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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9호 2017년 4월] 기고 에세이

삼봉 정도전 법치사상과 조선경국전

특별기고 서정화 회장

대외적으로 혼란스럽다. 여말 선초 혼란기를 극복한 삼봉 정도전(1342-1398)의 통치제도 구상과 사상적 토대를 찾아 그의 법치사상의 시사점을 중심으로 혼란한 사회를 재구조화 시킬 수 있는 법치 제도적 측면에 한정해 살펴보고자 한다.


삼봉은 조선의 정치체제뿐만 아니라 정신적 기초를 놓은 것으로도 평가된다. 삼봉이 살았던 고려후기 조선 개국기는 불교폐단, 권문세가의 횡포와 백성들의 피폐가 극에 달했고, 태생적으로는 그의 외조모, 모친이 노비출신이라는 사회적 냉대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극심한 가난과 9년간의 유배생활 과정에서 다양한 민초를 만나 초야에서 생활하고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만들기 위한 공전(公田)제 재상중심사회 등을 꿈꾸며 세상을 주례의 실천대상으로 인식했다. 특히 혈통상의 문제가 그의 혁명관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평가된다.


삼봉의 법칙체제의 특징과 평가 측면을 보면 조선경국전의 입법체계 구상은 두 가지가 특징적이다. 먼저 법전의 모두(冒頭)에 주례에 없는 왕에 대한 부분을 뒀다는 점으로 왕권의 궁극적 정당성은 백성의 의사에 있다고 했다. 다음은 재상론이다. 총재(?宰, 宰相)가 모든 실무를 장악한다고 했다. 


정도전은 자기 정체성의 기반인 정통 주자학뿐만 아니라 주자학에서 배격한 사공학(실제적인 효과를 중시하는 실용적인 경세치용의 학문)계열의 사상도 적극 활용했다. 이와 같은 절충을 통해 정통 성리학과 경제론, 제도론을 확대·강화한 조선의 정치체제를 정립코자 한 것이다. 즉 주자학, 사공학, 경제학을 원용하여 왕조의 통치 질서 체제를 구축하고자 했다.


삼봉이 생각했던 경세제민이란 결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고 쉬우면서도 그 혜택이 일반 백성들에게 미치는 실용적인 것이었다. 민본정치, 위민정치 등이 통치의 원칙을 제시한 것이라면 삼봉이 고민한 것은 어떻게 그 이상을 성취할 것인가였다. 그는 오랜 유배생활을 통하여 백성들이 원하는 세상이 학자들이 머릿속에 그리는 추상적인 것이 아니라 매우 실제적인 것임을 깨달았다.


삼봉의 법치사상에서 도출되는 현대적 시사점 중에서도 민본사상은 민심을 근본으로 하는 사상이다. 제도적 측면의 실천으로 과전법을 경기도 일원에서 시행한 결과 소농민의 안정화와 개국을 위한 경제적 토대를 구축하게 된다.


조선경국전은 주례의 육전체제를 기본모델로 하고 중국의 역대 제도를 수렴하여 조선의 현실에 맞게 조정한 통치규범으로 인치(人治)가 아닌 법치국가로 정초한 최초의 법전적 성격을 띤 사찬(私撰)이었다. 현대 헌법사적 의의를 살펴보면 첫째, 삼봉은 조선의 정치체제 기초와 정신적 기초를 놓은 것으로 조선 500년의 정치 이념적 근간을 정립하였다고 평가된다. 조선의 건국자들은 국가공동체를 이념의 정치지도와 법전화를 통한 외적 제도화(法治)와 수양과 교육을 통한 내적 제도화(修己)를 통하여 규율하려고 했다. 삼봉의 건국이념은 조선백성의 정신적 삶의 현세화와 정치적 삶의 윤리화 및 폭정 방지를 위한 권력균형의 제도화 등을 특징으로 한다.


둘째, 삼봉은 성리학을 정치적으로 재해석하고 백성을 정치의 목적으로 재발견했으며 조선 정치제도의 모범을 제시했다. 그의 이런 사상은 조선왕조사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백성 중시, 군주권 축소와 재상권 확대, 감사권과 언로 개방, 토지제도 개혁 등 제도적, 정책적 차원에서 백성의 삶의 질을 보장하기 위한 혁명적인 접근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셋째, 조선경국전은 정치이론서인 동시에 조선왕조의 최초의 헌법에 해당하며 근대헌법 이념의 핵심적 요소를 구비했다고 평가된다. 조선경국전은 한국사상사 상 관념과 의지가 일치를 이룬 대표적인 지행합일의 저술로서 훌륭한 정치학원론이 됐다. 이후 경국대전, 속대전, 대전회통 등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기본법전인 경국대전은 큰 틀에서의 변화 없이 500여 년 동안 유지되는데 이것은 조종성헌주의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조종성헌주의는 후대 왕이 선대에 만든 법을 함부로 바꿀 수 없다는 원칙이다.


조선경국전은 근대헌법의 전문의 성격을 보유했다. 헤겔(1770-1831)은 동양에는 헌법(Verfassung)이란 관념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조선에서 14세기에 유교적 통치원리에 의한 입헌주의(constitutionalism)가 구상, 실천되었다는 사실은 세계의 법사상에서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끝으로 외래사상의 독자적 주체화이다. 조선경국전은 주례의 육전체제를 조선의 현실에 맞게 조정한 법제정책이었으나 주례에서는 재상제도와 과거제 등을, 한·당 제도에서는 집권구조와 군사 군현 제도 등을, 대명률에서는 형법제도를 조선시대에 맞게 도입한 삼봉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중국 이상의 수준으로 사고하고 있었다. 이것이 오늘날 민족적 자주의식을 뒷받침하는 정신적 토대가 된 것으로 매우 독창적이다. 실로 삼봉의 민본적 법치제도 통치체제의 균형, 군주의 견제와 민생보호의 정신 등에 흉금을 바로 여미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