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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2017년 3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명사칼럼] 한국 민주주주의 험난한 운명

송상현 유니세프 한국위원회장, 모교 명예교수


우리는 한국이 경제성장과 민주주의를 동시에 달성한 유일한 나라라고 자랑하기를 좋아한다. 사실 우리 국민은 거의 불가능한 목표를 손수 달성했다. 따라서 민주주의의 발달사를 알기 위해 학교 때에 배운 영국헌정사를 다시 되돌아보거나 민주주의는 국민의 피를 먹고 자란다는 프랑스혁명의 예를 들출 필요도 없다. 또 우리가 민주적 정치시스템을 운영해오는 동안에는 200년 이상 유지해온 미국의 대통령중심제와 의회정치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다.


그런데 이제 서구민주주의는 국내외적으로 거센 도전을 받고 있고 그에 대한 환상도 깨졌다고 하겠다. 우선 국제적으로 세계화의 진행과 함께 신장되어온 민주주의가 커다란 도전을 받고 있다. 중요한 세계화현상으로는 레이건-대처시대의 과감한 규제철폐, 우루과이 라운드로 시작된 국제통상자유화 그리고 거대한 중국시장의 개방 등을 들 수 있다. 세계화란 결국 사람, 물자, 자본, 기술의 자유로운 이동을 의미하였으나 이제는 뉴욕세계무역센터의 공격을 비롯한 대형 테러의 빈발과 난민의 폭증으로 이러한 자유의 시대는 끝나버린 것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인 인권이나 법의 지배 등이 위협받으면서 시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많은 시도가 국제적으로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소박하게 말하자면 시민의 권리와 책임이 보장되는 전제 하에 건전한 정당의 기능에 기초를 두고 민의를 집약하는 대의정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유감스럽게도 민주주의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다. 우선 민주정치에 가장 중요한 정당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국회의원 몇 사람이 당면한 이해관계를 토대로 적당한 명분을 세워 즉흥적으로 정당을 만들고 부순다. 정당은 민초들을 토대로 조직되어 그들의 바람을 실현하고 그들 삶의 현실을 개선하는 정책을 마련하여 이를 입법화함으로써 민의를 대변하는 것이 아닌가. 민주정치운영의 기본인 정당제도의 기능부전으로 민의를 수렴하여 정책결정을 하는 대의민주주의가 실종되어 가고 있고, 국민이 뽑아서 국회로 보낸 대변자들이 국회에서 항상 정당 간에 머리를 맞대고 나라의 정치를 리드하면서 국민의 민생과 복지를 챙기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정당은 국민과 유리되어 있는 또 하나의 기득권세력일 뿐이고 그 지도자들은 정치현실이 엄중함에도 불구하고 국회에는 없고 촛불시위에 참여하거나 자신의 정치욕을 위하여 전국을 헤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민들이 자기의 분노와 좌절감을 표시하기 위하여 촛불시위를 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다. 더구나 시위군중은 질서와 평화를 지켜 세계의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정치지도자들은 밤낮 촛불광장의 앞줄에 둘러앉아 있기보다는 정당을 통해 민심을 정확히 파악하여 구체적이고도 실현가능한 정책을 신속하게 내놓는 것이 임무이다. 국민이 촛불광장에 모두 모여 직접민주주의방식으로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아닐진대 지도자들은 자기의 정위치와 책무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촛불시위를 통하여 분출된 국민의 의사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중요한 현안을 재판하는 사법부에 압력을 가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민주주의의 장래는 없다. 민주주의는 사법부의 독립을 전제로 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험난했던 헌정사에 비추어 사법부의 독립을 강력한 행정부의 간섭과 탄압으로부터의 독립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사법부가 언론이나 사회의 여론 등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으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어려워진다. 더구나 시위대가 사법부 앞으로 진출해서 고성을 지르는 것은 전연 바람직하지 못하다.


바야흐로 세상은 과학기술이 눈부시게 발달하여 스마트폰과 같은 고도의 기술이 가져온 탈진실(Post-Truth: 의역을 하자면 오리발)의 시대가 와서 SNS에서 선동과 가짜 뉴스가 다수 국민을 현혹하고 표적으로 삼은 인물의 인격농단이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시대가 되었다. 국제적으로나 우리나라에도 독버섯처럼 퍼지는 가짜뉴스는 민주주의의 기초인 토론과정의 건전성과 정보접근의 평등을 해치고 민의를 왜곡하여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민주주의는 그동안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의 등장에 의하여 몹시 험난한 운명을 겪었다. 유럽이나 남미 등 도처에서 좌파정권이 집권하여 인민복지라는 이름하에 국가의 곳간을 열어 무분별하고 무원칙하게 인심쓰고 퍼주는 포퓰리즘이 득세했다. 그 결과 베네수엘라, 브라질, 아르헨티나 등은 천정부지의 인플레이션, 물자 부족 및 경제사회의 극심한 혼란으로 국가파산사태가 일어나서 좌파 포퓰리즘은 실패한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제 디지털사회로 이행함에 따라 좌우 이념 대립은 별 의미가 없어졌건만 이제는 극우파적 포퓰리즘이 득세하면서 건전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 프랑스, 영국,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이탈리아 등에서는 극우파 정치세력이 득세하면서 민주적 선거 결과를 왜곡하고 있다. 또한 미국은 지난 2세기동안 다원주의, 관용 및 법의 지배라는 민주적 가치를 선도해왔으나 극우파적 대중영합주의의 등장이 퍽 걱정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사람의 입맛에 맞는 완제품이 아니다. 따라서 이념적 포퓰리즘 또는 100% 행동민주주의보다는 공정한 선거절차의 확보, 꾸준한 시민교육과 공동토론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지방자치의 뿌리를 굳건히 하고 정당의 기능을 활성화하여 대화와 토론과 타협의 정치문화를 발전시켜야 한다. 정치지도자들이 규범을 준수하고(법의 지배),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진작시켜서 그 결과물로서 공평하고 차별없는 사회가 실현되도록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