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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 2015년 4월] 문화 꽁트

매부의 십자가 




 `따르르릉'

 새벽 4시에 웬 전화일까?

 여보세요-”

 잤댔구나. 자는데 깨워 미안하구만.”

 …….”

 . 미안한데 지금 좀 와줄 수 있갔어? 의논할 말이레 있어서 말이야.”

 피안도 말씨 매부 전화다. 무슨 일일까. 어제 저녁 뵀을 때 무겁던 표정이 맘에 걸린다.

 ***

 매부를 처음 만난 때는 1953년 초등학교 2학년 여름방학 때였다. 그 해 727일 휴전으로 한국전쟁이 마무리됐는데, 李承晩대통령께서 휴전으로 이북에 송환될 인민군 포로 중 자유 대한에 머무르기를 원하는 `반공포로'를 석방한다고 선포하셨다. 유엔군사령부는 절대 반대였지만 수용소 철조망이 군데군데 제거되고 국군 헌병의 엄호 하에 인민군 포로를 석방 탈주시켰다.

 유엔군은 무장 지프차로 탈주 포로 수색에 나섰다. 그러나 석방된 반공포로는 수용소 인근 주민들이 동포애를 발휘, 전원 은신을 도와줬다. 이런 까닭에 유엔군 MP수색대는 단 한 명의 반공포로도 찾아내지 못했고, 또 그들 역시 수색만 할 뿐 체포하려 하지 않았다. 李承晩대통령의 인민군 반공포로 석방은 대성공을 거뒀다. 참으로 위대하신 결단이다.

 李承晩대통령 덕에 우리 식구가 된 훗날의 매부는 반공포로 석방까지 청년기에 파란이 많았다.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 총알받이로 일본군에 징집된 매부는 고향 친구들과 탈영, 일본열도를 사람을 피해 산맥을 타고 헤매다 10월이 다 지나 해방된 소식을 알았으니 그 고생을 소주 한 잔하시면 안주 삼아 두고두고 옛날이야기처럼 하셨다.

 수학에 천재성이 있어 북한 최고과정을 졸업한 후 북한 엘리트 금속 기술자였던 매부는 친형이 월남했다고 숙청 대상이 돼 전쟁 중 월남을 시도하신다. 월남도 순탄치 않아 황해도 재령에서 9·28 서울 수복으로 도망 중인 인민군 패잔병 부대에 붙들려 북으로 다시 끌려가다 극적으로 탈출하고, 구사일생으로 인천까지 와서 미군 트럭을 얻어 탔는데, 그 트럭이 부산 연산리 제14야전병원 포로수용소로 수용되는 포로 트럭이어서 운명적인 포로 신세가 됐으니 매부의 청춘은 소설로 쓰면 문학상감이다.

 매부는 환도 후 남한의 금속공업계에서 그 천재성을 발휘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천재들처럼 우울증에 시달렸다. 종교엔 매우 냉소적이며 비판적이었고 독실한 가톨릭인 우리 집, 특히 매부의 장모인 우리 어머니를 무척 실망시켜 드렸다.

 술을 좋아하는 매부는 알코올 의존이 중독으로 넘어갔다. `내 주님은 술 '를 연호하시며 취중에 십자가를 부숴 버리기도 했다. 그러던 매부가 먼저 월남한 유일한 혈족인 친형이 세례를 받고 운명하시면서 입교를 당부한 것에 마음의 동요가 오셨는지, 천주교에 입교한 것이 몇 년 전이었다. 그러나 그 과정 역시 사연과 파란이 적지 않았다.

 네게 보여 줄 것이 있어서 보자고 그랬어.”

 한 돌 지나 아버지를 사별하고 실제 아버지 역할을 해온 소녀가장 누나는 막내인 나를 아들처럼 생각했었다. 누나는 무겁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며 매부의 일기장을 보여주셨다.

 ***

 -1977717

 고향 동무 영복이와 초복날이라고 복달임을 했다.

 `어디 불편해? 오늘 소주 넘김이 시원치 않네.'

 목에 가시가 걸린 것 같다. 개고기에 가시가 만부당한데.

 -197781

 가시가 갈린 것이 덧이 났나? 이비인후과엘 갔다. 식도에 뭔가 있으니 큰 병원엘 가란다.

 -1977822

 식도암으로 판정받고. 하필이면 삼키지 못하는 식도암인가 생각했다. 알코올 중독으로 술 미치광이던 나를 탓해본다. 절망적 상황을 가족에게 숨기려 해도 식도암의 특징은 물과 음식을 삼키지 못하는 결정적 징후 때문에 자연히 가족들이 눈치챌 것이다.

