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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2014년 11월] 문화 꽁트

나는 무죄다  




 이 나라는 어떻게 된 나라인가.

 나는 오로지 내 소신과 양심에 따라 공화국정보원의 수장으로서 나의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따름이다. 모든 일은 그 과정에서 일어난 것일 뿐이다. 그럼에도 현직 공화국정보원장인 이 마성대를 체포해 철창 속에 가두고 재판 놀음에 불러내어 단죄하겠다는 엄청난 일을 일으키다니. 과연 이 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는 것인가.

 나라를 지키는 일은 그리 간단한 것이 아니다. 적은 저 국경선 철조망 너머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나라 안 곳곳에 침투해서 보이지 않는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지난 선거에서 야당 대통령 후보를 지지했던 목소리들이 모두가 야당을 지지하는 시민들의 순수한 의사 표현이었다고 생각하는가? 그리 생각한다면 그것은 순진하고도 무지몽매한 착각일 따름이다. 또한 여당의 대통령 후보를 비판 아니 비난하고, 심지어는 미련하고 탐욕스러운 동물에 빗대어 돈()통령 후보라 부르며 제멋대로 찧고 까불던 만행들이 그 새파란 젊은 검사의 주장처럼 모두 용납될 수 있는 행위란 말인가? 아니다. 지난 재판 기간 동안 법정에서도 드러났듯이 사이버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리 만만하지 않다.

 ·서국으로 분단된 이 슬픈 나라에서, 적은 사이버 세계에서 암약하며 호시탐탐 우리를 삼킬 기회를 노리고 있다. 그들이 야당 후보를 은밀하고도 교묘하게 후원하는 것은 야당 후보가 좋아서 그러는 것이 결코 아니다. 또한 지금의 대통령을 비난하는 무수한 언사들도 이른바 진보 인사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민주주의 사회에서 누구나 다양한 의견을 갖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자유의 범주에서 나오는 그런 순수한 것이 아니다. 그 목소리들의 대다수는 오로지 자기들이 반대했던 후보가 당선됐다는 불만으로 모든 일을 무조건 대통령의 탓으로 돌려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자 하는 광인들의 것이거나, 앞 세대가 피흘리며 지켜온 이 땅을 기필코 적에게 넘기고야 말겠다는 적성국 추종자들의 것이다.

 이러한 엄연한 사실을 법정에서 그리고 언론을 통해 낱낱이 밝혀야 함에도, 나의 변호인은 내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정치 개입이나 선거 개입의 의도가 전혀 없었고 조직의 책임자로서 원칙적인 직무 수행 지침을 내렸을 뿐이라는 내용으로 법정 진술만을 하게 하고 있다. 아니, 정치 개입과 선거 개입 여부를 다투는 것이 그다지도 중요한가.

 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는 정보 분야의 중책을 분골쇄신 담당하고 있던 나를 추운 감옥에서 떨게 하고 이 지루한 법정에 세운 이 나라의 검찰과 법원은 과연 제정신이 있는 것인가.

 - 피고 마성대, 전직 공화국정보원장, 불법적인 정치 개입과 선거 개입 혐의 모두 유죄, 국가 모독과 직무 유기 혐의 모두 유죄. 징역 1백년에 처한다. ! ! !

 재판장은 마치 사소한 강도 사건에 판결을 내리듯 몹시 건조한 어조로 심판했다. 유죄, 징역 1백년이라니! 법원은 정녕 이 나라를 무너뜨리려는 것인가. 아직 초가을인데도 교도소 담장 안은 엄동설한처럼 싸늘해서 팔뚝에 소름이 오소소 돋아오르는구나.

 나의 정당한 직무 수행 외에 정치 개입, 선거 개입의 의도와 행위는 전혀 없었다는 변호인의 전략은 완전히 수포로 돌아갔다. 공화국정보원장의 직무 수행은 원천적으로 정치 개입과 선거 개입을 초월한 것이다. 상식적으로 보아도 국가를 수호하고 국민의 삶을 안정시키는 일과 관련된 막중한 과업이 어찌 정치와 무관하고 선거와 무관할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만 정치 개입과 선거 개입을 인정한 판사의 판단이 옳을 뿐, 이런저런 법조문을 읊어대며 나를 범법 행위자로 낙인찍은 판사의 판결은 빗나간 것이다. 게다가 특정 후보를 당선시키려는 공화국정보원장의 선거 개입은 공직자의 직무 유기에 다름 아니고, 공화국의 정체를 모독한 국가 모독이라는 판단은 그야말로 엄청난 비약이며 궤변이다.

 너희가 제멋대로 기소하고 법조문을 들이대서 판결한 것과 상관없이 나 마성대는 무죄다!

 전직 대통령과 현직 대통령을 유죄 판결하기 전에는, 나는 결단코 무죄다.

