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호 2004년 11월] 기고 건강법
자연 벗 삼아 풍욕ㆍ솔밭 산책 즐겨
金 烈 圭(54년 文理大卒)계명대 석좌교수
`쟤가 마흔만 넘겨도!'
필자는 어머님께 이 같은 근심을 끼쳐 드리면서 자랐다. 맞대 놓고는 안 그러셨지만, 집안 어른들께 이처럼 탄식하곤 하셨다는 것이다. 그런 형편없는 약골이 마흔의 곱배기가 아주 멀지는 않을 만큼, 목숨부지 했으니 지극한 모정의 베풂일 것 같다. 필자의 건강법은 무엇보다 어머니의 정에서 비롯하고 있을 것이다. 나머진 그 여파고, 곁다리고 여분이라고 접어 두고 있다.
한데 그 여분 중에서도 환경이 으뜸이다. 바다를 환히 내다보는 얕은 언덕에 자리잡은 둥지가 섭생(攝生)의 제일 원리다.
이른 아침, 물마루에 솟아오르는 찬란한 햇살을 맞바라기 한다. 그러면서 한바다의 숨결을 싣고 온 바람을 삼킨다. 아침의 삽상(颯爽), 그것이 보장할 싱그러운 하루를 내다보면서 다음 단계를 실천한다. 천천히 산에 오른다. 솔밭새의 오솔길에서는 대개 웃통을 벗는다. 새들이 킬킬대지만 그것도 즐거움이다.
필자의 `걷는 그린 샤워'는 으레 `앉은 풍욕(風浴)'을 겸한다. 햇살 담뿍 쏟아지는 비탈의 바위 너설에서 상반신 벗은 채로, 이를테면 `바람 멱'을 감는다. 그러기를 한 십여 분, 조금은 땀이 벤 맨살에다 대고는 이른바, `건포(乾布) 마찰(摩擦)'을 한다. 한겨울 아침나절에도 기껏 추워봐야 영하로 고작 2~3도 정도니, 비오는 날 빼고는 `풍욕'은 그럴 수 없이 쾌적하고 또 상쾌하다. 그때마다 새 목숨 새로이 누리는 기분이 들곤 한다. 참 묘하게도 기온이 내려갈수록 `재생감'은 그 도수가 는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일년 내내 산나물과 야생초를 가려 뽑는다.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 질경이, 냉이, 엉겅퀴(어린 잎) 등등이 많은 몫을 차지하는데, 거기에다 내 손으로 기른 시금치, 아욱, 화살나무 잎 등을 적당량 섞어서는 녹즙(綠汁)을 만들어서 들이킨다. 철 따라서 꽃도 한몫 거든다. 봄엔 인동, 초여름에는 탱자꽃, 늦가을엔 비파꽃 등을 적당량, 녹즙에 첨가하면 그야말로 마시는 걸로는 제호(醍턈)의 맛, 저리 가라다. 과일은 대개 자급자족한다. 감, 밤, 대추, 오디 그리고 양다래 등은 지천이다. 그걸 직접 우리집 과원의 나무에서 따서는 씻지도 닦지도 않은 채, 그 당장 먹는데 길들어 있다. 나무에서 제대로 익은 과일은 과일전에서 억지 익힘을 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야생으로는 으름, 산딸기, 머루며 다래도 흔하디 흔하다. 이들을 바로 나무며 넝쿨 곁에서 들짐승처럼 우직우직 씹어 삼키다니, `서울살이 사십여 년, 공연히 했었나 보다!'고 혼자말을 하곤 한다. 솔밭 산책이 그렇고 풍욕이 그렇듯이 녹즙도 과일도 모두모두 대자연에의 귀의(歸依)다. 옛 시조가 노래했듯이 `山 절로 水 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다. 그 속에서 늘 하던 일, 책 읽고 글쓰는 일도 어느 새엔가 또 다른 `절로', 이를테면 제2의 `절로'가 됐으니 이 또한 요긴한 `건강 지킴이'일 것이다.
필자의 `걷는 그린 샤워'는 으레 `앉은 풍욕(風浴)'을 겸한다. 햇살 담뿍 쏟아지는 비탈의 바위 너설에서 상반신 벗은 채로, 이를테면 `바람 멱'을 감는다. 그러기를 한 십여 분, 조금은 땀이 벤 맨살에다 대고는 이른바, `건포(乾布) 마찰(摩擦)'을 한다. 한겨울 아침나절에도 기껏 추워봐야 영하로 고작 2~3도 정도니, 비오는 날 빼고는 `풍욕'은 그럴 수 없이 쾌적하고 또 상쾌하다. 그때마다 새 목숨 새로이 누리는 기분이 들곤 한다. 참 묘하게도 기온이 내려갈수록 `재생감'은 그 도수가 는다. 산을 내려오는 길에 일년 내내 산나물과 야생초를 가려 뽑는다. 민들레, 씀바귀, 고들빼기, 질경이, 냉이, 엉겅퀴(어린 잎) 등등이 많은 몫을 차지하는데, 거기에다 내 손으로 기른 시금치, 아욱, 화살나무 잎 등을 적당량 섞어서는 녹즙(綠汁)을 만들어서 들이킨다. 철 따라서 꽃도 한몫 거든다. 봄엔 인동, 초여름에는 탱자꽃, 늦가을엔 비파꽃 등을 적당량, 녹즙에 첨가하면 그야말로 마시는 걸로는 제호(醍턈)의 맛, 저리 가라다. 과일은 대개 자급자족한다. 감, 밤, 대추, 오디 그리고 양다래 등은 지천이다. 그걸 직접 우리집 과원의 나무에서 따서는 씻지도 닦지도 않은 채, 그 당장 먹는데 길들어 있다. 나무에서 제대로 익은 과일은 과일전에서 억지 익힘을 한 것과는 사뭇 다르다. 물론 야생으로는 으름, 산딸기, 머루며 다래도 흔하디 흔하다. 이들을 바로 나무며 넝쿨 곁에서 들짐승처럼 우직우직 씹어 삼키다니, `서울살이 사십여 년, 공연히 했었나 보다!'고 혼자말을 하곤 한다. 솔밭 산책이 그렇고 풍욕이 그렇듯이 녹즙도 과일도 모두모두 대자연에의 귀의(歸依)다. 옛 시조가 노래했듯이 `山 절로 水 절로, 山水間에 나도 절로'다. 그 속에서 늘 하던 일, 책 읽고 글쓰는 일도 어느 새엔가 또 다른 `절로', 이를테면 제2의 `절로'가 됐으니 이 또한 요긴한 `건강 지킴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