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46호 2015년 5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玄 敬 大수석부의장






 - 바람이 시원하고 좋네요. 터가 좋은 것 같습니다.

 남산의 기를 제대로 받는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제 자신과도 기운이 잘 맞는 것 같고요.(웃음)”

 - 1990년 민주평통 사무총장을 역임하시고 다시 수석부의장으로 오셨습니다. 민주평통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실 것 같은데.

 살다보면 이런 것도 운명이 아닌가 싶어요. 제가 사실 1990년에 민주평통 사무총장으로 올 때는 제 의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또 25년 만에 같은 곳에서 일을 하게 됐습니다. 그 동안 제가 쌓아온 경험과 역량을 우리 민족의 숙원인 통일에 쏟아부을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어 큰 영광이라는 생각과 함께 대한민국이 저에게 준 마지막 사명이라 여기고 최선을 다해 뛰고 있습니다.”

 - 지난 2년간 활동을 돌아본다면.

 “16기 민주평통이 국내외에서 진행한 통일 사업은 책 몇 권으로 묶어내도 부족할 정도로 방대하고 다양합니다. 그 중에서도 저를 포함해 16기 자문위원들은 탈북자들의 국내 정착을 돕기 위해 의료, 법률, 취업, 장학, 1 : 1 멘토링 서비스를 진행하는 `하나 -다섯' 사업을 가장 중점적으로 진행해 왔습니다.

 북한 주민의 1천분의 1이 넘는 27천명 이상의 탈북자가 한국에 와 있습니다. 이는 상당한 숫자입니다. 대통령이 강조하시는 게 `이분들은 먼저 온 통일'이라는 겁니다. 그러니 이분들에 대한 지원은 어려운 사람들을 구호하고 도와준다는 차원을 넘어 통일 준비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 분들과의 교류가 통일 이후 25백만 북한 주민들을 우리 체제에 적응시키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탈북민들이 통일이 됐을 때 자기 고향으로 갈 텐데, 그 곳에서 지도자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먼저 온 통일', `통일을 위한 소중한 자산'이라고 하는 것이 틀린 말이 아닙니다.”

 - 분단 70년을 맞는 감회가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지난 11일 국립 현충원을 방문해 `광복 70년 그러나 분단 70, 통일로 진정한 광복을 이루겠습니다'라고 썼습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0년이 됐는데 기쁨보다 아픔이 큰 것은 여전히 분단 극복이라는 과제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말이 70년이지 일제 강점 36년의 두 배 가까이 됩니다. 얼마 있으면 한 세기를 넘기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이 고비에서 우리 자신을 추스르고, 통일 의지를 다져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시대흐름을 제대로 읽고 있지 않나 싶어요. 취임준비위원회가 구성되면 국정기조에 각 직역에서 활동하는 분들이 자기네 관련 내용이 들어가도록 로비를 상당히 치열하게 합니다. 그런데 통일은 중요하면서도 뒤쳐지기 쉬운 부분입니다. 대통령 자신이 취임 준비 과정에서부터 분단 70년을 맞는 이 시점에 가장 중요한 민족적 과제는 통일이라는 인식을 확실하게 하고 있었기 때문에 국정기조의 하나로 들어갔다고 봅니다. 4대 국정기조가 경제부흥, 국민행복, 문화융성, 평화통일 기반구축인데, 네 번째만 8자 입니다. 그때도 일부 균형이 안 맞는다는 말이 있었지만, 대통령께서 뜻한 바가 있어 밀고 나간 거죠.”

 - 북한 인권문제에 상당히 높은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요.

 작년 219일 중앙아프리카의 인구 2백만인 보츠와나 대통령이 북한의 인권실태를 담은 COI의 유엔 북한 인권보고서가 발표되자 `도대체 아프리카 난민보다 더 열악한 상황 속에서 자유 없이 굶주리며 살고 있는 나라가 있느냐. 북한 정권에게 인권유린을 당하는 주민을 진심으로 동정한다. 이러한 나라와 국교를 유지할 수 없다'고 성명을 발표하고 국교를 단절해버렸습니다. 땅덩어리는 우리보다 5배 크지만 인구는 2백만에 불과한 아프리카의 나라로부터 국교를 단절당한 나라가 북한입니다.”

 - 상징적인 이야기네요.

 그렇습니다. 강의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가 잘 살고 북한이 저렇게 못 사는데, 그 이유가 뭐냐? 우리가 똑똑하고 부지런해서? 북한 사람이 덜 똑똑한가요? 천만의 말씀. 분단 당시는 북한이 공업도 발달하고 더 나았습니다. 순전히 체제의 차이, 제도의 차이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은 주민 자신들이 선택한 게 아닙니다. 그걸 생각하면 북한의 인권 문제에 무관심할 수 없습니다. 우리 조상이 북한에 터를 잡았다면 내 자신의 문제가 될 수 있었던 겁니다. 전쟁 때도 아니고 평시에 수백만이 굶어 죽는 정권이 쉽게 용납될 수 있는 정권인가요? 북한 인권 문제에 관심을 안 가지면 이상한 거죠.

 통일 추진에 있어서도 북한 주민의 인권 회복문제는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독일 통일 과정에서 보듯이 동독 주민들의 인권 회복을 통해서, 다시 말해 1989년 평화혁명을 통해서 공산정권이 붕괴되고 동독 주민들 스스로 선거를 통해 만든 정부가 320(1990103) 만에 통일을 이뤄냈거든요. 북한도 3대 세습 정권이 무너지고 주민들에게 모든 자유가 보장된 가운데 스스로 투표를 통해 정부를 만든다고 할 때 결국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선택하게 되겠죠. 북한에서 그렇게 만들어진 정부라면 우리랑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북한 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북한 인권 회복에 전념하는 이유는 평화통일로 가는 첫걸음이기 때문입니다.”

 - 김정은 집권 3년을 어떻게 평가하시는지.

 지금까지는 큰 소요사태는 없습니다만, 김정은의 리더십이 안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언제 불안 요소가 발생할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북한의 젊은 지도자는 핵-경제 병진노선이라는, 사실 절대 조화될 수 없는 자기 분열적 국정노선을 채택하고 있습니다.

 권력의 2인자이자 정치적 멘토인 고모부 장성택을 잔혹한 방법으로 처형하고 측근들을 대대적으로 숙청하는 공포정치를 일삼고 있는데 단기적으로는 안정화에 기여할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국가운영 능력 손실이라는 큰 부메랑이 될 것입니다. 서른살 남짓의 젊은 지도자가 군 최고 수뇌부의 계급장(: 현영철 인민무력부장)을 수차례 뗐다 붙이기를 반복하고, 군 장성들의 군기를 잡는다는 명목으로 사격훈련과 행군, 수영을 직접 시키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마치 군대를 쥐고 흔드는 느낌을 갖는지 몰라도 군 장성들에 대한 심각한 모욕감과 불만을 키우게 됩니다. 통치력 부족이 가져올 내부 반발이 계속 누적되고 집단화된다면 권력은 크게 불안해질 것입니다.”

 - 원론적인 질문입니다만, 통일 어떻게 하면 앞당길 수 있을까요.

 강력한 의지와 국민적 합의, 소망, 자신감이 결정한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통일 기회가 온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원하지 않으면, 준비가 돼 있지 않으면 통일은 이룰 수 없습니다. 기회가 주어진다고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사진·정리 = 金南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