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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5호 2015년 4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서울대가 靑史에 빛나려면 기록보존부터



 17년 전 외환 위기 시절의 일이다. 나는 30대 후반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정부기록보존소에 취직했다. 논문을 쓸 때 자주 이곳을 방문한지라 딱딱한 공공기관이라기보다는 기록보존기관이라는 이미지로 와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마음 한 켠에서는 불만이 가득했다. 자료를 찾으면 나오지 않았을 뿐더러 소장자료도 잘 검색되지 않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달랑 목록을 보여주면서 거기서 찾으라는 사서의 안내에 내심 불쾌하기까지 했다. 이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가 이런 정도라면 이 기관의 존재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내가 이 곳에 취직하고 나서 맡은 업무 중의 하나가 일제강점기 자료를 정리하는 일이었다. 담당 직원이 꽤 있을 줄 알았는데 웬걸 나와 학예연구사 단둘이서 이 수많은 문서를 정리하고 관리해야 했다. 어느 날이었다. 수많은 역사학자들이 이곳을 방문했고 나는 문서고를 안내하면서 현황을 보고했다. 그런데 누가 이렇게 힐책했다. “도대체 이렇게 중요한 일제강점기 자료를 정리하지 않고 뭐하고 있나라고. 나는 처음에 말문이 막혀 가만히 있다가 도대체 여러분들은 우리나라 기록보존의 현실을 아십니까. 이 문서 관리는 나와 학예연구사 단둘이 합니다. 이런 현실에서 역사연구자들이 원하는 문서를 금방 찾아내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주변 동료의 격려에도 마음이 결코 편치 않았다. 나 역시 예전에는 저 양반과 같은 비난을 마음 속으로 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이렇게 답변한다고 기록물의 보존과 열람, 역사 편찬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것인가.

 이후 17년이 흘러 나는 서울대학교 기록관의 관장을 맡게 됐다. 전임 관장이 나를 본부에 추천하고 싶다는 언질에 선뜻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나는 그저 자료를 읽으며 좋은 연구서를 쓰는 학자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관장을 맡기로 했다. 서울대 동문들이 모교의 역사와 자신의 학창시절을 알려고 하면 제일 먼저 서울대 기록관을 찾아오도록 노력하는 것이 서울대를 청사에 빛나는 학교로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짐하자 여러 학자와 국민들이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산 역사를 알기 위해 이곳을 방문한 뒤 기분좋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책무감이 가슴속에 훅 들어왔다.

 그러나 나의 이러한 다짐과 희망은 문서고를 하나하나 살피면서 한숨으로 바뀌었다. 수많은 문서들이 비좁은 공간에서 겨우 숨을 쉬고 있었다. 여기서 동문들이 원하는 문서를 어떻게 빨리 찾는다는 말인가. 앞으로도 이관돼 올 수많은 문서들과 박물류는 어디에 보관한다는 말인가. 문서고는 입학본부 건물 1층에 있고 민원담당 사무실은 보건대학원 옆 220동에 있는 데다가 또 다른 협소한 문서고는 문화관에 있으니 동문들의 열람 요청에 어떻게 일일이 대응할까. 역사편찬위원들에게는 어떤 자료들을 제공할 것인가.

 우리 선배들은 1946년 개교 이래 수많은 난관과 전쟁을 거치면서도 대한민국 고등교육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이들 선배의 흔적을 담은 기록들을 제대로 보존하고 정리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노력은 한낱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서울대 역사는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나지 않는다. 피땀 어린 노력의 흔적을 고스란히 잘 간직할 때 서울대가 청사에 영원히 빛날 것이다.

 이번 2015년 개교기념일에는 1945년부터 1953년에 이르는 엄혹한 시기에 모교가 어떻게 굳건하게 바로 섰나를 보여주는 전시회를 개최하고 싶다. 그리고 문서고, 행정사무실, 역사연구기록관(가칭)이 한몸이 돼 동문들과 국민들에게 서비스하는 기관으로 거듭 태어나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