 이 일이 어떻게 일어났던가 돌아보면, 이전의 선거에서의 패배가 사이버 시대에 신속히 적응하지 못한 것이었음을 절실히 깨닫고 당과 정보기관, 군기관이 은밀히 대비해온 데서 시작됐다. 어렵게 다시 잡은 정권을 내주지 않기 위해 암암리에 공작을 해왔음에도, 무모하게 추진했던 5대강 사업의 실패 여파로 여론이 나빠져 권력의 향방은 점칠 수 없게 혼미해졌다. 아니 혼미한 것이 아니라, 가장 정확한 공화국정보원의 예측으로 야당에서 누가 나오든 여당 후보가 당선할 가능성은 희박했다. 그것은 표면적인 여당 후보 개인의 인기로는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분석돼 비상이 걸렸던 것이다. 더구나 `사람 사는 세상'을 내세운 야당 후보는 떠오르는 정치 샛별인 IT 기업 총수와 손을 잡고 세력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따라서 이미 기획해뒀던 `가물치 작전'을 시동해 대대적인 사이버 선거전을 펼쳐야 했다. 야당 후보를 깎아내리고 여당 후보를 칭찬하는 댓글을 다는 차원의 기초적인 것부터 비논리와 막말로 분탕질을 하여 후보 검증이나 객관적 판단을 할 수 없게 하는 등 다차원, 고차원의 방법을 쓰는 것까지 137가지 전술을 풀가동했다. 우리 요원들이 쓰고 퍼날랐다고 증거로 제출된 트위터, 페이스북, 포털사이트의 댓글 1백만 건이라는 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 모든 작전은 전직 대통령의 취임 초기에 대통령의 지시로 준비되기 시작했고,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진행됐던 것이다. 여당의 대통령 후보가 선출되자, 나는 대통령의 지시로 선거 전망 분석과 가물치 작전 수행 계획을 가지고 은밀히 후보를 만났다. 권력이 야당으로 넘어가면 감옥행을 면치 못할 대통령과 그 대통령의 지원이 절실하게 필요했던 대통령 후보, 그리고 안정된 직장과 풍족한 생활을 포기할 수 없었던 관료가 만난 결과는 예상대로였다. 그리하여 모든 일이 각본대로 진행됐는데도, 이 마성대만이 법정에서 수모를 당하고 감옥에서 고초를 겪어야 하다니!

 만약 이것이 추진되지 못하고 좌절됐다면, 당시에 대통령 후보가 가물치 작전 없이도 당선될 수 있다고 이를 거절했다면 이 나라는 줏대 약한 야당 대통령 후보의 손에 넘어가 무정부주의적 혼란에 빠지고, 이를 틈타 적국은 정부를 전복하고 말았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엄연하고도 막중한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고 감히 공화국정보원장을 범법자로 몰아 고난에 빠뜨리는 이 나라 검찰과 법원은 정상적인 것이며, 이를 지켜보고만 있는 대통령은 지난 일을 모두 망각 속에 묻어두었단 말인가. 나는 결단코 항소해 법정에서 이 모든 것을 밝히고 언론에 샅샅이 전말을 폭로할 것이다.

 가을 코스모스를 흔들며 불어오는 삽상한 가을바람이 싸늘하게만 느껴지는 오늘, 교도소 식당의 텔레비전에 대통령은 무슨 일로 등장하는가. `대통령의 특별 담화'라니, 구중궁궐 깊은 대통령 공관에서 따뜻한 침실과 맛깔스런 식사를 즐기고 비서들의 달콤한 아첨에 빠져서 나 같은 존재가 감옥에서 썩고 있는지는 까맣게 잊고 있더니 무슨 특별한 일이 생각났는가.

 - 대통령으로서 저는 국민 앞에 머리 숙여 사죄하며, 저의 신임을 묻습니다.

 지난해 대통령선거에서 여당 사이버홍보팀과 국군 사이버전투단, 공화국정보원 심리전팀이 삼위일체가 되어 저를 불법적으로 지원했기에 저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자격 없는 대통령으로서 당장 대통령직을 사퇴함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선거 부정은 아직 객관적인 사실로 규명되지 않은 저의 양심에 따른 고백이므로, 제가 갑작스럽게 사퇴함으로써 국정 혼란을 야기하는 것은 국가지도자로서 현명한 처사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다음과 같이 국정 개혁을 약속드리면서 투표로써 국민 여러분께 신임을 묻고, 국민 여러분이 신임하시지 않는다면 바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습니다. 첫째, 어떠한 국가기관도 선거에 개입할 수 없도록 특별법을 제정해 시행하겠습니다. 둘째, 공화국정보원을 폐지하고 해외 정보활동만을 담당하는 해외정보처를 신설하겠습니다. 셋째, `대통령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위한 성실한 의무를 진다'는 헌법상의 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고자 분단된 반쪽인 서국과의 통일을 위한 5개년 계획을 제시하고 이를 강력히 추진하겠습니다. 그 첫걸음으로 다음달 15일 정상회담을 개최하기로 서국 총리와 합의했음을 알려드리며.

 , 믿을 수 없는 일이다. 대통령은 온화한 얼굴로 도인처럼 담화를 발표하고 있다. 미련한 돈()통령이 저만 살겠다고 꾀를 낸 것 아니겠는가. 내가 이대로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지. 1백년 징역이라니, 감옥에서 백골이 진토되도록 썩을 수는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