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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호 2004년 12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韓ㆍ中ㆍ日 자동차 삼국지 취재기

朴 逸 根(94년 人文大卒) 한국일보 산업부 기자 한국 자동차 산업이 일본과 중국의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듯

 `服務現代 現代意識(복무현대 현대의식ㆍ현대차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현대차를 위해 최상의 서비스를 다 한다)'  11월 4일 중국 베이징시 중심가에서 북쪽으로 60km 떨어진 순이구 린허공업단지. 베이징기차와 현대차의 50 대 50 합작법인인 베이징현대기차 공장 5km 전방부터 왕복 4차로의 길가 양쪽에는 `복무현대 현대의식'이라고 쓰여진 깃발이 20m마다 나부꼈다. 마치 `현대왕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베이징현대기차 노재만 총경리(사장)는 "공장이 들어선 뒤 지역 경제가 급성장하자 정부 당국에서 스스로 걸개글을 달고 관리하고 있다"며 "베이징현대기차가 인기 직장으로 떠오르며 최근 이 지역 집값도 2배로 뛰었다"고 말했다.  공장 정문을 들어서자 먼저 통유리로 만든 최신식 건물이 눈에 띄었다. 최성기 부총경리는 "당 고위 간부와 업계관계자 및 학생 등 공장 견학 방문객이 너무 많아 홍보관을 짓게 됐다"며 "지난달에만 모두 8천85명이 찾아 베이징시에서 천안문 광장 다음으로 방문객이 많은 곳이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밝혔다.  중국인들이 이처럼 현대차에 열광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현대속도' 때문이다. 2002년 10월 출범한 베이징현대기차는 설립 2개월만인 2002년 12월 EF쏘나타를 생산, 판매했다. 사실상 진출 원년인 지난해엔 EF쏘나타 단일 차종으로 5만2천1백28대를 판매, 중국 자동차(승용차) 시장에서 13위를 차지했다. 올해부턴 아반떼XD(현지명 엘란트라)도 투입했고 10월까지 EF쏘나타와 엘란트라를 합쳐 모두 11만8백62대를 팔아 단박에 5위로 올라섰다. 최 부총경리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들이 사활을 걸고 경쟁하고 있는 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회사 출범 2년 만에 누계 판매 5위를 차지했다는 것은 사실 기적이나 다름없는 일"이라며 "최근 중국 언론에선 이를 `현대속도'라는 말로 대서특필하며 주목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러한 `현대속도'가 가능했던 배경에는 현대차의 기술뿐 아니라 중국 근로자들의 성실성도 한 몫 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2교대 근무로 하루 22시간 가동되고 있는 이 공장은 나머지 2시간이 식사 시간인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24시간 풀 가동 체제다. 그러나 누구 하나 이에 대해 불평하는 이가 없다. 게으름을 피우는 모습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곳은 오히려 `만만디 중국'이 아니라 `스피드 중국'이었다.  아직 중국 자동차 산업의 수준은 우리와 상당한 격차가 있다. 중국 자체 브랜드 자동차가 생산되고는 있지만 문짝도 제대로 맞지 않을 정도로 `수준 이하'라는 것이 이곳 전문가들의 평가다. 그러나 주체하기 힘들 정도로 몰려드는 국제 자본과 경쟁하듯 이뤄지고 있는 선진 자동차 업체의 합작투자 등은 결국 중국 자동차 산업의 발전을 가속화시킬 것임이 분명하다. 이 경우 현재 우리 나라 총수출의 12% 이상을 차지, 수출 품목 가운데 1위인 우리 나라 자동차 산업에 상당한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것도 명약관화하다.  중국이 이처럼 무섭게 따라 붙고 있는 반면 일본은 저 멀리 도망가고 있다. 지난 7월 16일 찾은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자동차의 츠츠미 공장은 중국과는 또 다른 일본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보여 줬다. 미국과 한국 시장에서 인기가 높은 캠리와 렉서스 ES330, 하이브리드 차량인 프리우스 등을 생산하는 이 공장은 조립 과정에서 작은 문제 하나만 발견돼도 전 공정이 올 스톱된다.  모든 부품이 바코드 처리돼 생산라인부터 납품 공장까지 부품 정보를 공유하여 필요한 부품을, 필요한 만큼, 필요한 때에 공급하는 `JIT(Just In Time)' 시스템과 생산성 극대화를 위한 `움직이는 작업 마차(왜건ㆍWagon)' 시스템은 이제 이미 상식화한 도요타 생산 방식이다. 이 같은 생산 방식 덕분에 도요타자동차는 10여 년간 계속된 장기불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성장세를 이어가 지난해에는 판매대수에서 미국 포드사를 제치고 세계 2위 자동차 업체로 부상했다. 후쿠다 국장은 "도요타에서는 문제가 생기면 적어도 다섯 번 이상 `왜'라고 묻는다"며 "다섯 번의 `왜'에 답하기 위해 현장과 고객에게 가까이 갈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경쟁력이 만들어진다"고 말했다.  올해 일본과 중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취재는 "한국 자동차 산업이 경쟁력 제고를 통해 한 단계 더 도약하지 못한다면 결국 일본과 중국의 샌드위치 신세로 전락할 것"이라는 우려에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