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6호 2015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일본을 연민한다

아사히신문사 초청으로 3박 4일 도쿄를 다녀왔다. 최근 2∼3년 사이 일본에 서너 번 다녀올 기회가 있었는데 갈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악화돼가는 한일관계 때문이다. 대형서점들에는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내용이 포함된 혐한(嫌恨)서적들이 서점 내에서도 눈에 띄는 매장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고 예전 같으면 길거리 노점상에서 흔하게 볼 수 있었던 한류 스타들의 포스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도쿄에서 만난 교민은 “한류 붐이 눈에 띄게 줄었다”면서 “얼마 전만 해도 TV만 틀면 한국드라마가 나왔는데 지금은 모두 사라졌다”며 “일본인들의 집단주의 근성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너도나도 더 이상 한국을 말하지 않는다”고 했다.
현지 기업인들은 더 울상이었다. “전자제품에서부터 라면까지 한국 상품 매출이 20∼30%가량 줄었다”는 거였다. 그들은 한일관계 악화에 따른 피해자는 결국 한국이라는 것을 위정자들이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하긴 한국은 대외무역비중이 80%가 넘는, 수출 없이 살 수 없는 나라이지만 일본은 20%대에 불과하다. 그들 스스로 말하는 대로 자급자족 경제가 가능한 나라이다.
일본에서 만난 교민들은 한국 정부에 대한 불만도 드러냈다. 한 사업가는 “과거사나 독도문제는 단시일에 해결될 수 없는 것이다. 그걸 물고 늘어져서는 해답이 없다. `조용한 외교'를 한답시고 일본과는 대화의 문을 닫고 국제 사회에 호소를 하면 일본으로서도 감정이 상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정상회담에 대해서도 시기를 놓친 감이 있다는 지적들이 많았다. “아베 총리가 약간 저자세로 나왔을 때 못이기는 척 응했어야 하는데 지금은 한다 해도 실익이 별로 없어 보인다”는 것이다.
일본 지식인들과 신문기자들 사이에서는 과거사를 왜곡하는 아베 총리에 대한 불만도 많았다. 한 대학교수는 “일본이 이런 식으로 막무가내로 갈 경우 국제사회에서 선진강국으로서의 체면을 세울 수가 없다. 아베 총리가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지적들이 지식인 사회에서도 팽배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들 “하지만 지지율이 높기 때문에 이런 상태는 오래갈 것이라는 게 제일 우려되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아베를 떠받치는 지지율은 무엇보다 그가 취임하면서 내건 `강한 일본의 부활'이 허언(虛言)이 아니었음을 모처럼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경제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기자가 도쿄에 체류하던 22일 니케이 지수는 15년 만에 2만선을 넘어서 일본 언론들도 달아올랐다.
이번 일본 방문을 통해 느낀 것은 안타깝게도 `아베의 폭주'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었다. 한편으론 `잃어버린 20년'과 동일본대지진의 상처를 극단적 민족주의로 풀어보려는 일본 정치권과 국민들을 보며 `오죽했으면' 하는 연민의 마음까지 생겼다. 어떻든 역대 최악의 한일관계 속에서 결국 중요한 것은 지식인들과 언론의 역할임을 거듭 깨달은 여행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