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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2호 2005년 1월] 뉴스 본회소식

닭띠 동문 10人의 新年 소망


乙酉年 `닭의 해'가 밝았다. 닭은 12支 중 열 번째 동물로 새벽을 알리는 습관이 있다. 닭은 예로부터 문·무·용·인·신의 五德을 갖춘 동물로 여겨졌다. 즉 머리는 관을 쓰고 있으니 文이요, 발에는 날카로운 발톱이 있어 武요, 적을 맞아 물러서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니 勇이요, 음식을 보면 혼자 먹지 아니하고 함께 먹으니 仁이요, 밤을 지키되 그 때를 잃지 않으니 信이라 했다.
`역경'에는 닭을 팔괘의 손(巽)에 해당하는 동물로 기록되어 있는데 손괘의 방위는 동남쪽이다. 이 방향은 여명이 시작되는 곳이기 때문에 닭은 희망찬 출발이나 상서로움의 상징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닭의 해를 맞이해 각계 동문들은 어떤 계획을 갖고 있을까? 닭띠 동문 10명에게 2005년에 하고 싶은 일, 소망 등을 들어보았다.

 

경제 회복 위해 여/야 하나되길

언제나 새해가 되면 지난해를 되돌아보며 다사다난했다고들 한다.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중소병원의 도산과 일반개업의의 경영난 호소가 끊이질 않았다. 새해에는 이 모든 것이 풀려 다시 활발한 경제활동이 전개되어 일반국민의 삶에 대한 밝은 희망이 되돌아옴을 고대한다.
새해가 되면 무언가 희망의 싹을 찾아 새 희망을 기대해 보는 습관이 예로부터 내려왔다. 새해 乙酉年은 `새'자가 두 개 겹쳤으니 서로 상극하지 않을뿐더러 닭은 새 날이 밝았음을 기운차게 알리고 천지가 열리는 울음을 우는 새이다.
자! 그러하니 새해에는 서로 싸움하지 않고 기운차게 다시 약동하는 나라 경제의 회복을 위해 여야가 힘을 합쳐 나가는 해가 되기를 을유년의 뜻풀이대로 밀고 나갔으면 한다.
논어에 칠십을 일컬어 칠십이종심소욕불유거(七十而從心所欲不踰距)라 했다. 나이 일흔이 되면 흔들리지 않고 욕심부리지 않으며 마음이 가는 대로 행하되 정해진 틀을 벗어나지 말라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더 바랄 것이 무엇이겠는가. 한 분야에서 원로대접을 받고 살고 있으니 노욕을 부릴 것이 없다. 단지 한 인간으로서, 한 사회인으로서 정해진 틀을 벗어남이 없이 살아가는 것이 소원이다.
새해에는 모교의 발전은 물론 서울대가 바로 서고 나라가 살 수 있도록 총동창회를 중심으로 뭉쳐 도약할 수 있는 토양을 조성할 수 있는 분위기 조성이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 모든 동문들이 건강하고 활기찬 역군으로서 애교심과 국가발전에 이바지할 것을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상식/진실이 통하는 사회 소망하며

乙酉年 아침이 밝았다. 순리대로 어김없이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됐건만 마음 한 곳에서 여느 해와는 또 다른 느낌이 샘솟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동안 품어온 나의 소망들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하나 둘 결실로 맺어지고 있다는 기쁨 때문은 아닐까 생각한다.
필자는 해방둥이이다. 어찌 보면 나의 삶은 1945년 이후 새로운 역사를 일구어온 우리 나라와 그 궤적을 함께 했던 것 같다. 지난 60년 동안 우리 민족은 뼈아픈 전쟁의 고통을 비롯해 크고 작은 재난과 갈등을 겪어 왔지만, 그와 같은 곤경을 슬기롭게 극복하여 이 나라를 세계 12대 강국으로까지 끌어올렸다. 여기에는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한민족의 우수한 두뇌와 지혜가 밑거름이 됐으며, 그 한 가운데 우리 서울대 동문들이 있었다.
우리는 지금 해방 이후 축적해 온 다양한 분야의 지식, 기술, 경험, 정보를 최대한 활용하여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 질서 속에서 최대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합리적인 국가시스템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새해 아침, 우리 나라의 합리적인 국가시스템의 완성을 꿈꾸며 마음에 그려보는 소망이 하나 있다. 이제 우리 사회 어느 곳에서든 국민 개개인의 진실이 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힘을 모아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우리 사회는 상식과 진실이 통하는 확고한 토대를 마련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는 곧 국가 운영시스템의 합리적 완결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우리의 삶을 위한 기본적인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우리가 잊고 지냈던 `진실이 통하는 사회'를, 새로운 60년을 시작하는 우리 사회에서 마음껏 호흡하고 싶다.
   
