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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호 2015년 6월] 문화 꽁트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황성혁 황화상사 대표·수필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황성혁(조선항공58­-65) 황화상사 대표·수필가






“저는 입사 지원서를 낸 회사가 몇 군데 더 있습니다. 거기를 가서 면접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같은 논쟁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소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지막 입사지원자의 면접시험이 끝났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많은 수험생으로부터 비슷한 답변들을 들어야 했던 시험관들은 지루했던 하루로부터 해방된 느낌으로 책상을 정리하며 일어서고 있었다. 그런데 끝난 것이 아니었다. 마지막 수험생이 머뭇거리며 시험관들을 붙든 것이다.


“잠깐만요, 제가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귀사의 장래를 위해서 한 말씀드릴 것이 있거든요. 괜찮겠습니까?”


‘물론 안 되지’ 하는 몸짓으로 인사부장은 그녀의 서류철을 탁 소리나게 닫았다. 시험관들도 주섬주섬 일어섰다. 그때 하루 종일 뒷전에서 졸듯이 앉아있던 사장이 손을 들었다. ‘들어보자’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일어서던 시험관들은 주저앉았고 수험생은 엉거주춤하게 일어섰다. 그는 손바닥만한 메모지를 들여다보며 그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오늘 면접 받기 전 오후 내내 대기실에서 많은 수험생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특히 여성 수험생들을 뜯어보면서 나의 여성 경쟁자들과 나 자신 그리고 귀사의 장래에 관해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는 그의 앞에 앉은 시험관들의 눈치를 살피며 계속했다.


“특히 여성 지원자들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얼굴도 제대로 가꿀 줄 알고 시험도 요령있게 칠 줄 알고 면접관의 구두시험에도 영악하게 대답을 잘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남성 지원자보다 쉽게 합격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남성지원자들을 밀어내고 합격할 수 있는 요건이 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하게 됐습니다.”


사장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끼어들었다.


“그러니까 여성에게 패배의식을 느꼈다는 말이군.”


“처음에는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아니었습니다. 차츰 그녀들이 측은해 진 겁니다. 물론 나 자신을 포함한 모든 수험생들이, 아니 우리 사회의 모든 젊은이들이 측은해 진 겁니다. 세상이 여성으로 넘쳐 납니다. 학교는 여자 선생님들로 가득하고 법원은 여자 법관들로 넘쳐납니다. 심지어는 군대까지 사관학교까지 여성의 입학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그러는 동안 남성들은 계속 뒷전으로 밀리고 있습니다.”


사장은 점점 대화에 끼어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여성들이 가정을 지키게 해야 합니다. 세상은 남성과 여성을 구분해서 창조해 놓았습니다. 남성은 밖에 나가 일을 함으로서 가족을 부양하고, 여성은 집안에서 가정을 꾸려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분한 자녀를 출산하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청년실업과 낮은 출산율입니다. 여성들이 가정을 지키고 남성들이 활발하게 사회활동을 함으로써 이 두 개의 기본적인 문제가 시원하게 해결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사장이 또 끼어들었다.


“그런데 남자 혼자 벌어서 살기가 힘든 세상이잖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대답이 흘러 나왔다.


“그것은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여성들을 남성들과의 경쟁에 끌어들임으로서 저임금을 유도한 것입니다. 남성들을 필요한 자리에 앉히고 생산성을 극대화 시켜 가족을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임금을 올려 주면 됩니다. 게다가 여성들이 따뜻한 가정을 꾸리면 우리의 삶은 물질적인 욕구를 추구하기 보다 정신적인 만족에 안주하게 될 것입니다. 가정이 주는 정신적 행복을 기반으로 하는 생활의 만족도는 약간의 소득 수준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눈높이의 문제도 있습니다.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어도 삶에 있어서의 만족도는 쉽게 달성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에서는 아무리 벌어도 결코 높아진 눈높이를 맞출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온갖 불만으로 터질 듯한 상태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부모들의 세대, 일만 알던 세대에 환멸을 느껴왔지만, 요즈음 그것이 인간이 사는 본연의 자세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인사부장은 ‘네가 여자의 삶을 알기나 해?’ 하듯 그의 말을 가로막았다.


“여성의 삶이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고 세상살이가 말로 하듯 만만한 것인 줄 아세요.”


그는 이제 완전히 평정을 되찾고 편안한 자세로 그의 소신을 펴나갔다.