 -1977122

 성탄절이 다가오는데. 올 성탄이 가족과 같이 보내는 마지막 성탄일까. 넘버원 사진관엘 갔다. 영정사진을 찍으려.

 -19771217

 성탄 판공성사를 보았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내 큰 탓이로소이다. 다른 때와 달리 고해 성사가 길어졌다. 이 판공성사가 내가 볼 마지막 판공성사가 아닐까 생각했었다.

 -197811

 새해가 밝아 온 가족이 떡국을 나누는데 국물 한 모금을 마시지 못했다. 벌써 일주일째 나의 식도는 그 기능을 잃었다. 앞으론 다시 마시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무섭다. 요즘은 모든 영양을 수액에 의존한다. 아마도 죽는 날까지.

 ***

 누나와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렇게 파란 많던 매부의 일생인데 이렇게 끝을 맞이할 것인가. 시한부 생을 알고 고통받았을 마음을 생각하고 가슴이 저려왔다. 매부 서재에는 눈에 띄지 않던 건강식, 자연식 등 대체 치료 서적이 즐비해져 있었다. 얼마나 힘드셨을까.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황인데, 애 엄마가 반상회에 갔다가 순복음교 구역장을 만났다는 것이다.

 자기야, 순복음교 구역장 24동 아줌마 있지, 그 아줌마 자궁암 말기로 전신으로 암이 퍼져 수술도 포기하고, 집에서 죽기만 기다렸는데, 치유능력 있는 모 전도사님 안수로 완치됐대. 담당의사가 기적임을 인정했다며 꼭 안수 받게 해드리래.”

 나는 우리 성당 주성배 신부님께 전화를 드렸다.

 교파가 다른데, 신부님. 용산의 모 전도사가 치유기도 능력이 있다고 누가 추천하는데 기도 받으러 가도 될까요?”

 물론 오케이, 생명의 주관자이신 하느님 앞에 교파가 따로 있을 수 없어요. 마음 편하게 감사하는 마음으로 기도 받으세요.”

 기적을 만드는 용산 천막 교회 전도사는 멀리 캐나다에서도 안수치료 받으러 온단다. 매부는 우리 애 엄마와 24동 구역장 아줌마의 인도로 용산 천막 교회에 가서 이틀간 안수기도를 받았다. 첫날은 통증이 많이 완화되더니, 2일째는 물도 마셨다. 벌써 몇 달째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링거액으로 수분을 공급해오셨는데 참으로 기적의 순간이었다.

 성도 여러분, 여기 이 자리 성령께서 역사하심이 확실합니다.”

 전도사는 치유에 대한 확신이 차서 말씀하셨다고 애 엄마가 전한다. 몇 달 만에 물을 삼킬 수 있었던 그날 저녁, 누나네는 축제 분위기였다.

 매부 축하드려요. 안수기도로 새 생명 받으셨네요.”

 온 가족이 반기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니 매부도 애써 기쁜 표정을 지으셨다.

 그러나 상태가 극적으로 호전되고 온 가족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분위기임에도 불구하고 매부의 표정은 천근의 추가 달린 듯 무거워 보였다. 왜였을까?

 새벽 전화를 받고 매부를 집으로 찾은 나는 실내등도 꺼진 채 누워 계신 매부의 메마른 손의 흔들림, 그 환영의 표시를 응시하며 가슴이 내려앉았다. 어제 헤어질 때 표정의 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안수기도 받으러 가지않으련다.”

 …….”

 나 내가 왜 이렇게 됐나 생각해 봤어. 내가 술 한 방울 물 한 모금 마실 수 없게 된 까닭은. 먹고 마시는 것으로 30, 주님을 모독해왔기 때문이야. 삼킬 수 없던 고통은 나를 망치는 술을 더 넘기지 말라는 계시였어. 고백의 기도 경문의 `내 탓이오 내 탓이요 나의 큰 탓이로소이다'라는 참뜻을 이제야 알았어.”

 새벽의 여명이 창 커튼 새로 비치면서 회색빛 암환자 뺨에 흐르는 눈물을 볼 수 있었다.

 어젯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의 암 덩어리가 모두 그분이 내게 주신 사랑의 십자가라는 것을 깨달았어. 수많은 세월 이웃 사랑은커녕, 나 자신마저 미워하고 학대한 죄를 기워 갚을 나의 십자가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