초심으로 돌아가 희망의 빛 찾자

네 번째로 다시 찾아온 닭의 해 2005년을 설렘으로 맞이하면서, 필자가 걸어온 48년을 뒤돌아보며 금년 닭의 해에는 좀더 `쓸모 있는 된' 사람이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지난 48년의 전반 24년은 나 자신을 위한 학습의 시간이었고, 후반 24년은 국가를 위한 공무의 시간이었습니다.
관악캠퍼스에서 인문대학 4년과 행정대학원 2년의 학업기간 동안 `Veritas Lux Mea'를 추구하며 형성되어진 내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봅니다. 짙은 회색 빛의 그 시절 타는 목마름으로 대학 벗들과 관악산 등산로의 `세느강 건너 집', 봉천동의 한잔집, 신림동의 개선문에서 소주잔과 맥주잔을 부딪치며 `고래사냥'을 외치고 인문대의 연못벤치와 잔디밭에서 이성과 지성을 토로하던 그 정열이 오늘날 나의 근원임을 깨닫습니다.
갈등과 아픔의 순간 순간 대학시절의 그 초심으로 돌아가 나의 초심을 바로 세우고 희망의 빛을 찾아보았습니다. 그 희망의 빛을 좇으면서 갈등을 풀고 아픔을 넘어 새로운 도전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동일한 강물에 두 번 잠길 수는 없다󰡓는 2천5백여 년 전 그리스 철학자 Hericletus의 말과 같이 이 세상에 영속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내 자신이 변하고 그들이 변하고 우리 모두가 변합니다. 그러나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대학시절 품었던 나의 꿈입니다. 이 사회, 이 국가를 위해 `쓸모 있는 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나에게 남아있는 세월의 몫이 얼마인지 알 수 없으나, 작년보다는 금년, 올해보다는 다음해에 좀더 나은 `쓸모 있는 된'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균형잡힌 직장생활·인간관계 다짐

꽉 찬 다섯 살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그 나이에 유치원에 들어가고, 직장인은 입사 5년차 정도 되면 제법 완숙하게 일을 처리할 줄 아는 핵심 인력이 됩니다.
제 직장 산업기술대에서 꽉 찬 다섯 살로 맞이하는 해가 바로 이번 새해입니다. 그동안 중심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그저 바쁘게 지냈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새해에는 우선순위를 확고하게 인식하고, 균형 잡힌 삶을 만들어 해야 할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균형 있게 해내고 싶습니다. 만나야할 분들과 만나고 싶은 분들과의 관계들을 균형 있게 세우고 싶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다짐을 해봅니다.
다짐 하나. `직장에서 균형 잡힌 삶을 살려 합니다.'
2005년은 산업기술대가 독특한 산학협력·교육 연계모델을 가지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해입니다. 많은 부가적인 일들로 더 많이 분주해질 것이며, 직장에서의 삶이 바쁜 일들로 뒤섞여 방향성을 상실할 위험이 커질 것입니다. 따라서 연구, 학생지도 그리고 산학협력이 균형 있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우선순위를 잘 세우고, 시간을 활용하려 합니다.
다짐 둘. `균형 잡힌 인간관계를 맺으려 합니다.'
인생의 대선배님들께서 보시는 지면에 송구스럽습니다만, 나이를 조금씩 먹어가면서 사람들과의 관계가 제일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만나 뵈었던 많은 분들과의 관계를 다시 돌아보고, 앞으로 더 좋은 관계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끝으로 새해에는 사회의 여러 분야에서 균형 잡힌 모습들을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스스로 책임지는 법조인상 세울 것

사법시험을 통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는 막연한 `법조인'이 아니라 `어떤 법조인'이어야 한다는 한 교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법대를 선택할 때 내가 생각했던 꿈들, 대학에서 여러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인간과 사회에 대해서 느끼고 배우고 생각했던 것들, 여러 훌륭하신 교수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깨우쳤던 것들을 통해 나만의 법조인상을 세우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젠 그 상을 마음속에 새기고, 항상 그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서 스스로 책임질 수 있는 선택들을 통해 `나'를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얼마 전 오랜만에 만났던 한 선배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쾌활함과 날카로운 냉소를 함께 가지고 있어 참 좋아했던 그 선배가 그 날은 좀 힘들어 보였습니다. 세파에 시달려 조금 현실적이 된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그 모습을 보면서 문득 두려워졌습니다. 인간은 땅에 발을 붙이고 살기에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가 없겠지요. 하지만 그 때문에 한번뿐인 인생의 진정한 꿈을 포기하게 되는 것은 너무 슬픈 일이지 않을까요? 아직 사회를 경험하지 못한 터라 앞으로 현실과 세월의 무게를 어떻게 견디어갈지 짐작하기 어렵지만,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는 희망을 가져 봅니다.
2004년이 마감되고 2005년이 시작된다고 해서 다른 태양이 떠오르는 것은 아니지만, 새로운 해의 시작이라는 기회를 통해 우리는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반성하며 미래에 대한 밝은 희망을 가지고 새로운 마음으로 모든 일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05년의 태양이 동문 선후배님들 모두에게 희망찬 미래를 여는 밝은 빛이 되길 기원합니다.
   
