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3호 2005년 2월] 뉴스 본회소식
「서울대 법대 백년사」를 읽고
尹 亨 燮 (연세대 명예교수)
근대 법학교육 맥락 이어져
역사서술이란 그 대상이 국가이든 대학이든 집필자의 객관적인 역사관과 그의 史官으로서의 성실성이 확보되지 않으면 엄연한 역사적 사실마저 과장되고 확대되거나 축소되고 왜곡되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에 언제나 대의명분에 입각한 春秋筆法과 엄정한 正論直筆을 요구받게 된다.
우리 나라 근대화의 여명기에 근대적 재판제도의 근간이 되는 재판관을 양성하기 위해서 1895년에 설립한 법관양성소가 그 후 어떻게 승계되어 그 법통이 오늘의 서울대 법대에까지 어떻게 이어졌는지 비전문가에게는 매우 생소하겠으나 도리어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을 만큼 그 법통승계가 분명히 밝혀져 있다.
이미 우리와는 유명을 달리해버렸으나 마지막까지 이 책을 붙들고 고민했던 金禧鎭상임편찬위원이 이 점에 관한 남모를 고뇌를 실토한 것도 실은 법통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고비마다 있었던 정치적 격랑 속에서 학교측에 가해졌던 당국의 조치와 학교측이 취했던 대응을 어떻게 해석하고 기술할 것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던 것으로 짐작한다(편찬후기 참조).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의 간행을 학교가 아닌 동창회가 맡게된 것은 다행한 귀결이라고 생각된다. 법관양성소(1895~1908), 법학교(1909~1911), 경성전수학교(1912~1921), 경성법학전문학교(1922~1945), 경성제대 법문학부(1928~1945), 서울대 법대(1946~현재)로 이어지는 근대법학교육 1백년의 역사 속에서 한결같이 국가가 그들의 설립 및 운영주체였고 그 역사과정 속에 국가의 변란과 주권의 침탈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에서나마 여전히 정치적 현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다른 의견이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역사란 언제나 영광과 치욕이 한 대 엮어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명암과 희비가 엇갈리게 되어 있다. 진정한 역사는 정직한 역사이며 이는 영욕을 선별해서 기술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경성법전과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서울대 법대 백년사'에 포함시켜 엮는 것은 도리어 성실한 역사기술로서 누구에게나 높은 설득력을 갖는다. 숱한 변고와 풍랑 속에서도 근대 법학교육의 맥락은 1백년간 그렇게 해서 단절 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1984년 5월 24일 서울대 법대동창회 정기총회에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백년사'를 발간하기로 의결한 이래 만 20년의 세월을 겪고서야 비로소 이 책이 완성된 것도, 그리고 출범 1백년에서 다시 10년이 경과한 이제야 출간된 것만 보아도 이 역사서의 발간작업이 얼마나 난공사였는지 알만하다. 그런 점에서 玄勝鍾편찬위원장이 그의 간행사에서 "우리는 1백년사의 장절에 그 역사의 굽이굽이를 기술하면서 도그마나 편견 없이 가감 없는 사실 그대로를 담아내기 위해 史官的인 소임을 수 없이 다짐하곤 했습니다"라고 토로한 것은 많은 식자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대학에 몸을 둔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이 같은 난공사를 소신과 집념을 갖고 성사시킨 玄勝鍾편찬위원장, 李相赫 前동창회장, 金禧鎭상임편찬위원장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경의와 함께 찬하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우리 나라 법학전문교육제도의 개혁이 목전에 당도한 이때 溫故知新의 교훈을 담은 이 책의 출간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고 시의 적절하다고 하겠다. 다만 한가지, 지난 1백년동안 우리 나라의 법학교육과 법 실천의 발전을 위해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연구했으며 그것이 한국정치와 한국사법제도의 변혁 및 그 운영과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이 나라 모든 후발 대학에서의 법학교육과 연구를 어떻게 선도했는지 더욱 극명하게 부각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우리와는 유명을 달리해버렸으나 마지막까지 이 책을 붙들고 고민했던 金禧鎭상임편찬위원이 이 점에 관한 남모를 고뇌를 실토한 것도 실은 법통문제가 아니라 역사의 고비마다 있었던 정치적 격랑 속에서 학교측에 가해졌던 당국의 조치와 학교측이 취했던 대응을 어떻게 해석하고 기술할 것인가 하는 것 때문이었던 것으로 짐작한다(편찬후기 참조). 그런 점에서도 이 책의 간행을 학교가 아닌 동창회가 맡게된 것은 다행한 귀결이라고 생각된다. 법관양성소(1895~1908), 법학교(1909~1911), 경성전수학교(1912~1921), 경성법학전문학교(1922~1945), 경성제대 법문학부(1928~1945), 서울대 법대(1946~현재)로 이어지는 근대법학교육 1백년의 역사 속에서 한결같이 국가가 그들의 설립 및 운영주체였고 그 역사과정 속에 국가의 변란과 주권의 침탈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일부에서나마 여전히 정치적 현실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다른 의견이 제기될 수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역사란 언제나 영광과 치욕이 한 대 엮어져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언제나 명암과 희비가 엇갈리게 되어 있다. 진정한 역사는 정직한 역사이며 이는 영욕을 선별해서 기술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경성법전과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서울대 법대 백년사'에 포함시켜 엮는 것은 도리어 성실한 역사기술로서 누구에게나 높은 설득력을 갖는다. 숱한 변고와 풍랑 속에서도 근대 법학교육의 맥락은 1백년간 그렇게 해서 단절 없이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1984년 5월 24일 서울대 법대동창회 정기총회에서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백년사'를 발간하기로 의결한 이래 만 20년의 세월을 겪고서야 비로소 이 책이 완성된 것도, 그리고 출범 1백년에서 다시 10년이 경과한 이제야 출간된 것만 보아도 이 역사서의 발간작업이 얼마나 난공사였는지 알만하다. 그런 점에서 玄勝鍾편찬위원장이 그의 간행사에서 "우리는 1백년사의 장절에 그 역사의 굽이굽이를 기술하면서 도그마나 편견 없이 가감 없는 사실 그대로를 담아내기 위해 史官的인 소임을 수 없이 다짐하곤 했습니다"라고 토로한 것은 많은 식자들의 공감을 일으키는 대목이다. 이런 점에서 필자는 대학에 몸을 둔 독자의 한사람으로서 이 같은 난공사를 소신과 집념을 갖고 성사시킨 玄勝鍾편찬위원장, 李相赫 前동창회장, 金禧鎭상임편찬위원장을 비롯한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경의와 함께 찬하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우리 나라 법학전문교육제도의 개혁이 목전에 당도한 이때 溫故知新의 교훈을 담은 이 책의 출간은 매우 시사하는 바가 크고 시의 적절하다고 하겠다. 다만 한가지, 지난 1백년동안 우리 나라의 법학교육과 법 실천의 발전을 위해 누가, 언제, 무슨 목적으로, 무엇을, 어떻게 가르치고 연구했으며 그것이 한국정치와 한국사법제도의 변혁 및 그 운영과 발전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이 나라 모든 후발 대학에서의 법학교육과 연구를 어떻게 선도했는지 더욱 극명하게 부각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