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320호 2004년 1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삼양그룹 金相廈회장

「투명경정 노사화합 고객신뢰가 기업의 장수비결」

대답:본보 南仲九논설위원(동아일보 평화연구소장)

1924년 10월 국내 최초의 근대적인 기업형 농장으로 출발해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이한 삼양그룹이 지난 10월 2일 서울 코엑스 대서양관에서 기념행사를 개최, 새로운 기업 통합이미지(CI)를 발표하고 중장기 비전을 내놓았다.
본회 고문인 삼양그룹 金相廈회장은 1949년 모교 문리과대학 정치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 반세기동안 삼양사에 몸담아왔다. 삼양사 경영인으로 출발해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유수의 경제단체 및 기관의 대표를 거쳤으며, 대한농구협회장,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 이사장 등 사회 전 분야에 걸쳐 그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드물다.
우리 사회, 이 시대의 명실상부한 리더 중 한 분인 金회장을 만나 근황과 삼양사의 장수비결 향후 계획, 동문과 후배들에게 전하는 이야기 등을 들어보았다.



"養英·秀堂財團 통한 인재양성이 큰 보람"
三養訓·中庸의 자세.성실.인내 몸소 실천

-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에서 물러나신 후 요즘 어떻게 지내시는지요.

 대한상공회의소에서 12년 동안 봉사한 후 삼양사에 돌아온 지가 벌써 4년 반이 넘었군요.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외부 활동을 많이 줄였습니다만, 요즘도 한국장묘문
 화개혁범국민협의회 이사장, 한일경제협회장, 한일산업기술협력재단 이사장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삼양사의 실질적인 의사결정은 金 鈗회장에게 거의 다 일임했어요. 저는 주로 신규사업의
 계획수립이나 삼남석유화학, 삼양화성 등 계열사 중에서도 규모나 중요도면에서 큰 성장을
 보이고 있는 일본 미쯔비시와의 합작회사 업무 등에 관심을 두고 있지요.

- 대한상의 역대 회장 가운데 반수가 서울대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네, 그렇습니다. 초대부터 현 18대까지 총 12명의 회장 가운데 朴斗秉(32년 京城高商卒·6~
 8대)동문, 太完善(36년 京城法專卒·9대)동문, 金永善(42년 京城帝大 法文學部卒·10대 초
 반)동문, 鄭壽昌(41년 京城高商卒·10대 후반~12대)동문이 회장을 역임하셨고, 13대부터
 16대까지 제가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17~18대 회장으로 朴容晟(65년 商大卒)동문이 봉직
 하고 있습니다.

- 회장님은 우리 나라에서 존경받는 재계 원로로 손꼽히시는 분이면서 대외활동도
 아주 활발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로 어떤 분야에서 활동하셨는지요.

 기업경영에만 전념하던 제가 본격적인 대외활동을 펼치게 된 것은 1988년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에 취임하면서부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우리 나라 경제계를 대표하는
 商議회장에 추대된 이후 3년 임기를 네 번 연임하면서 원만하게 이끌어가려고 노력했지요.
 또한 사무국의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취임 이후 소수정예화를 꾸준히 추진한 결과, 1998년
 IMF사태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의 압력에도 무난히 대처할 수 있었지요.
 1991년에는 유통정보센터를 설립해 국내 유통산업의 선진화를 위해 노력했고, 1994년에는
 노동부로부터 직업훈련원을 인수해 매년 수백명의 전문인력을 산업계에 배출해왔습니다.
 그리고 IMF 외환위기로 기업구조조정과 외자유치가 최대 현안으로 부상함에 따라 1998년
 기업구조조정센터를 설치해 회원서비스를 강화함은 물론, 엔젤클럽을 결성해 벤처기업 육
 성에도 일조를 했습니다.

- 한중민간경제협의회 초대 회장과 환경보전협회장을 지내셨는데.

 1992년 한중민간경제협의회 초대 회장에 취임한 이래 국교 수립 이후 급격히 증가하고 있
 는 대중 교역과 투자진출을 효율적으로 지원하려고 노력했지요. 특히 1993년에는 북경에
 사무소를 개설해 현지 진출업체들의 중국시장 개척의 교두보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1994년부터 2003년까지는 환경보전협회 회장을 맡아 기업의 환경친화적 경영을 위
 한 대회원 사업을 강화했어요. 또 산업기술정보원, 산업연구원,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등 정
 부 산하기관의 이사장직을 맡아 민관의 가교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1998년 한일경제협회장 취임 이후 현재까지 한일경제인회의 개최, 수출촉진단 파견, 투자
 조사단 유치사업 등 양국의 우호증진과 경제협력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 재계의 활동뿐만 아니라 대한농구협회장,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추진협의회 이사
 장 등 체육계, 문화계에서의 활동도 두드러진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985년부터 1997년까지 12년에 걸쳐 대한농구협회장을 역임했어요. 취임 당시에 농구계는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으나 인화를 바탕으로 중지를 모아 농구대잔치를 성공리에 개최
 함으로써 농구붐을 조성한 점이 기억에 남습니다. 또 국제화, 저변확대에도 힘을 기울여
 한국 농구 미래의 발판을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이러한 결실로 지금의 프로농구가 다른
 종목과 달리 조기에 정착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1998년부터는 새로 출범한 한국장묘문화개혁범국민추진협의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데 사회
 적으로 매장문화에 비해 화장(火葬)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만큼 무엇보다 우리의 장묘
 문화 개선에 정성을 기울일 생각입니다. 저도 사후에 화장을 할 예정입니다만, 요즘은 납
 골(納骨)뿐만 아니라 산골(散骨)도 많이 하는 편입니다. 화장 유골을 뿌리고 그곳에 나무
 를 심어 `추모의 숲'을 꾸미는 거죠.