경쟁에서 한발 비켜서 보면 어떨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보면 안드레이 공작이 싸움터에서 자기부대 깃발을 지키려 뛰어 가다 적의 포화를 맞아 비참한 형상으로 땅에 쓰러지는 장면이 나온다. 쓰러진 그는 戰場의 상황을 파악하려고 기를 쓰며 눈을 뜬다.
그때 안드레이는 자기가 목숨을 걸고 뛰어 다니던 방금 전의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다. 그것은 無限과 이어지는 `조용하고 평온하며 숭엄한 세계'였다. 깃발 하나를 놓고 죽기 살기로 쟁탈전을 벌이는 싸움터의 생리와는 판이한-영원한 본질적인 세계가 거기 있었던 것이다.
요즘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나라 전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불가마 속 같다. 거기에서 사람들은 모두 깃발 하나를 빼앗으려고 목숨을 거는 치열한 쟁탈전에 몰두해 있다. 정치가들은 자기 주장만을 관철시키려고 눈을 부라리고 있고, 노동자와 고용주가 극한적인 투쟁을 벌이며, 농민들이 다리를 트럭으로 막고 있고, 경찰은 악에 받쳐 그들과 맞서고 있다.
그 모든 이들에게 한발 물러서서 잠시 하늘을 우러러 보라고 권하고 싶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이 진정 목숨을 걸만한 본질적인 일인가를 잠시라도 생각할 수 있게 그들의 등을 땅에 대고 눕게 해보고 싶다. 삶은 트랙 위에서 벌어지는 마라톤 경주가 아니다. 설사 마라톤 경주와 다름없다한들 그게 내가 정말로 원하는 일이 아니라면 월계관을 머리에 얹는다고 그 승리에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乙酉年 한 해만이라도 우리 모두가 이따금 맹목적인 달리기의 대열에서 잠시 멈춰 서서, 싸우는 것, 이기는 것 이외의 일도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이제는 불필요한 비용·희생 줄일 때

돌이켜 보면, 우리 또래들은 격동의 세월 속에서 자라왔습니다. 그 시절은 사회적으로나 개인적으로 엄청난 비용과 희생을 요구했습니다. 수많은 학생과 민주주의 운동가들이 목숨을 잃었고, 독재권력도 권력을 유지하고자 많은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인류역사는 `자유의 확대와 부의 증대'를 향해 발전해 왔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온 반세기를 돌아보더라도 많은 희생을 바탕으로 조금씩이나마 자유가 확대(민주주의 발전)되고 부의 증대(경제발전) 면에서도 상당한 성과가 있었습니다.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가 집권한 90년대 이후 권위주의가 퇴색하고 민주주의 사회로 돌입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억눌렸던 각계의 목소리가 일거에 분출되고 권위주의 시대에 기득권을 누렸던 이익집단들의 방어적 반격까지 합쳐지면서 우리 사회는 한시도 조용했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제는 국가적 아젠다를 정하고 구체적인 내용과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과거와 전혀 다른 엄청난 비용을 치르고 있습니다. 이렇듯 성격은 다르지만, 민주주의는 그 수준에 따라 다양한 비용을 요구하기 마련이며, 그것을 줄이는 과정이 바로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새해에는 우리 사회가 이러한 갈등, 분쟁을 보다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메커니즘과 풍토를 정립하는 데에 더 진전이 있기를 바랍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모교를 포함한 대학들이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민주주의의 비전과 합리적 대안을 제시해 우리가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비용을 줄이는 데에 보다 중추적인 역할을 해 주길 기대합니다.
   
