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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8호 2014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6·25 전몰자 기념시설



 19명의 총리를 배출한 영국의 명문사학 이튼칼리지에 가면 누구나 감동하게 되는 공간이 있다. 1·2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뒤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이튼칼리지 동문의 이름 2천여 명이 새겨진 곳이다. 부유층과 귀족의 자제만 다니는 귀족학교라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튼칼리지가 영국인으로부터 인정과 존경을 받는 것은 이들이 보여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 때문일 것이다.

 이튼칼리지만 그런 건 아니다. 유럽 어느 곳에 가든 전쟁에서 숨진 사람들의 전몰 기념비가 있다. 한국여기자협회장 자격으로 지난 4월 런던을 방문했을 때는 버킹엄궁 가까운 곳에 전쟁 중에 숨진 여성들의 전몰 기념비가 있는 것도 눈여겨보게 됐다. 하도 전몰비가 많아 대체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찾아보니 영국 전역에 54천개가 있다고 한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하버드대 메모리얼 교회에는 1·2차 대전, 6·25전쟁, 베트남전에 참전한 동문들의 명단이 새겨져 있다. 프린스턴대 낫소홀도 마찬가지다. 이곳에 새겨진 전사자들 가운데 6·25전쟁에서 사망한 이름을 발견하면 콧날이 시큰해진다. 이 젊은이는 과연 무엇을 위해 머나먼 이국땅에서 산화했을까. 젊은 목숨이 희생된 것도 안타까웠지만 전쟁에서 산화한 동문을 학교가 잊지 않고 자랑스럽고 고귀한 전통으로 간직하는 것도 부러웠다.

 모교에도 많은 추모비가 있다. 대표적인 추모비는 4·19 학생혁명 기념탑이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인적도 드문 공대 뒤편 관악산 기슭에 위치해 오붓한 분위기를 원하는 청춘남녀의 데이트코스로 이용됐다. 朴正熙, 全斗煥정권에서 민주화운동을 하다 희생된 민주열사들의 추모비도 많다. 최루가스가 멈출 날이 없던 80년대에 학교에 다녔던 내가 알던 사람도 있어 살아남은 자의 슬픔이 각별한 장소들이다. 그들에게 미안해서 한때는 학교에 발걸음조차 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도 무언가가 아쉬웠던 건 사실이다. 대한민국은 건국, 산업화, 민주화 세력 등 모두의 노력과 희생 위에 세워졌다. 개개인의 가족사로 소설 한 권 쓰지 못할 국민이 없다. 모교는 항상 그 중심에서 나라를 이끌어 왔다. 그런데 유독 6·25전쟁에 참전해 사망한 재학생을 기리는 기념물이 없었다. 그래서 학창시절 난 모교가 6·25전쟁 이후에 세워진 걸로 알았다. 무지한 학생이었다.

 그러다보니 모교가 애국세력을 홀대한다는 오해도 받는 것 같다. 일부러 그랬다기보다는 민주화라는 시대적 소명에 부응하는 것이 더 급했고 모교가 부산으로 피난하는 과정에서 학적부가 손실돼 기록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으로 추정되지만 아쉬운 건 아쉬운 것이다.

 마침내 모교가 문화관 1층 로비에 걸린 전몰자 기념패널을 대신해 내년에 제대로 된 6·25 전몰자 기념시설을 만들기로 했다고 한다. 늦었지만 반갑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애국세력이다. 세상에, 애국에 진보 보수가 어디 있고 더구나 애국자가 세력이라니? 애국세력, 민주화세력 이런 이분법 따윈 잊어버리자. 단지 모교에 적을 둔 채 대의를 위해 청춘을 바친 이들을 추모하는 것이 후배된 자의 도리임을 기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