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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0호 2015년 9월] 문화 꽁트

조선인도 아닌데 어찌 그리 멍청해!

박인근 충북대 명예교수

조선인도 아닌데 어찌 그리 멍청해!


















朴仁根(물교육59-63)충북대 명예교수



일본에 6개월간 연수차 히로시마대학에 온 B선생은 여가를 내서 23일 일정으로 규슈남부를 다녀오려고, 가벼운 차림으로 외국인 숙소를 나서서 히로시마 역 앞에 대기 중인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 부부들, 50대 중반의 기모노차림의 내외, 친목 회원인 듯한 10여 명의 4,50대들이 모두 타자, 점호를 마치고 운전기사와 안내양이 자기소개와 최선을 다하겠노라 다짐하면서 버스는 역 광장을 빠져 나와 *중국 국도에 들어서자 안내양이 마이크를 잡고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게 앞자리 손님부터 차례로 자기소개를 하고, 잘하는 노래와 우스개 등을 한 마디씩 해주시기 바란다면서, 곱상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깜냥껏 최선을 다해 엔카를 열창하고 박수를 받으면서 맨 앞자리에 있는 부부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노래와 객담 그리고 가끔은 자기 실수담 등을 풀어 놓아 버스 안이 슬슬 여행분위기로 달아오르며 드디어 B선생의 차례가 되었다.


그는 10여 년 전의 아쉬움을 달래려고 짬을 내 여러분과 귀중한 추억을 만들게 되어 기쁘다는 소회와 잘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도라지를 성의껏 불렀다. 그러자 아리랑을 불러달라는 앙코르를 받았다. 그런 그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한 말씀으로 아리랑을 대신해도 좋을까? 양해를 구하고는 답을 듣기도 전에 차분한 음성으로 아라끼 도요히사(荒木 とよひさ)씨 작시·작곡인 사계의 노래를 개사하여 여러분께 읽어 드리겠습니다.”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 제비꽃과 같은 나의 친구

중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강한 사람, 바위를 부수는 파도와 같은 나의 친구들

동양을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깊은 사람, 사랑을 말하는 하이네와 같은 나의 친구들

인류를 사랑하는 사람은 마음이 넓은 사람, 잔설을 녹이는 대지와 같은 평화의 씨앗들!


다 읽은 다음 잘 부탁합니다!”하고 마이크를 뒷자리로 넘기자 대여섯 명이 토닥토닥 박수하였다. 흔들리는 버스에 선잠을 자다가 깨어나니 가고시마에 도착하였다.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의 출생지를 들른 다음, 지란(知覽)으로 가 특공대기념관 앞에 내리니 한 무리의 소학생들 앞에서 인솔자가 우리는 잊어서는 안 되고, 잊지 말아야 한다고 힘주어 되뇌이고, 나라위해 산화한 소년병들의 넋을 위로하자면서 묵념을 하였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자가 다름 아닌 쇼와 일왕이었고, 사지로 몰면서 두려움을 없애주려고 어사 주라 면서 술 한 잔씩을 마지막으로 주고는 되돌아 올 수 없는 경비행기에 폭탄을 실어 가미카제특공대의 영웅이라면서 최면을 걸어 내몰았던 것이다. 기념관(지금은 평화기념관으로 개명)에서 그들의 앳된 사진과 유품에는 어머니들이 만든 손수건이 보였다. B선생은 계단을 내려오다 발을 헛디딜 뻔하였다.


다음날인 19861121일 아침에 활화산섬 사쿠라지마(櫻島)를 관광하기 위해 부두에서 페리를 타고 한 20분 남짓 가니 섬에 닿았다. 흰 연기를 계속 내 뿜고 있는 섬 주위를 버스를 타고 한 바퀴 돌고 가고시마에 도착할 때 까지 아무런 일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어느 공원에 내려 자유 시간을 주어서 사진들을 찍거나 화장실을 찾고 있던 중에 느닷없이 뻥뻥하는 굉음이 천둥소리처럼 크게 나서 깜짝 놀라 소리 나는 쪽을 보니 바로 전에 다녀온 사쿠라지마가 폭발하는 것이었다. 몇 차례 큰 굉음과 함께 검은 구름이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 잠시 있자니 하늘이 어두컴컴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B선생은 따로 볼거리도 딱히 없고 해서 버스에 올라섰더니 초로의 부부와 신문사 퇴직자등 몇 명이 이미 자리에 있었다. 웬 걸 갑자기 하늘에서 검은 흙비가 버스 유리창을 때리는 것이었다. 공원에서 구경을 하던 일행들이 뛰어와 버스에 오르는데 멀찍이에서 기모노의 여인이 잰걸음으로 뒤뚱거리며 와 숨을 헐떡이며 버스에 오르자마자 버스가 떠나가게 당신! 조선 사람도 아닌데 어찌 그리 멍청해! 화산 폭발하면 흙비 내리는 것도 몰라?” 하고 버럭 소리를 내지르는데 보니 바로 그녀의 부군이었다. B선생은 자기도 모르게 헛기침을 하고 크게 입맛을 다시며 입술을 지그시 깨물고 그들을 주시하게 되었다.







일러스트 소여정(디자인09-13)동문




잠시 버스 안의 공기가 묘하게 변하는 것을 모두는 감으로 알아채는 듯하였다. 그녀는 연신 변명하면서 그렇다고 날! 조선 사람 만들면 어떡하냐며 부부 싸움으로 고성이 얼마간 오가는데 단체로 온 이 중에 두어 사람이 조용히들 하라고 주의를 주면서 그 둘의 언쟁은 그치는 듯 했으나, B선생의 심기는 폭발하기 일보 전이었지만 꾹 참고 숙소에 가서 얘기하자고 다잡는 것이었다. 심기 불편하여 눈을 감은 채 상념에 들었던 그는 버스가 멎어 내리라는 소리에 눈을 뜨니 기리시마의 호텔 앞이었다. 방을 배정받고 목욕 후 저녁을 마치고 그를 찾아 나서려는데, 50대로 보이는 두 사람이 찾아와 거듭 사과하며 자기들은 히로시마 중구의 세탁소 친목회원으로 14명이 단체관광을 왔고 아까는 매우 죄송스럽게 된 일이나 대신 사죄한다는 것이다. B선생이 그런데, 그는 기자 출신인가요?” 묻자 아니요, 우리도 기자가 그럴 가 싶어 확인 했더니 영업국 차량 반에서 근무했다더군요. 몰상식한 사람의 소행이니 선생께서 역설하신대로 동양 평화와 선린을 위하여 용서해주세요. 저희 방에 오셔서 자리를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하고 정중하게 청을 하는 것이었다. 그 두 사람을 따라 B선생은 그들의 방에 들렀다. 들어서는 순간 큰 박수로 환영하면서 잘 오셨습니다! 용서해주신 줄로 믿겠습니다”. 그들의 진솔한 응대와 의사를 존중해서 B선생도 흔쾌히 모든 일본 사람이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을 만나 매우 유익한 여행이 되었고 많이 배우고 갑니다. 이런 자리를 마련해주시어 고맙습니다.” 하고는, 20여 분간 담소를 나누고 자기 방에 돌아온 B선생은 많은 생각으로 새벽녘 까지 다다미에서 몸을 뒤척였다.




*중국(中國)지방 : 히로시마(?島)를 비롯한 6개 현을 뭉뚱그려 일컫는 말임.



안 동문은 일본 東北大學에서 유학(1976-80)했다. 농학박사, 충북대 명예교수로 먼 이웃에서의 한 때’, ‘우리에게 있어서 일본은 무엇인가?’ 등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