- 그동안 삼양은 국가 경제의 견인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해 왔다고 봅니다. 창립
 80주년을 맞이한 감회가 어떠신지요?

 제가 삼양에 몸담은 지도 벌써 만 55년이 지났습니다. 지난 반세기를 삼양과 함께 해온 삼
 양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회가 새롭습니다.
 삼양은 국내 최초로 근대적인 농장경영을 시작했고, 간척사업과 개간사업 등을 통해 비좁
 은 국토를 넓히는데 앞장섰으며, 국내 기업 최초로 해외(舊만주)로 진출하기도 했습니다.
 또 제당과 폴리에스테르 화학섬유를 중심으로 국민의 의식주 해결에 선도적인 노력을 기울
 여왔습니다.
 현재 삼양은 화학, 식품, 의약 등 사업영역을 확대해나가 국가 경제발전에 나름대로 기여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양영재단(養英財團), 수당재단(秀堂財團) 등을 통해 많은
 인재를 양성하는 등 사회발전에도 기여를 한 것 같아 뿌듯한 자긍심과 보람을 느끼고 있습
 니다.

- 삼양사에 대해서 좀더 소개해 주신다면.

 삼양사는 1924년 순수 민간자본을 바탕으로 설립된 민족기업입니다. 제조업 중심의 건실한
 안정성장을 중시하는 가운데 제당사업을 비롯한 식품산업을 시발로 70년대에는 화학섬유사
 업에 진출했고, 80년대에는 화학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으며, 90년대에는 의약사업 분야로
 영역을 확대해오고 있습니다.
 60년대말 화학섬유산업에 진출키로 하고 입지선정에 어려움을 겪을 때 주위의 예상과 달리
 여러 가지로 불리한 조건의 전주를 택한 바 있습니다. 이미 울산에 공장용지를 확보하고
 있었으나 호남지역에 대단위 공장을 세움으로써 지역의 균형발전을 도모하자는 뜻이었지요.

- 노사화합의 전통도 삼양의 자랑거리라고 보는데요.

 맞습니다. 1966년 노조가 설립된 삼양은 80년대말 극심한 노사분규로 온 나라가 흔들거릴
 때도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후에 수습하기보다는 평소에 노사관계를 돈독히 유
 지해온 결과라고 봅니다. 1976년 이후 전 사원제 도입, 직급간 임금격차의 점진적 축소,
 성과평가제도 도입 등을 타기업 보다 조금 앞서 실시한 것은 언뜻 작은 제도변화에 불과한
 듯하지만 노사의 신뢰를 높이는 촉진제가 됐습니다.
 또 기업이윤의 사회환원도 삼양사의 오래된 전통이라 할 수 있어요. 창업자이신 선친(秀堂
 金秊洙)이 1939년 나라를 구할 인재육성을 위해 사재를 털어 장학재단인 양영재단을 설립
 했고 1968년에는 수당재단을 설립해 육영사업을 확대한 바 있습니다. 이 두 재단은 현재까
 지 이어져 많은 인재들을 양성해 국가의 동량들을 배출하고 있습니다.


"고객 인재 성과 중시하는 기업문화 육성"
火葬 散骨 등 장묘문화 개선에 정성 기울여

- 삼양의 장수비결은 무엇입니까.

 삼양이 80년 동안 꾸준하게 성장해 온 것은 내실경영, 투명경영을 통한 노사화합, 고객과
 의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한 정도경영이 큰 힘을 발휘했다고 봅니다.
 이러한 정도경영은 창업자의 가르침인 `양복(養福), 양기(養氣), 양재(養財)'의 삼양훈(三
 養訓)과 `중용(中庸)'의 정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항상 분수를 지켜 복을
 기르고(養福), 마음을 너그럽게 하고 욕망을 절제해 기를 기르고(養氣), 비용을 절약하고
 낭비를 삼가해 재를 기르라(養財)는 삼양훈과 분수를 넘는 사업확장을 자제하면서 정도를
 지키는 중용의 자세는 오랜 세월 삼양을 지탱해준 뿌리입니다.
 삼양훈과 중용의 정신으로 80년 동안 주변여건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자만하거나 주저앉
 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온 성실과 인내가 오늘의 삼양을 있게 한 것이지요.
 다소 보수적이라는 세간의 평가도 있긴 하지만 우리 나름대로는 시대에 맞게 우리의 기업
 문화를 토대로 지속적인 혁신을 추구해 온 것도 하나의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 최근 삼양은 金  회장 중심으로 여러 가지 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어떻게 평가하고 계시는지요.

