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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호 2014년 10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중앙대 전통예술학부 韓 承 錫교수



 판소리는 언제나 그 시대에 가장 필요한 가치들을 담아 왔지요. 우리 음악의 중심을 지키면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보편적인 인류애'를 담아낸 음반입니다.”

 중앙대 예술대학 전통예술학부 교수이자 소리꾼인 韓承錫(공법87 - 94)동문이 최근 피아니스트 鄭在日씨와 2년여의 준비 끝에 `바리 어밴던드(Abandoned)' 앨범을 발표했다. 이 음반에서 동문은 고수의 북 장단 대신 피아노 반주에 맞춰 판소리를 불렀다. 퓨전 국악그룹 `푸리'에서 함께 활동했던 鄭在日씨와 환상의 호흡을 통해 유려한 선율과 유장한 우리 소리가 마치 원래 짝이었던 것처럼 조화를 이루며 음악 애호가들의 귀를 사로잡았다. `새로운 전통을 제시했다'는 호평도 줄을 이었다.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난 동문은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메시지를 전하자는 데 뜻을 모으고 판소리와 피아노라는 요소를 결합한 결과가 좋게 나온 것 같다고 설명했다.



 
단순히 현대화·대중화를 목적으로 국악을 변형하거나 재해석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세웠어요. 판소리의 본질은 훼손하지 않으면서, 리듬악기이자 화성악기인 피아노를 통해 새로운 공감과 해석의 여지를 주고자 했죠. 국악에 또다른 품격이 생긴 셈입니다.”

 앨범 제목 `바리 어밴던드'는 우리나라의 `바리공주 설화'에서 따왔다. 자신을 버린 부모의 목숨을 구하려 온갖 고난을 견디는 바리공주에게서 `구원과 용서'의 모티프를 가져왔고, 극작가 배삼식(인류89 - 96)동문에게 가사를 맡겼다. 소외된 현대인부터 외국인 노동자, 아프리카 난민의 삶까지 바리 설화에 절묘하게 녹여 낸 노랫말에 鄭在日연주가가 곡을 붙였다. 동문은 라이브 공연을 하면 대부분 우신다며 청중들의 공감 어린 반응을 전했다.

 동문은 법학도 출신 소리꾼으로도 일찍이 화제가 됐다. 지난 2011년에는 법대 87학번 동기들의 졸업 20주년 기념 홈커밍데이에 참석해 판소리 공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전남 진도에서 태어나 장구를 즐겨 치던 아버지, 소리를 잘해 강강술래 선창을 곧잘 메기던 어머니를 보고 자랐지만 정작 그는 공부밖에 몰랐다. 뒤늦게 국악에 눈뜬 것은 모교 입학 후 우연히 춤패 `한사위'에 들어가면서부터였다. 동아리에 들어간 첫날, 왁자하고 신명 가득한 연습실 분위기가 그를 매료시켰다.

 이후 金德洙·李光壽명인 문하에서 사물놀이 연주자로 활동하던 동문은 소리꾼으로 한 번 더 인생의 방향을 튼다. 방울 명창의 `수궁가' 공연 실황 음반을 듣고 무궁무진한 표현력으로 관객을 들었다 놓는 판소리의 매력에 빠졌다. 막연히 구상해오던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전통'을 만들기에 판소리만 한 것이 없다고 확신했다. 카세트 테이프를 들으며 약 2년간 독학한 끝에 安淑善명창을 스승으로 모시는 행운이 찾아왔다.

 지방 공연 차 쟁쟁하신 국악인 분들과 한 버스에 타고 이동할 때였어요. 소리 공부하는 걸 알고 계시던 李光壽선생님이 `너 숙선 누이 앞에서 노래 한 번 해봐라' 하시는 거예요. 쭈뼛쭈뼛 불렀는데 혼자 배웠으니 오죽했겠어요. 선생님이 들으시고 첫 마디로 `너 어디서 배웠어' 하시고는 `소리는 혼자 하면 못쓴다, 소리 배우고 싶으면 찾아오라'고 말씀하셨죠.”

 29세부터 본격적으로 소리를 배워 다섯 바탕인 적벽가·수궁가·흥보가·춘향가·심청가를 차례로 완창했다. 어릴 적부터 소리만 해온 사람들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새로운 것을 만들기에 앞서 전통을 완벽하게 내 것으로 만들어 둬야 한다'는 강한 목표 의식이 원동력이었다. 어려운 판소리 가사를 밤새워 해석했던 학구열도 한 몫을 했다.



 
동문에게 이번 앨범은 시작에 불과하다. 앞으로 스승 安淑善선생님과 鄭明勳지휘자의 `사랑가' 공연처럼 대규모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으로 무대를 꾸미고, 유엔총회 같은 곳에서 우리 음악으로 세계인에게 화합과 치유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둔 듯 앨범에도 국립번역원을 통해 특별히 번역한 영문 가사가 수록돼 있다.

 소리꾼뿐만 아니라 누구든 노래방에서도 부를 만한 우리 음악을 만들고 싶다동문은 창극 `변강쇠 점 찍고 옹녀' 등의 작품을 통해 작창·작곡가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오는 118일 서울 연건동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바리 어밴던드' 앨범 발매 기념 콘서트를 가진다. 특별한 무대 미술과 생생한 현장감이 더욱 깊은 감동을 선사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