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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2015년 11월] 뉴스 모교소식

서울대란 이름이 취업을 보장해주던 시절은 지나가고…

졸업 앞둔 학생기자의 취업준비기

최근 서울대 온라인 커뮤니티에 9급 공무원이 됐다는 어느 졸업생의 글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타 대학 졸업생에 비하면 덜하겠지만 모교 후배들도 지독한 취업난을 피해갈 수 없는 모양입니다. 졸업반인 학생기자 두 명이 취업을 준비하고 현장에서 부딪히며 느낀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박성연(국문11입) 학생기자


“인문대생 이력서 30곳은 기본이라고?”


“원서 5개를 썼다고? 넌 배짱도 좋다!” 졸업을 앞두고 취업 이야기를 나누던 중 친구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배짱이 좋다기보다는 순진했다. 급하게 진로를 바꾼 상황이었기에 취업에 대해서는 막연한 생각만을 가지고 있었고, 정보도 부족했다. 그런데 순진한 마음으로 쓴 5개의 원서는 턱없이 부족한 숫자였나 보다. “요즘 인문대생들은 30군데씩 원서 쓰는 것도 예사야.” 이번 학기 7과목의 수업을 듣는다는 나의 말에 친구는 또다시 그럴 때가 아니라며 핀잔을 준다. 마지막 학기에는 한두 과목만 들으면서 취업 준비에 전념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면 너는 지금 어떻게 지내? TOEIC 시험 공부하니?” 친구는 이번에도 고개를 젓는다. 영어점수, 자격증, 인턴 등은 ‘이미’ 끝내 놓았어야 한다며.


기업의 신입사원 채용은 길고 지루한 싸움이다. 서류, 인적성고사, 그리고도 몇 번에 걸쳐 이어지는 면접. 서류 전형을 위해 나는 별 볼일 없는 경험들도 그러모아 ‘A회사에 입사하기 위한 신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것 같은 자기소개서를 써야 한다. 인적성고사에 통과하기 위해서는 독해력과 논리력을 갖추고, 인문학적 소양을 가지고, 빠르고 정확한 계산력에, 풍부한 경제 상식을 바탕으로 자료 해석 능력도 뛰어나야 한다. 한 마디로 슈퍼맨이 되라는 소리이다.


유형도 기업마다 전부 다르다. 문제집 한 권에 2만원은 족히 넘으니 몇 군데 시험을 보면 한 달 용돈은 금세 동난다. 아, 인성+적성 검사이기 때문에 인성 영역도 인터넷 강의를 통해 ‘정답’을 확인할 수 있다. ‘진취적’, ‘조직적’이라는 항목에는 무조건 ‘매우 그렇다’에 표시해야 한다고 한다. 대기업의 전 인사담당자가 강의한다는 이 인터넷 강의의 가격은 15만원이다.


“성연 씨는 사랑스러운 분이신 것 같네요. 하지만 기업은 사랑스러운 사람을 뽑는 곳이 아니에요. 회사에 더 기여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거죠.” 어렵게 얻은 한 면접 자리에서 면접관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 면접에서 탈락했다. 나름대로 열심히 답변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채용 시장의 기준에서는 부족했나보다. 다급해진 마음에 취업 스터디에 가입해서 다른 회사의 면접을 대비하기로 하였다. 취업 카페에서 스터디 모집 글을 보고 연락했다. 2개의 스터디에서 연락이 왔는데, 한 스터디에 가보니 다른 스터디의 사람이 또 있다. 반가운 마음에 아는 체를 했더니 반응은 시큰둥하다. 면접 준비를 위해 스터디를 몇 개씩 하는 것은 예사이지만, 스터디원들도 결국 다 경쟁자이니 다른 스터디를 하는 것을 티낼 필요는 없다고 ‘조언’까지 해준다.


취업 스터디 가입은 필수


면접의 종류도 참 다양하다. 인성 면접, 영어 면접, PT면접, 그룹 면접, 임원 면접까지. 이전 단계 합격자 발표와 다음 면접일 사이의 여유가 없기 때문에 낭비할 시간은 없다. 첫날부터 빡빡한 스케줄로 스터디가 진행되었다. 다른 스터디원의 이름을 외우기도 전에 모의 면접이 진행되었다. 스터디장이 면접관의 역할을 맡고 속사포로 질문들을 쏟아낸다. “A회사의 어제 종가는 얼마지요? A회사의 B공장에서 출시되는 제품의 모델명을 대보세요. A회사의 부사장 이름은?” 나는 잠시 멍해져 있다가 물었다. “저…이런 것까지 알아야 하나요?” 스터디장은 피식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거 기출 질문이에요.”


스터디를 마치고 어쩐지 주눅이 들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교내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을 읽었다. 대강 이런 내용이었다.


‘나는 시골의 작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서울대학교 합격 발표 이후 마을 곳곳에 나의 합격 소식을 전하는 현수막이 걸렸고, 그 중 하나는 지금도 집 어딘가에 보관해놓았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서울대만 오면 끝날 줄 알았는데 아직 갈 길이 구만 리다. 취업은 해야겠는데 어디로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서류는 넣는 족족 떨어지니 내가 부족해도 한참 부족했구나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정문은 나의 자부심이 아니게 되었다. 집 어딘가에 있을 나의 ‘합격’ 현수막은 나의 부담감이 되었다. 내일도 원서를 써야한다. 학력 란에는 ‘서울대학교’를 입력해야 한다. 학교 이름에 맞지 않는 나라서 부끄럽고 학교에 미안하다.’


이제 취업에 관한 고민은 그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서울대학교라는 이름이 모든 것을 보장해주는 때가 있었다던 할아버지의 말씀은 달나라에는 토끼가 산다는 이야기처럼 현실감 없게 느껴진다. 그러나 취업 앞에서 불안해한다고 과연 오늘날의 우리가 부족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까. 왠지 모를 자신감이 넘치다가도 한 없이 불안해지고, 그래도 나는 멋지다며 스스로를 다독이다가도 끝없는 자괴감이 밀려오는 날들이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에 주눅이 드는 순간에도 우리는 스스로가 지난 시간들 앞에 부끄럽지 않음을 알고 있으니, 조금 더 힘을 내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