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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7호 2015년 6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클랙슨세를 걷자

김광일 조선일보 논설위원, 본보 논설위원


네거리에 산 적이 있다. 내 방은 5층에 있었다. 건물이 코너에 있었고, 내 방이 길가 쪽이어서 네거리가 잘 내려다 보였다. 몇 발자국 안 간 가까이에 서울지방경찰청도 있었다. 번화한 거리는 아니어서 밤 11시가 넘으면 대체로 괴괴했다. 문제는 자동차 경음기였다. 클랙슨 소리가 시도 때도 없이 ‘꽝 꽝 꽝’ 혹은 ‘빽 빽 빽’하고 마치 폭탄 터지듯 울려서 벌떡 일어나 앉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경험해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른다. 모골이 송연해진다는 말이 실감난다. 목 뒷줄기가 날카로운 갈고리에 채여 쭈뼛하고 공중으로 치솟는 느낌마저 든다.


비슷한 소음 때문에 유럽에서는 살인 사건도 일어난다. 기껏 1백~2백가구가 사는 한적한 시골 마을에 오토바이 폭주족이 굉음을 울리며 마을을 휘젓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있다. 이런 폭주족은 대개 머플러를 개조해서 그 오토바이 폭음이 군사 폭탄 터지는 소리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폭주족은 낮 시간대보다는 사위가 조용하게 잠든 새벽 1시쯤을 선호한다. 비슷한 시간대에 나타나는 폭주족 때문에 고통의 밤을 보내던 어떤 할아버지가 저격용 고성능 소총을 창가에 설치해놓고 기다렸다가 폭주족이 나타나자 그대로 쏴서 죽였다. 내가 만약 그때 재판관이었다면 할아버지에게 무조건 무죄를 선고했을 것이다.


자동차 클랙슨은 최대 1백10데시벨 정도의 소리를 내도록 설계돼 있다. 1백 데시벨이면 가까이서 천둥치는 소리이고, 1백10데시벨이면 록 밴드 소리다. 1백20데시벨이 제트기 엔진 소리다. 경찰은 보통 도심에서 80데시벨 이상을 내는 사람을 단속해야 한다. 경음기는 자전거, 자동차, 트럭, 열차, 그리고 선박에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돼 있다. 자동차에는 경음기가 2개씩 달려 있다.


내가 만약 교통부 장관이라면, 경음기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한 법률을 폐지하고, 대신 일정한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만, 그러니까 평균적 교양을 지닌 양심적인 시민이라고 판단할 수 있는 교양 테스트 양식을 만들어서 그런 테스트를 통과한 사람에게만 경음기 부착 권한을 주도록 정부 입법을 시도하겠다. 이 경우에도 핸들에 부착된 경음기 버튼을 한 번 누를 때마다 500원씩 부과하는 환경소음부담금 제도를 만들겠다. 경음기 버튼을 6개월 동안 몇 번이나 눌렀는지 그 횟수가 자동차 계기에 기록되도록 해서, 자동차 세금을 낼 때 ‘클랙슨세(稅)’를 합산해서 물리겠다. 어떤 택시 운전사가 한 달에 1백번씩, 6개월 동안 클랙슨을 6백번을 눌렀다고 하면 그 운전사는 별도로 클랙슨세를 30만원을 내야 한다.


우리는 타인에게 “내가 간다, 비켜라, 위험해, 내가 있다”, 그런 뜻으로 위협하듯 클랙슨을 누른다. 연고지 축구팀이 이겨서 마을 전체가 축제 분위기일 때, 교차로에서 상대 차에게 먼저 가라고 양보할 때 클랙슨을 누르는 나라도 있다. 우리도 그런 문화가 정착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클랙슨세를 물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