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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호 2005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김선일 피살 사건' 수수께끼로 남아

朴 榮 煥(97년 社會大卒) 경향신문 정치부 기자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이라크 인질납치 피해는 37개국 2백90명  선배 기자가 한 말이 있다. "기자는 사회과학을 공부하는 시인이다." 그는 기자는 사회의 수많은 일들을 보면서 그 속에서 모순을 찾아내고 거기에 이름을 붙이는 사람이라고 했다.  외교부를 출입하면서 필자 자신도 지난해 수많은 사건을 다루었고 나름대로 정의를 내리기 위해 노력해 왔다. 헌데 아직도 정의하지 못한 문제가 남아있다. 어쩌면 기자 생활 내내 의문을 풀지 못할 지도 모른다. 바로 故김선일씨 피살 사건이다.
 2004년 6월 21일 새벽이었다. 아랍계 알자지라 TV에 한국인 젊은이의 "살고 싶다. 죽고 싶지 않다"는 절규가 담긴 녹화테이프가 공개됐다. 그 절규하는 모습은 정말이지 아직도 머리 속에 생생히 남아 있다. `유일신과 성전'이란 테러단체는 "한국이 파병을 철회하지 않으면 처형하겠다"고 협박했다.  꼼짝없이 자다말고 새벽 출근을 했다. 이미 다음날짜의 모든 기사를 마감한 상황이었고 소위 `돌판'이라는 예정에 없던 신문을 발행했다. 올 것이 왔구나 하면서도 머리는 멍한 상태였다. 정부 당국자들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중심으로 곧바로 팔루자 지역 종교지도자들을 통해 협상을 시도하는 등 구명운동에 들어갔다. 다음날 오후까지만 해도 외교부 내부에는 "살아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하지만 정부의 노력은 22일 밤 팔루자 인근에서 김씨의 사체가 발견되면서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됐다. 김씨는 그 날 아침 살해된 것으로 추정됐다.  불과 이틀만에 사건은 허탈한 비극으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문제는 이때부터였다. 정부도 언론도 `패닉'에서 벗어나면서 사건의 뒤에 숨은 `惡'을 찾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에 걸쳐 이라크에서 발생한 외국인 대상 인질납치는 모두 1백10건으로 37개국의 2백90명이 피해를 봤다. 국가별로 보면 파병국이 15개국으로 1백22명, 파병하지 않은 나라도 22개국에 1백68명이나 됐다. 냉정하게 보면 김선일씨도 2백90명 중 한 명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통계만 보면 통제 불가능한 전쟁의 소용돌이에 들어간 게 잘못이라는 정부의 변명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정부는 그러나 그 소용돌이 속에서 목숨을 구걸하는 김씨의 절규를 보고도 "테러 단체와 타협할 수 없으며 파병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원칙을 천명하는 잔인함을 드러냈다.  더 큰 분노와 의문은 김씨가 왜 死地로 갔고 김씨의 소속회사는 왜 그렇게도 소홀히 직원을 관리했을까 하는 점이 확인되면서 생겨난다.  김씨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 이라크로 가지 않았다. 그는 선교를 목적으로 `이교도'의 성지인 이라크를 찾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이라크에서 최초의 교회를 세우겠다"며 가장 공격적 선교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한국인이라고 현지인들은 전한다. 김씨는 "한국인을 상대로 테러 첩보가 입수됐다"는 대사관측의 출국 제의도 거부했다.  `전쟁'과 `종교' 뒤에 도사린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돈'이다. 김씨 소속회사인 오무전기는 미군을 상대로 군납을 하면서 한 달에 수십억원의 수입을 올리면서도 직원들에게 준 월급은 고작 2백만원 수준이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김씨가 납치된 시점이 비디오 테이프가 공개되기 무려 20일 전인 5월 31일이었다는 것이다. 오무전기 김천호 사장은 그러나 김씨의 피랍사실을 미군측은 물론 한국 대사관에도 알리지 않은 채 사업을 위해 다른 지역으로 출장을 다녔다고 했다. 믿기가 어려울 정도로 답답한 일이다.  한국 대사관과 아랍통으로 20년간 활동한 베테랑이 나가있던 국가정보원이 과연 납치 사실을 그렇게 오랜 기간 모를 수 있을까 하는 것도 미스터리다. 김사장은 김씨 납치 사실을 확인한 이후에도 대사관 등 정부 직원들을 만나왔기에 더욱 그렇다. 여기에 미국의 APTN이란 통신사가 김씨 테이프를 테러리스트들에게서 받고도 한국에 알리기는커녕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은 것도 논란거리다.  이렇듯 김선일씨 사건은 깨끗하게 마무리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다. 이라크 대사로 근무하다 얼마 전 귀국한 任洪宰 前이라크 대사는 기자에게 "김선일씨 사건은 슬픈 정도가 아니라 충격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기자인 필자로서는 여기에 "의문 그 자체"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감사원이 조사하고, 국회도 나섰지만 의문은 풀린 게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