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0호 2014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서울대’ 도움이 안 된다고?

“서울대 나왔다는 게 사회생활엔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아.”
신문사에 들어간 뒤 한 선배로부터 들은 얘기다. 같은 서울대 출신이라고 해서 취재원이 기삿거리를 주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었다. 취재 현장에 나가면서, 특히 법조계를 취재하면서 선배 말이 전혀 거짓은 아님을 알게 됐다. `서울대 졸업' 경력은 취재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지 않았다. 수년 전 모 대학 출신인 한 방송사 선배는 술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석천씨. 내 고향이 호남이잖아. 6공(盧泰愚정부) 때 검찰에 갔는데 TK 출신 부장검사가 따로 부르더라고. 자기도 같은 대학 나왔다고 반가워하면서 말을 놓더군. 바로 형 동생이 됐지. 수사 내용도 알려주고….”
그는 모교에 대한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순간 내 머리 속엔 깍듯하게 경어를 붙이며 심리적 거리를 정확하게 지키던 서울대 출신 법조인들의 얼굴이 스쳤다. 도드라진 인상은 따뜻함 대신 깔끔함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생각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우선 서울대를 나왔다는 것이 기자 일에 보이지 않는 버팀목 역할을 해왔음을 깨닫게 됐다. 능력과 열정이 있는데도 세속적인 대학 순위로 평가받는 동료·선후배들을 보면서 `나는 학력고사 성적 잘 받았다는 것 하나로 결코 무시하지 못할 +α 를 받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α '가 크지 않다지만 전부가 될 때도 있지 않은가. 나아가 서울대 동문이란 이유만으로 뭉친다면 그것이 과연 한국 사회 전체를 위해 옳은 일일까 하는 의문 앞에 서게 됐다.
이를테면 `한국은 情은 넘치는데 善意는 없는 사회'라는 말이 있다. 정이 혈연이나 학연, 지연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면, 선의는 인연이 없는 상대들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정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정에 선의가 가려진 사회가 과연 바람직할까. 친밀한 사람에게만 친절한 세상은 힘없고 소외된 이들에겐 지옥일 뿐이다.
나는 나를 포함한 서울대인들이 선의를 확산시키는 중심이 되길 바란다. 각자가 놓인 위치와 상황에서 학연과 지연, 그리고 이념의 진영을 넘어 선의(good will)를 퍼뜨린다면 한국 사회도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동안 정말 많은 것들을 이 사회로부터 받아왔다. 적은 등록금으로 학교를 다녔고, 졸업 후에는 나름대로 좋은 직장, 좋은 자리에서 혜택과 존중을 받아왔다. 어떻게 하면 더 많은 걸 누릴지 고민하기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좋은 일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우리가 됐으면 한다. 함께 배운 것을 사회에 나누는 우리가 됐으면 한다. 그럴 때 서울대 출신이란 사실이 진정 자랑스러워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