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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7호 2014년 8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대한민국헌정회 睦 堯 相회장







 
- 대한민국헌정회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헌정회는 `대한민국헌정회 육성법'에 근거해 조직된 단체로 전직 의원은 자동으로 회원이 되고, 현역 의원은 특별회원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헌정회의 회원 중에는 대통령, 국무총리와 장관을 지내신 분들, 국회의장과 부의장을 역임하신 분들, 여야 각 당 대표와 원내 대표를 지내신 분들을 비롯해 다선 의원들과 초·재선 의원들이 고루 포진돼 있습니다. 헌정회는 우리나라 민주헌정을 유지 발전시키기 위한 대의제도 연구와 정책개발 및 사회복지향상에 공헌함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현재 회원은 197명입니다. 제가 회장으로 취임할 당시만 해도 12백여 명 정도 됐는데, 다들 연세가 많다 보니 몇 년 사이 많이 줄어들었지요.”

 - 지난 2012년 회장 취임 시 회원들의 어려움을 해결하는 일에 가장 중점을 두겠다고 했는데, 주로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원로 회원 중에는 과거 선거 때 재산을 많이 쏟아 붓고 가난해진 데다 현재 나이가 들어 건강도 좋지 않은데 소득도 없다 보니 어려움을 겪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런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자체적으로 복지기금을 마련해 지원하고 있습니다만 足脫不及입니다. 또 하나 작고하신 회원들을 위해 국립묘지와 같은 규모와 체제를 갖출 수는 없어도 돌아가실 때 편안하게 모실 수 있는 묘지 조성을 계획하고 있는데 아직은 장소 마련 등 여러 어려운 문제로 여의치 않습니다.”

 -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는 회원의 비율은 어느 정도인지.

 대외적으로 본인들의 자존심 때문에 모두 밝힐 수는 없지만, 자체 조사 결과 집이 없어 자는 곳이 변변치 않거나 몸이 불편해도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는 등 어려움을 겪는 회원분이 2백여 명 정도 됩니다.”

 - 정치쇄신 논의 때마다 논란되는 것이 `헌정회 연로회원 지원금'입니다. 이에 대한 의견은.

 우선 지원금의 성격부터 규정하고 넘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받는 것은 연금이 아니라 과거 이 나라의 민주화, 산업화 발전에 나름대로 역할을 한 정치원로들에 대한 보훈적 차원의 품위유지비입니다. 기존에는 8백여 명이 받았는데 지금은 여러 가지 규제로 반으로 줄었습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퇴직 의원들이 많은데, 그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를 다시 정상화시키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 올해 초 `통일문제연구특별위원회'를 구성했지요? 현재 진행 상황은.

 朴槿惠대통령이 연초 기자회견에서 `통일은 대박'이란 말씀을 하신 뒤 국민들과 사회 각계에서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아짐에 따라 우리도 정부와 발맞춰 즉각 특별위원회를 구성, 세미나를 개최하고 통일과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모으고 있습니다. 또 정부에서 발족한 통일준비위원회의 자문위원에 헌정회 단체이름으로 참여하게 됐습니다. 헌정회 회원들의 지식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갈 통일방안이나 정책방향에 대해 적극 의견을 제시할 계획입니다.”

 - 원로로서 현 정권 및 여야를 평가해 주신다면.

 朴槿惠정권이 인사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잘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만 세월호 참사를 통해 기강이 완전히 무너져 내린 것이 아닌가하는 안타까움이 큽니다. 기강확립을 위한 획기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또한 여야가 너무 당리당략에만 매달려 서로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밀어붙이는 모습이 있는데, 그런 공격일변도의 국회운영은 빨리 지양해야 합니다. 여야가 대화와 타협을 통해 국가와 민족을 위한 올바른 결론을 도출할 수 있도록 서로 간의 노력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판사, 4선 국회의원, 원내총무, 정책위 의장,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 등 경력이 화려하신데요. 좀 더 기억에 남고 보람 있었던 일이 있다면.

 제가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두 번이나 역임했습니다. 그 당시 정치개혁을 위한 국회의원 선거법이라든지, 많은 정치개혁을 바로잡기 위해 나름대로 역할을 해봤으나 여야 간의 이해가 상충돼서 제대로 문제가 풀리지 않는 바람에 올바른 결론을 내놓지 못했죠. 위원장을 두 번이나 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과실을 만들어내지 못한 아쉬움이 아직도 큽니다.”

 - 판사 시절 `오적시와 다리지 사건' 등 공안사건에 대해 소신 판결을 내린 것으로 유명하시죠.

 두 사건 모두 `독재 체재 타도, 부정부패 척결' 등 당시 정부를 공격하고 비판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표현이 과격하다 보니 金日成과 북한정권을 옹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해서 반공법으로 기소됐던 사건입니다. 여러 번에 걸쳐 읽어보고 또 따져봐도 북한 金日成을 위해 그러한 내용을 표현한 것은 `절대 아니다'라는 판단이 서서 `오적시 사건'의 피고인은 전부 보석으로 석방하고, `다리지 사건'에 대해서는 무죄판결을 내렸죠. 저 자신도 어느 정도 더는 판사를 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는데, 판결 뒤 유신헌법이 공표되자마자 사표 압력이 내려와 법복을 벗고 서울에서는 못하게 규제하는 바람에 초임지이고 처가 고향인 대구에 내려가서 변호사를 개업하게 됐지요.”

 - 법학과에 입학한 특별한 동기가 있는지.

 저는 동두천 읍에서도 한참 떨어진 산골짜기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그 당시 마을 사람들이 순경이나 면서기 등의 관리들이 오면 굉장히 무서워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그 모습을 보면서 나중에 정치가가 돼서 잘못된 점을 바로잡는 데 이바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처음에는 정치학과를 지망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고등학교 3학년 담임선생님이 면담과정에서 법대를 추천하는 바람에 진로가 바뀌었는데 그게 결과적으로는 더 잘됐다는 생각이 듭니다.”

 - 동문 및 학교 관계자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국내에서 모교가 가장 으뜸가는 대학이라고 자부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평가했을 때 아직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이 멀다고 봅니다. 우수한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만 할 수 있는 면학 분위기를 조성하고, 교수들은 많은 연구활동으로 실적을 쌓아 우수한 학생들을 양성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가까운 미래에 모교에서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길 바랍니다. 盧武鉉정권 당시 `서울대 폐지론'이 있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 봅니다. 오히려 세계적인 우수 대학으로 발전시켜 나가야지요. 이에 대해 재학생뿐만 아니라 동문들도 더 많은 관심을 두고 모교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진 = 金南柱기자·정리 = 林香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