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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4호 2015년 3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한 언론인의 사직서



 얼마 전 영국의 정통 보수일간지 텔레그래프의 수석 정치평론가인 피터 오본이 `나는 왜 텔레그래프를 그만두었는가'라는 제목의 공개 사직서를 띄워 파란을 일으켰다. 텔레그래프의 경영진이 거대 은행 HSBC의 광고가 끊길 것을 우려해 HSBC에 비판적인 기사를 축소하거나 삭제한 일을 고발한 이 글의 파장은 컸다. BBC, 가디언, 타임스 등이 이를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텔레그래프는 사설과 1면 기사로 이들 언론도 결코 광고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며 반격해 싸움이 확전됐다.

 언론인으로서 읽은 오본의 공개 사직서는 단지 광고주의 압력에 대한 내부고발만이 아니다. 이 시대 언론이 처한 딜레마적 현실을 단적으로 드러낸 자기고백이자 이 사회에 언론의 미래를 고민하게 만드는 화두였다.

 1850년대에 창간돼 영국 전역에서 널리 읽히는 텔레그래프는 전세계 유수의 신문이 그러하듯 디지털 파도에 휘청거리고 있다. 발행부수는 급감하고 온라인 콘텐츠를 강화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렸다. 1923년부터 2004년까지 81년동안 단 6명의 편집국장이 평균 13.5년씩 편집 방향을 유지했지만 2004년 사주가 바뀐 이후 2014년 한 해에만 3명의 편집국장이 자리에 올랐다. 사실 편집국장(editor)이라는 용어조차 사라졌고(`Head of Content'로 바꿨다), 국제부는 대폭 축소됐으며, 인재들이 회사를 떠났다.

 조직이 흔들리자 단어 하나를 따져가며 정확한 보도를 위해 애쓰던 전통도 무너지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밀히 구분해 쓰던 `deer hunting'`deer stalking'을 혼용해 쓴 자사 기사를 두고 오본은 간부들은 두 개념이 어떻게 다른지 상관도 않겠지만 우리 독자들은 알고 있다고 한탄했다. 오보라는 게 알려졌는데도 `가슴 3개 달린 여성'에 대한 온라인 기사를 내보낸 것에 대해선 “(온라인 조회수에만 급급해) 신문의 평판을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본을 더욱 좌절하게 만든 것은 경영진의 반응이었다. 광고주의 압박에 뉴스 보도가 영향을 받는 것을 그렇게 나쁜 일이 아니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여겼고, 공짜 온라인 콘텐츠가 신문만큼 수익을 내지 못하고 충성스런 독자들을 오히려 떨어뜨릴 수 있다는 오본의 우려는 모르는 소리 마라고 일축했다.

 디지털 모바일 시대에 다른 콘텐츠처럼 뉴스 역시 제값을 받지 못하고 신문사의 생존은 불안해졌다. 우리나라는 일찌감치 IT산업을 장려하고 지적재산권 보호에 소홀했던 터라 상황은 더 심각하다. 그런데 이를 그저 각자 언론사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오본이 지적했다시피 자유 언론이 건강한 민주 사회 유지에 필수이기 때문이다. 반사적으로 클릭해 15초쯤 눈길을 머물게 하는 흥밋거리 외에 이 사회가 언론에 요구하는 것은 분명하다. `기레기'라는 말은 역설적으로, 기자란 정치적 성향이나 개인적 이해득실을 떠나 정확하고 공정한 보도를 통해 소수 약자를 대변할 것을, 정치권력을 견제할 것을, 제도적 문제와 기득권층의 비리를 파헤칠 것을 임무로 함을 암시한다.

 우리도 오본이 던진 문제를 곱씹어볼 때다. 상업주의 언론은 정치권력으로부터 독립을 가능케 했다. 디지털 시대에 시장에서 무너지고 있는 언론을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