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2호 2015년 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거창한 직함, 겸손한 직함

제 직함이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입니다. 2014년 3월 동아일보를 퇴직하고 신문협회로 옮기면서 얻은 자리입니다. 사무총장, 너무 거창한 직함이어서 처음 제의 받았을 때 살짝 놀랐습니다. `하는 일은 조그만 협회의 사무국 책임자 역할일 텐데 감투 이름이 참 크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실제로 와 보니 저를 포함해 15명이 일하는, 그리 크지 않은 조직이었습니다.
며칠 후 명함을 받고는 더 놀랐습니다. 영어로 Secretary General이었습니다. 이건 유엔 사무총장을 부를 때도 쓰지만 사회주의 국가에서 공산당의 서기장 또는 총서기를 부를 때도 쓰는 말 아니겠습니까? 브레주네프, 흐루시초프, 마오쩌둥, 후진타오 등의 영문 직책이 Secretary General입니다.
궁금해 영어사전에서 Secretary General을 찾아봤습니다. `대규모 국제 조직 또는 정치 조직의 사무총장'이라고 번역했더군요. 아, 민망….
우리는 직함을 좀 크게 쓰는 경향이 있습니다. 전형적인 것이 `대통령'입니다. 우리가 맨날 대통령, 대통령 하면서 익숙하게 부르기는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統領이라는 말만해도 그 의미가 엄청납니다. 통. 령. 통할하고 영도하는 직분이라…. 각료의 대표라는 수상, 대신 중의 수장이라는 총리대신 등과는 비교가 안 됩니다. 이에 비해 대통령 제도의 창시국인 미국식 표현 `The President'는 너무 겸손한 語源을 가졌지요. 회의를 주재하는 사람이라는. 하지만 한국에서는 통령이라는 말로도 성에 안 차 대-통령이라고 부릅니다. 자연인에게 이런 직함을?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직분에 맡겨진 일을 만족스럽게 해내는 분이 드문 것일까요?
이런 생각을 갖고 주변을 살펴보니 사무총장이라는 직함을 쓰는 단체가 꽤 있더군요. 사무장에서 시작해 사무국장으로, 또 전무 또는 사무총장으로 직급 인플레가 이뤄진 것입니다. 회장이 비상근하는 경우 상근부회장이라는 직함도 많이들 씁니다.
반면 직함을 겸손하게 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30년 가까이 기자로 있어서인지, 이런 경향이 가장 강한 직군이 기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기자들끼리 모임을 만들 때면 대개 대표자로 `간사'를 뽑습니다. 공채 27기 동기회 간사, 노동조합 설립준비위 간사 이런 식입니다. 사무의 줄기 노릇을 하라는 뜻이죠. 중견 언론인 모임으로 국내 최고의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언론단체 관훈클럽에서는 대표자의 직함이 `총무'일 뿐입니다. 얼마 전 관훈클럽 62대 총무가 선출됐습니다. 제 눈엔 이런 칭호가 참 좋습니다.
아, 그렇다고 기자들의 본성이 특별히 겸손하고 온유하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그저 직함을 그렇게 부른다는 것일 뿐, 그들의 성품이나 행태와는 아무 상관관계가 없습니다.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