“저는 세상살이의 초년병입니다. 그러나 이십육년간 살아오는 동안 저는 제 부모님들의 삶과 학교생활, 군대생활을 통해서 나름대로 인간의 가치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세상에는 여성들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같은 일이라도 남성보다 더 잘하는 여성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성에게 사회참여와 가정생활의 기회가 동시에 주어졌을 때, 가정이 먼저 고려돼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가족을 부양하는 일은 남성이, 가정을 지키고 아이들을 양육하는 것은 여성이 맡는 것이 자연의 법칙에 부응하는 순리입니다. 어느 고승께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설법하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 법문의 불교적 뜻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여성은 여성의 자리를, 남성은 남성의 자리를 지켜라’라는 말씀으로 이해합니다. 각기 주어진 자리를 잃고 뒤섞이는 순간 세상에는 혼란이 오고 모든 사람들이 불안해지고 만족이라는 것이 사라집니다.”


사장은 웃고 있었다. 그는 사장의 미소가 그를 격려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였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남성과 여성이 구분되지 않는 것입니다. 정체성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결혼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합니다. 결혼하더라도 아이를 낳지 않거나, 하나 가지면 충분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도 제대로 키울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어린이 집이나 남의 손에 내버려둡니다. 모두 직장 탓이라고 변명을 합니다. 얼마나 버는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그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지 모르지만 그 알량한 수입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내버리는 것입니다. 입에 담기도 싫은 어린이집의 폭력사건들은, 온갖 핑계를 대며 아이들의 양육에서 벗어나려는 어머니들이 많은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매를 들던 타이르던 아이들의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어린이집에 CCTV를 다느냐 마느냐로 아우성치기 전, 믿지 못할 어린이집은 문을 닫아야 합니다. 어머니들이 삿대질을 시작하기 전 그들이 그들의 자식을 위해 무엇을 했는지 먼저 반성해야 합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들은 외손들의 양육을 위해 그들의 인생을 포기해야 합니다. 이것은 몇 푼의 월급을 타온다는 핑계 아래 여성들이 가진 가장 고귀한 의무를 포기한 결과입니다. 이것은 여성들의 사랑할 권리, 사랑받을 권리, 그래서 세상을 사랑스러운 곳으로 만드는 책임을 여성들 스스로 박차 버린 결과입니다.”


그는 사장에게 건의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 사회의 저출산 문제와 청년고용문제의 해결은 각 사의 고용방법에서부터 시작돼야 합니다. 그것은 그 자리에 있어야 할 사람을 뽑고 다른 자리에서 필요한 사람은 그 자리로 돌려 보내주는 것에서 시작됩니다.”


인사부장이 더 참지 못하고 꽥 소리를 질렀다.


“사장님 하루 종일 면접에 시달린 우리가 이런 말 같지 않은 소리를 듣자고 아직도 자리를 지켜야 합니까?”


사장이 끼어들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의 말이기는 하지만 듣는 맛이 괜찮구만. 이제 자네 소신은 그만 듣기로 하고, 자네는 그래 지금부터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그는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 이 회사 입사를 위한 면접에 참여했다가 약간 흥분해서 떠벌리긴 했지만 그래 지금 이 회사에 입사하는 것 말고 또 무엇을 바라겠는가. 그가 머뭇거리는 동안 사장이 한마디 덧붙였다.


“그래 이 회사에 입사하고 싶은 생각이 있는가, 있으면 언제쯤부터 출근할 수 있는가?”


사장의 의외의 격려에 그는 다시 한번 일탈하고 말았다.


“사장님 지금은 아닙니다. 저는 입사 지원서를 낸 회사가 몇 군데 더 있습니다. 거기를 가서 면접을 보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같은 논쟁을 계속하고 싶습니다. 사장님처럼 이런 논쟁을 허용할 회사가 얼마나 될지 모르겠지만 한번 해 봐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문득 든 겁니다. 그것이 저에게 주어진 소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장은 씩 웃었다.


“그래 하고 싶은 일을 다 마친 뒤 생각이 있으면 나를 찾아와. 그때 꼭 채용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황 동문은 김만옥 소설가, 이제하 시인 등 1950년대 경남 마산 출신 문인들로 구성된 백치(白痴) 동인에 소속해 활동해왔다. 저서로 ‘넘지 못할 벽은 없다’와 영역본 ‘Let There Be A Yard’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