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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호 2015년 6월] 뉴스 모교소식

대학 축제에 가면 그 시대 청춘의 고민이 보인다

60년대부터 최근까지 ‘모교 봄축제’


지난 5월 12일부터 14일까지 관악캠퍼스 일대에서 ‘일해라 절해라’를 주제로 봄축제가 열렸다. 이번 축제에서는 ‘갑을 문화’, ‘취업난’에 대한 고민 등이 다양한 놀이 문화 등을 통해 발산됐다. 그동안 서울대 축제는 그 시대 젊은이의 고민을 표출하는 장 역할을 해왔다. 시대별 축제를 살펴봤다.


◇갑을 문화 풍자·네팔 돕기 행사도


예전부터 모교는 연예인을 초청해 축제의 말미를 장식하는 다른 학교들의 축제와는 달리 학생 중심의 다채로운 행사를 기획해 자율성에 기반을 둔 대학 축제의 질을 높였다.


금년에는 △컴퓨터게임 대회 <관악게임리그> △봉천노래자랑 <모창편> △힙합공연 Hopping the Hip △댄스 공연 Hit the Stage △도전 정규직 △<따이빙굴비>:밴드공연 △폐막제 등이 준비돼 공부도 잘하고 춤과 노래 및 악기 연주 등의 잠재된 예술적인 재능까지 겸비한 다재다능한 서울대생들을 소개하는 기회의 장이 됐다.


우선 이번 축제에서 눈에 특기할만한 점은 축제 제목이다. “일해라 절해라”는 단순히 문맥적으로 일하고 절하라는 의미로 이해했다면 축제 기획 의도를 파악한 것이 아니다. 이 문장을 소리 나는 대로 읽으면 “이래라 저래라”인데, 의미가 전혀 다른 문장 속에 꽁꽁 숨겨진 올해 서울대 학생들의 진정한 외침이 응축돼 있다.


이번 축제를 총괄 기획한 ‘서울대학교 축제하는 사람들’의 김나연(인류학 11입) 대표는 “올 초에 사회적 이슈였던 ‘갑을 문화’를 축제를 통해 유쾌하게 비판하고자 이러한 문구를 창안했다”고 말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이래라 저래라”하는 사회적 세태에 대한 풍자는 재학생들의 슬픈 단면을 반영한다.


이러한 취지를 살린 행사 하나가 있다. ‘도전 정규직’은 KBS 1TV <도전 골든벨>을 모방한 퀴즈 행사로, 참가자 1백명의 인턴사원들 가운데 오직 한 명만이 정규직 사원으로 채용이 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나연 대표는 이 행사의 목적이 “대학 졸업자의 구직난 문제를 유쾌한 방식으로 풀어보기 위함에 있다”고 말했다.


2003년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외국인 음식문화 축제도 봄축제의 묘미이다. 올해는 네팔과 인도를 포함한 총 9개국이 참가했다. 특히 지난 4월에 지진이 발생한 네팔을 돕고자 네팔 부스 옆에 이재민 성금 모금함이 설치돼 음식과 행사를 통해 국제 문제에도 관심을 갖는 모교 축제의 외교적 성격을 보여줬다.





이번 봄 축제에서 모교 학생들의 ‘오늘’을 엿볼 수 있다. 2003년부터 이어져 온 외국인 음식문화 축제는 글로벌화한 2000년대 대학가를 상징한다.




‘도전 골든벨’을 패러디한 ‘도전 정규직’ 퀴즈대회에 최근 대학 졸업자의 구직난 문제를 녹여냈다.




이번 봄 축제와 함께 ‘예술주간행사’도 진행됐다. 학내 구성원의 자발적 참여와 재능기부를 통해 거리 공연, 설치 및 참여미술, 게릴라극 등 ‘소통하는 예술’로 캠퍼스 곳곳을 물들였다.








예술주간 나흘째인 5월 14일 모교 문화관 앞에 설치된 교조 학 조형물을 배경으로 여성 듀오 돌새피지가 공연을 펼쳤다.



◇70년대 쌍쌍파티, 80년대 대동제


과거의 모교 축제는 어떠했을까? 1960년대는 단과대학별로 독자적인 축제가 활성화 됐다. 축제는 보통 학술 강연회, 토론회, 발표회, 음악회, 연극 공연, 시화전, 서예전, 체육대회, 카니발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했다. 당시 카니발은 주로 가장 행렬이나 가면무도회 형식으로 진행됐고 여기서 학생들은 폴카, 탱고, 블루스, 트위스트 등의 춤을 즐겼다.







시대와 세대에 따라 모교 축제도 그 모습을 달리해왔다. 1960년대는 단과대학별로 독자적인 축제가 활성화 됐다. 당시 크게 유행했던 카니발행사서 트위스트 등의 춤을 추는 모습.


1970년대 전반기부터 판소리나 탈춤 공연이 큰 인기를 얻고, 강연회나 토론회의 주제는 민족 문화와 민족 정체성에 대한 것이 주를 이뤘다. 한편으로는 이때부터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생활양식이 학생들 사이에 점차 유행했다. 유신 선포 후 패배주의와 무력감에 젖어든 대학가에는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와 함께 장발, 미니스커트, 고고 춤까지 유행했다. 낭만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의 혼돈의 시기였다.


1970년대 중반에 재학했던 한정숙 모교 서양사학과 교수는 “당시에 학생들은 현 규장각 터에 있던 밤골에서 탈춤이나 민속 공연을 많이 했다. 그리고 쌍쌍 파티라고 남녀 학우가 만나면서 일대일로 만나는 행사도 있었고, 당시에는 들어가기 힘들었던 기숙사 오픈 하우스 행사도 있었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쌍쌍 파티와 같은 대학가 축제는 시대를 불문하고 교내 애인에서 출발해 평생 반려자로 골인하는 교각 역할을 한다.




1970년대는 낭만과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의 혼돈의 시기였다. 통기타, 청바지, 생맥주로 대표되는 생활양식이 학생들 사이에 점차 유행했다.



한편 1980년대는 과거 유신정권과 ‘서울의 봄’을 지나오면서 학생운동권이 형성돼 순수한 오락 활동에서 풍물굿과 줄다리기와 같은 공동체 놀이문화로 이동했던 시대였다. 이 당시에 봄축제를 ‘대동제’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했다. ‘대동(大同)’의 의미는 화합과 단결의 기치를 의미한다.




1980년대 대학가는 투쟁과 시위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당시 봄축제를 대동제라 불렀다. 대동은 화합과 단결의 기치를 의미한다.



90년대 일명 X세대(물질적으로 풍요로운 90년대에 청소년·청년기를 보낸 세대)의 등장은 70년대와 80년대 세대에 차별을 두는 분기점을 형성했다. 이 시대 전까지만 해도 존재하지 않았던 연예인 초청공연 문화가 성행하기 시작했다.


한정숙 교수는 “90년대에 접어들면서 대학 축제에 연예인을 초청하는 행사가 등장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는 청년문화와 대중문화가 특별히 구별되지 않는 시기로 주점문화, 연예인 초청, 반복된 이벤트, 기업체 홍보경연장이 축제의 코드로 정착해 계승되고 있다.


모교 개교 이래 교내 축제의 역사를 주마등처럼 훑고 지났다. 신문 한 면에 채워진 기사와 사진들을 통해 졸업생은 기억의 밭에서 아려한 옛 추억의 그림자를 반추해보고, 재학생은 선배님들의 대학교 생활을 알아가며 선후배 간의 학연을 결속시켜보는 것은 어떨까. <김성구 학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