후배들과 함께 이공계 부활 꿈꾼다

한국인의 평균 수명이 80세(여성의 경우)라는 뉴스를 얼마 전 보게 됐는데 아마 옛날보다 한 20년은 늘어난 것으로 생각된다. 어떤 지인은 늘어난 수명을 그냥 말로만 들을 것이 아니라 활동 가능한 세월로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이에서 20을 감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말대로 49세가 아니라 29세로서 앞으로의 생을 어떻게 보내야 하나를 돌아보는 새해가 돼야 한다고 여겨진다. 정말 30대처럼 모든 일에 정열과 꿈을 가지고 일상을 보내고 싶다.
요즘 들어서 이공계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21세기 지식사회에서 과학기술은 기업 및 국가 가치의 원천이라고 생각된다. 과학 기술은 소득 2만불 달성의 성장동력이다. 이 문제는 우리 이공계 동문들의 활발한 이공계 활성화 대책 논의가 필요하다. 특히 세상에서 특혜를 받은 우리 동문들의 관심과 노력이 필요한 때라 생각된다. 새해에는 이공계의 부활을 꿈꾼다. 어느 광고 카피처럼 우리 후배들에게 선배들이 있으니 걱정 말라고 말하게 되길 소망한다.
얼마 전 읽은 신문 사설 제목이 `상처 입은 매화가 먼저 핀다'였다. 이 사설에서 글쓴이는 상처받은 매화나무가 성한 매화나무들보다 먼저 꽃망울을 틔우는 것을 목격하고 글을 썼다.
그렇다. 혹독한 시련이 자신을 단련시켜 나갈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힘든 시절 우리 40~50대들이 이제 다시 앞장서서 후배들과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가 되길 소망한다. 시들거나 물러서서는 안된다. 새해에는 상처 입은 서울대, 그리고 특히 이공계가 매화처럼 꽃을 피우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
   
아는 것 나누고 가진 것 노나고파

새해 소망, 글쎄…인생을 살면서 깨달은 이치 하나는 계획대로 되는 것은 없다는 것.
나의 꿈은 독일어 선생님이었지만, 지금의 직업은 아나운서다. 말이 직업인 필자는 최근 글까지 쓰게 됐다. 얼마 전 시내 대형서점에서 한 학생이 󰡒어떤 아나운서가 쓴 `싸늘한 여자' 어디 있어요?󰡓라고 물었다. 순간 웃음이 나왔다. 내 책의 제목은 `서늘한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말붙이기 힘든 `서늘한 미인' 같은 현대미술에 가까이 가기 위한 작은 노력으로 젊은 한국 예술가들을 소개했다.
그동안 나는 늘 뭔가 전달하고 나누는 일을 소망해왔다. 나누는 일에는 항상 `누구와'라는 대상이 전제된다. 비록 선생님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나는 학생들과 독일의 문화와 철학을 나누고 싶었고 현재 진행하고 있는 `즐거운 문화읽기'에서는 다양한 동시대문화를 시청자들과 나누고 있다. 그리고 혼자만 알고 있기 아까운 이 시대 젊은 예술가들을 대중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마음으로 글을 썼다. 나누는 일에는 `내'가 아니라 항상 나눌 `대상'에게 어떤 비전과 사랑을 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릴 적 동네 친구들과 하나 뿐인 설탕 뽑기를 노나 먹던 생각이 난다. 뽑기가 3개일 때 우리는 친구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뿐일 때 우리는 친구들과 하나를 쪼개서 `노나'먹는 것이다. 이것이 `나누다'와 `노느다'의 미묘한 차이다.
올해에는 역시 아나운서로서, 그리고 미술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계속해서 나눌 것이다. 아울러 내가 가진 것이 비록 작더라도 나는 그것을 쪼개서 사람들과 노늘 것이다.
   
문화산업 골고루 발전하길 기원

다가오는 乙酉年은 나에게 있어 매우 특별한 의미가 될 것 같다. 그간 일구어놓았던 일들이 이제 하나 둘씩 나처럼 닭띠 해에 세상의 빛을 보게 된다. 그 모두가 풍성한 결실을 맺었으면 하고, 나아가 그 결실을 바탕으로 더욱 성장하는 내가 됐으면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겸손하게 나의 부족한 부분을 깨닫고 꾸준히 연마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우리 사회에 바라는 소망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장 절실한 것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 불황으로 한국의 음반시장이 긴 침체기에 빠져 있음은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수준 높은 공연이 많이 열리고 나쁘지 않은 성과를 올리는 것이 다행스럽기는 하다. 특히 클래식 연주회의 경우 여러 참신한 기획을 통해 매니아층의 전유물에서 탈피하는 데 성공했다. 꽉 들어 찬 객석을 보더라도 그다지 놀라지 않게 된 것이다. 음악의 수요가 꾸준히 증가함은 물론이고 요구하는 수준도 매년 높아지고 있음을 말해 준다.
이렇듯, 좋은 공연은 불황 속에서도 대부분 성공을 거두지만 음반시장에서는 성공이라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다. 이는 창작욕의 저하로 이어지고 점차적으로 새로운 콘텐츠가 희박해질 것이다. 콘텐츠의 확보 없이는 당연히 좋은 공연도 나올 수가 없다. 외면하는 소비자들만 원망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활로를 찾았으면 좋겠다. 내리막을 끝내고 새해에는 부디 오르막이 시작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음악과 함께 하는 다른 모든 문화산업들이 골고루 발전하고 다같이 목표 성과를 뛰어 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