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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1호 2004년 12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자신에게 맞는 교육을 받을 기회


 11월 17일 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서울대도 새로운 동문을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로 바쁘다. 내년 초까지는 수시와 정시 모집 전형을 해야 한다. 그런 노력을 기울이는 이유야 말할 것도 없이 어떻게든 좋은 학생을 뽑으려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 동문들끼리 모이면 걱정이 많다. 입시에 대한 정부의 간섭이 심해지면서 국립대학이라는 이유로 더 불이익을 받는다는 불만이다. 교육 평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교육 정책을 지배하고 있고, 사립대학은 어떻게든 그런 통제를 피해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노력하겠지만 국립대학이라는 굴레를 쓴 서울대는 어렵지 않느냐는 것이다. 모교 교수들 중에도 "우수 학생이 사립대로 빠지고 있다. 이러다 서울대가 2류, 3류로 전락할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분이 있다.  교육의 평등은 기회의 균등이다. 누구나 같은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공평하다. 중학교 수준의 수학도 풀지 못하는 학생에게 대학 수학을 배우는 기회를 준들 무슨 도움이 되겠는가. 그건 고문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고 고등학생 이상의 실력을 갖춘 학생에게 중학교 수준의 수업을 듣도록 하는 것도 교육의 목적에 역행하는 것이다. 그런데도 모든 학생이 같은 내용을 배워야 한다는 식의 주장이 정의와 형평성의 이름으로 횡행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강남 학생은 비싼 과외로 공부를 잘하니 그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한다. 강남에 거주한다고 모두 비싼 과외를 한다고 장담할 수 있는 건지, 지방에서 일등한 학생은 모두 독학으로 공부했다고 인정해야 하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강남 학군의 차별성이란 것도 사실 평준화의 결과다. 학습 능력이 너무나 차이가 나는 학생들을 한 교실에 모아놓고 공교육을 무너뜨리는 바람에 사교육이 지나치게 커졌다. 공교육만 살릴 수 있다면 서울과 지방이 무슨 문제인가.  대학은 감투를 나누는 곳이 아니다. 학문을 가르치는 곳이다. 수학능력이 비슷한 사람끼리 모아 최대한의 교육 효과를 거두고, 우수한 인재를 길러내는 것이 국가발전에도 이바지하는 길이다. 그런데도 정치적․경제적 변수가 더 중요하게 받아들여져 백년 뒤를 준비하는 교육을 휘저어버린다면 우리에게 미래는 없게된다.  학연 중심의 패거리 문화가 우리 사회에 끼친 폐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하향평준화에만 매달릴 일은 아니다. 이제 교육 개방이 논의되는 마당이다. 무너진 국내 공교육을 믿지 못해 자녀들을 해외로 보내는 사람도 해마다 늘어난다. 지난해 한국의 해외 유학생은 대학생 16만명, 초․중․고교생이 1만5천명 정도다. 그런데도 학연을 없앤답시고 학생들의 하향평준화에만 매달리니 빈대 한 마리 잡으려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이런 잘못된 편견을 없애기 위해서도 우수 학생을 선발하는 것 이상으로 그 자질을 갈고 닦아줄 시스템을 갖추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하는 것은 대학의 몫이다. 〈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