과 배신감을 안겨줬다. 국가 조직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 최상층부에 포진해 있는 서울대인들이 서울대인으로서의 자긍심, 지식인으로서의 양심, 국가의 녹(祿)을 먹는 관료로서의 바른 처신, 국가의 미래에 대한 고민과 자기희생 없이 그저 일신의 부귀영화와 특권, 특혜에만 골몰한다면 서울대 폐지론은 언제고 벼락같이 현실화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