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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2015년 3월] 문화 꽁트

충견 똘이의 죽음 





 나는 동물과의 잊지 못할 인연으로 강아지 똘이가 있다. 똘이는 우리 집에 생후 1개월 만에 왔는데, 지인이 선물한 시추와 마르티스 잡종의 흰색 강아지였다. 아주 똘똘하게 생겨 이름을 `똘이'라고 지었다. 어려서부터 영리해 우리 가족을 잘 따랐으며 우리 집에서 누가 가장 어른이고 파워가 있는지를 아는 영특한 강아지였다. 체구는 애완용인지라 성장 체중 4kg, 30cm 정도였다.

 똘이가 어릴 때는 아파트 현관문이 열려만 있으면 쏜살같이 밖으로 뛰어 나가 찾느라고 애를 먹이곤 했으나 다행히 멀리까지 가진 않고 아파트 단지 뒤편의 초등학교까지 달아나는 경우가 가장 멀리 간 경우였다. 주말이면 오전에 목줄을 하고 데리고 나가 산보를 했는데 이 작은 체구의 강아지가 앞서 가겠다고 씩씩거리며 나를 끌고 가곤 했다.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에서 30여 분 산보를 했다. 산보 거리가 점점 길어지면서 주변의 다른 아파트단지까지 걷기도 하고, 아파트 주변 경부고속도로 옆길을 따라 이웃 동네까지 걷곤 해 산보시간이 1시간 이상 길어지기도 했다.

 신기한 점은 내가 주말에 산보를 나가지 않고 누워 있으면 내 머리를 앞발로 툭툭 치며 나가자고 하는 것이었는데, 평일에는 가만히 있다가 주말을 어떻게 알고 그런 행동을 하는지 신기했다. 내가 아침에 출근하기 위한 옷차림을 하고 현관문을 나서면 절대로 짖지 않고 가만히 있곤 하는데, 집에서 잠깐 외출하려고 또는 복도로 나가려고 옷을 입고 있으면 자기도 데려가라고 짖어대고 따라오는 것도 기특했다.

 나는 자녀를 12녀를 뒀는데 아들이 군에 가고 딸 둘이 외국 유학이나 어학연수 등으로 출타해 거의 일년간 집안에 아이들이 없고 아내와 단둘이 있던 적이 있었다. 이때 우리는 똘이를 둘째 아들이라고 불렀으며 부부만 있던 조용한 집안에 많은 위로가 됐다. 2년 반 전 대학에서 정년하며 제자들이 준비한 정년기념 초청강연과 만찬회에서는 발표용 슬라이드 마지막 페이지에 우리 집 둘째 아들이라고 설명을 붙인 똘이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똘이는 우리 집에서 19952월부터 200910월까지 15년여를 살다가 심장판막증이라는 병으로 약 6개월간 투병생활을 하고 죽었다. 2009년도 봄으로 기억되는 어느 날 똘이를 데리고 아파트 주위를 산보하는 중이었다. 똘이가 평지에서는 앞장서서 잘 걸어가더니 아파트 정문을 지나 오르막길이 나타나자 걸음을 멈추고 계속 안아 달라는 것이다. 그동안 항상 나보다 앞에 서서 나를 끌고 가듯 하던 녀석이 이제 나이가 15살이 됐으니 늙고 약해져서 경사진 길을 오르기가 힘든가보구나 하고 가볍게 생각했으나 이런 현상이 반복됐다.

 또한 여름의 더위를 대비해 똘이의 털을 깎아주고 보니 배 부분이 불룩했고 집안에서도 걸어가다 뒤뚱거리며 몸을 못 가누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진찰을 받아 봐야겠다고 생각하고서는 늘 예방주사를 맞던 동네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았더니 큰 종합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해 우리 대학의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동물병원에서의 입원 진료 과정은 일반 병원과 같이 환자 동물 이름, 나이, 증상과 진료 담당 주치의 교수를 배정하고 나서 진료가 시작됐다. 주치의인 수의과대학 교수는 진찰 결과 똘이가 심장판막증으로 매우 위험한 상태여서 당장 입원해야 하며 입원 중에라도 잘못될 수가 있다는 소견을 들려줬다.

 똘이는 34일간 입원해 진료를 받았고 배에 찬 물을 빼내었으며 집에서의 치료 방법을 듣고 치료약을 받은 후 퇴원했는데 그동안의 여러 검사 비용 등을 포함한 입원비가 무려 1백여 만원이 넘었다. 교직원 할인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동물 치료는 의료보험에 해당되지 않아 많은 비용이 들었다. 그 이후 한 달에 한 번 꼴로 동물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약을 받아오는 생활이 약 6개월 지속됐다. 문제는 똘이가 약을 먹지 않으려 하는 것이었다. 다른 음식과 섞어 주기도 하고 물에 타서 억지로 먹이기도 했으나 이때는 안 먹으려 하고 사나워져 물기도 하는 등 약을 먹이는 어려움이 컸다.

 병원에서 퇴원할 때 담당 주치의 교수는 똘이가 나이도 많고 심장병으로 수개월 내로 죽을 것이므로 가족들과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다. 내 주변에서는 안락사 방법도 있음을 알려 줬으나 아이들의 반대로 안락사는 포기하고 살아 있는 마지막까지 치료를 계속해 가기로 했다.

