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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2017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느티나무 광장] 반쪽의 정치, 쪼개진 나라

방문신 본지 논설위원, sbs 선임기자(미국 연수중)


올 1월부터 LA소재 USC(남캘리포니아대학) 아시아 태평양 리더십센터 객원연구원으로 미국의 이것저것을 경험 중이다. 지난달 USC 행정처에서 메일이 왔다. ‘스톱 트럼프’라는 주제의 토론회 겸 집회에 참석해달라는 안내문이었다. 특히 반(反)이민 행정명령 이슈에 당신 같은 객원연구원이 반대의 힘을 실어주면 좋겠다는 취지였다. 대학 행정처가 외국인에게 반정부 집회 참석을 독려하다니? 처음엔 의아했지만 트럼프가 만들어낸 반쪽의 정치, 쪼개진 미국, 분열된 세계가 동시에 느껴졌다.


반쪽의 확증 편향…그 대가는?


캘리포니아는 트럼프 당선 후 캘릭시트(캘리포니아+엑시트, 캘리포니아 분리) 얘기까지 나올 정도로 트럼프 혐오가 심한 곳이다. 대중적 주목도가 높고 언론의 반향이 큰 할리우드의 진보성향까지 가세해 더 그런 분위기가 느껴진다. 가수 마돈나는 “폭압의 시대를 거부한다”며 ‘Fuck you’라고 욕설까지 했다. 오버액션이지만 언론 입장에서는 그런 게 다 뉴스다. 트럼프는 이런 언론에 대해 ‘가짜 뉴스, 미국의 적’이라고 노골적 적대감을 드러내고 있고 언론은 언론대로 연일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미국 언론과 정치의 전통인양 얘기돼왔던 ‘취임 30일 허니문’은 찾아볼 수 없다. 곳곳에서 미국이 둘로 쪼개져 서로를 욕하는 상황이다. 같은 욕인데 상대의 욕은 악이고 내 욕은 선이라고 믿으니 상대에 대한 존중, 포용, 여유는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LA의 동창회 선배들도 미국 분위기가 달라졌다고 말한다. “과거 미국인들은 눈만 마주쳐도 웃으며 인사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요즘은 미국인들끼리도 인사도 않고 짜증이 많아진 느낌”(권희재·경영80-84 남가주 동창회장, 93년 이주) “중산층 동네에 유색인종이 들어와 기존 백인들이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불만을 노골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느낌”(강호석·경영81-94 전 미주상대동창회장, 86년 이주)이라고 한다.


미국 출장 때면 그렇게 많이 들렸던 ‘Hello’, ‘Excuse me’ 소리가 이젠 잘 들리지 않는다. 트럼프 시대는 미국인들의 그런 불만과 확증 편향의 산물이다.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사가 희망의 단어 대신 ‘살육(Carnage), 고갈(Depletion), 황폐(Devastated)’ 같은 선동의 단어로 채워졌던 것도 우연이 아니다. 트럼프는 그 ‘불만의 반쪽’에 베팅했고 당선이라는 전리품을 얻었다. 그러나 곳곳에서 노출되고 있듯 그 반쪽의 정치는 반쪽의 미국, 반쪽의 세계로 연쇄반응하면서 세상을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 비판언론에 대한 폭주, 이민자의 나라에 채운 빗장, 미국이 구축한 기존 세계질서의 자기 부정, 벼랑 끝으로 몰린 국제적 공생과 가치 등이 그 반쪽 정치의 대가인 셈이다.         
       
진영논리 해방이 반쪽 탈피의 출발
 
반쪽 탈피, 분열 탈피는 내 편, 네 편의 진영논리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에서 출발해야 한다. 나에게 또는 내 편에  불리할지라도 진실에 대해서는 진지해야 하고 시선은 미래를 향해야 한다. 그 의미를 무겁게 인식하면 반쪽에서 벗어날 수 있고, 그 의미를 깜빡하는 순간 반쪽에 갇히거나 아예 훅 가버릴 수 있다. 그게 정치다. 반쪽 정치는 잘 나갈 때는 추진력처럼 보이지만 취약할 때는 작은 바람에도 휘청거린다. 뿌리가 절반밖에 깊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대통령들의 임기 말 비극 역시 따지고 보면 다 그런 이유 아니었을까? 미국에서 트럼프의 반쪽 정치를 보면서 한국 정치가 오버랩 되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