 개의 수명은 일반적으로 15년 내지 20년이라 하며 사람의 나이로 환산하면 개의 나이에 5를 곱하면 된다고 하니 똘이의 나이는 사람 나이로 75세에 해당되는 나이였다.

 똘이는 병중에는 하루 종일 거실에 옆으로 누워 있었으나 초기에는 내가 퇴근해 현관문에 들어서면 똘이야 나오지 않아도 돼하는데도 아픈 몸을 질질 끌고 뒤뚱거리며 현관까지 나와 나를 맞이하곤 했고 병이 더욱 심해져서 움직이지 못할 때에는 내가 퇴근해 들어오면 머리를 돌려 나를 쳐다보며 아는 체를 하곤 했다. 나는 개의 충성스러움을 새삼 느끼며 우리들도 아니 자식들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생각하곤 했다. 사람들이 화가 나서 싸울 때 왜 상대방에게 `XX(son of a bitch)'라고 욕을 하며 경멸하는지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우리는 과연 부모님께, 친구나 지인이나 직장 상사에게 또는 주변 이웃에 얼마나 믿을만하고 신뢰감이 있으며 충성을 다해 보살펴 줄 수 있는지 반문해 본다. 똘이는 병중인 6개월간 아프다고 신음 소리를 내본 적이 없었다.

 우리는 조금만 몸이 불편해도 신경질과 짜증을 내며 가족들을 귀찮게 하는 경우가 많고 자신을 돌보아 주기 원한다. 또한 자기가 병중인데 신경 써 주지 않는다고, 최선을 다해 치료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기 일쑤이다. 나는 아직까지 병원에 입원해 본 적은 없지만, 앞으로 나이가 더 들어 병원을 자주 찾고 입원을 하게 된다면 가족들에게 또한 주변의 친지들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을까 염려가 된다.

 얼마 전 고경력 과학기술인을 위한 경력 전환 교육 프로그램에서 건강과 힐링 강의를 들으며 의식불명 상태로 병원에 입원하더라도 중환자실에서 산소마스크를 쓰지 않고 조용히 죽음을 맞을 수 있는 서류 작성법을 알게 돼 안심하고 있다. 가능하다면 수의보다는 평소 즐겨 입던 셔츠를 입고 시신은 화장하며 가족과 친지들에게 생전의 자신만만하고 건강하며 열심히 살던 아름다운 추억을 남겨 주자는 생각이 깊다.

 나는 `살아 있다'는 의미를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고 걸을 수 있으며, 특히 책을 읽을 수 있고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며 가족들과 지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때'라고 생각하고 있다. 집안의 장남으로서 부모님의 장기간 병환을 겪으며 스스로에게 남겨진 신념인지도 모른다. 조용히 편안하게 보내드려야 할 부모님이나 지인들을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단지 생명만을 연장하는 주변 모습에 익숙하지 않다. 중환자실에서 의식이 없이 산소마스크로 생명을 연장하는 식물인간의 모습을 보이지 말라고 아내와 자녀들에게 누누이 다짐을 주고 있다.

 마침내 20091020일 오후 1시경 아내가 외출 후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에 똘이가 누워 있었고 설사를 해서 거실 바닥이 더러워져 있었다고 한다. 그 순간도 아내에게 반갑다고 누워서 꼬리를 쳤고 고개를 들어 집사람을 보며 반겼다고 한다.

 아내는 똘이의 더러워진 몸을 씻어주기 위해 똘이를 샤워실로 옮겼는데 몸을 씻기도 전에 눈을 뜨고 숨을 거두었다고 근무 중인 나에게 알려줬다. 아내는 똘이를 깨끗이 씻어준 후 준비해둔 하얀 상자에 깨끗한 수건을 깔아 똘이를 눕히고, 흰 수건을 덮고 상자 뚜껑을 덮어 똘이의 관으로 손색이 없게 했다.

 나는 가족과 상의해 애완용 동물들을 화장하는 장소가 있는 김포 서쪽 애완동물 화장집-마치 유치원 건물처럼 생긴 집-으로 똘이 관을 승용차로 옮기고는 기독교식으로 찬송가를 녹음으로 들려주며 용광로로 들어가는 똘이의 시신을 유리창 너머로 보았다. 화장 후 뼛가루를 담은 작은 유골 항아리는 우리 집 거실에 똘이 사진과 함께 진열했다. 똘이는 거실에서 지난 3년 반을 더 머물다가 재작년 3월 말 강원도에 위치한 부모님 묘소 옆자리에 납골 항아리째 깊이 묻히며 우리 가족 곁을 떠났다.

 나는 지금도 둘째 아들 똘이의 크고 영리한 눈망울과 몸을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아프면서도 주인 가족에게 한결같이 보여준 반가운 모습과 충성심을 생각할 때마다 똘이가 몹시 그리워진다. 똘이가 죽은 후 나와 우리 가족은 심적으로 상당히 상처를 받아 앞으로 수년간은 강아지를 받아 키우기가 어려우리라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