 지난 IMF의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대처하고, 지속적이면서 꾸준한 사업구조조정을 통해 金
 鈗회장은 그동안 탁월한 지도력을 발휘해 왔습니다. 그리고 삼양사의 朴鍾憲사장, 金 沅사
 장을 비롯해 여러 계열사 사장들의 충실한 보필 또한 큰 힘이 되었다고 봅니다.
 창립 80주년을 기점으로 새로운 시대에 맞게 삼양의 문화를 계승하면서 새로운 CI 제정,
 비전 선포 등을 통해 적극적인 자세로 혁신활동을 주도해 나가고 있습니다. 아주 잘 해나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 삼양이 최근 새로운 미래상을 구현하기 위해 중장기 비전을 마련한 것으로 알고 있
 습니다.

 삼양은 앞으로 `생활을 풍요롭고 편리하게 하는 기업'으로 비전을 설정하고, 이와 관련해
 서 새로운 경영전략을 진행해 나가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사업방향은 화학, 식품, 의약,
 신사업부문을 핵심 성장 사업군으로 정했습니다.
 이러한 핵심 성장 사업군에 우리의 핵심역량인 연구개발력, 기술력을 바탕으로 기존사업의
 다각화, 사업구조의 고도화, 해외진출을 통한 Globalization을 추구해 나갈 것입니다. 더
 불어 고객에게 신뢰를 주는 고객 중시, 인재를 발굴·육성하는 인재 중시, 공정한 평가와
 보상을 기본으로 하는 성과 중시의 기업문화를 육성, 발전시켜 나갈 것입니다.

- 가족 이야기 좀 해주시지요. 부인이신 朴商禮여사와는 어떻게 만나셨는지요.

 제 가족을 소개하자면, 집사람과 沅, 楨, 令暖 이렇게 2남1녀를 두었습니다. 집사람과의
 결혼이야기를 물으셨는데, 벌써 50년이 다 돼갑니다만 저는 당시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
 듯이 중매결혼을 했기 때문에 별다른 이야깃거리는 없습니다.

- 자녀들은 어떤 일을 하는지요.

 큰 아들 沅이는 연세대 화학과를 나온 뒤 미국 유타대에서 재료공학과 산업공학을 전공하
 고 지금은 삼양사 사장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둘째인 楨이는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하
 고, 미국 코넬대에서 MBA를 마친 후 외국계 은행인 뱅커스트러스트에서 10여 년간 근무하
 다가 지금은 삼양사의 계열사인 미쯔비시와의 합작회사 삼남석유화학에서 상무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막내딸인 令暖이는 결혼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리고 있는데, 사위는 연세대 전기
 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워싱턴대에서 컴퓨터공학 박사학위를 받은 후 현재는 모나미 자회
 사인 (주)항소를 경영하고 있는 宋河鐵사장입니다.

- 자녀들에게 강조하시는 인생철학이 있다면.

 인생철학이라고 할 것까지는 없지만, 저는 자식들에게 성실, 인내의 마음가짐과 사회 공헌
 을 항상 강조하고 있습니다.
 성실은 우리 인간의 덕목 가운데 기본이 되는 것이고, 인내라는 것에는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늘 순탄한 일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상대방의 입장에 서보자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또 우리가 이렇게 행복하게 사는 것도 사회로부터 여러 가지 도움을 받았기 때
 문이라고 생각하고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사회에 응분의 공헌을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 요즘도 다양한 직책을 맡아 활동하고 계시는데, 특별한 건강비결이 있다면 동문들
 에게 소개해 주십시오.

 예전에 비하면 활동이 그리 많은 편이 아닙니다. 특별한 건강비결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
 니다만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 가장 큰 비결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밖에 일주일에 서너번 아침산책과 한달에 2, 3회 치는 골프가 전부입니다. 지금까지는
 건강에 큰 문제가 없었습니다만 앞으로를 생각해서라도 조금 더 규칙적인 운동 등의 노력
 을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 남고라는 호의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시경(詩經)을 보면 학명우구고라는 구절이
 나오는데, 고상한 학이 가장 높은 언덕에서 운다는 뜻으로 아주 상서로운 길조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좋은 뜻이 담겨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요. 제가 40세쯤에 로터리클럽 회
 원가입을 하려는데 호가 필요하다고 해서, 형님들에게 여쭤보았더니 이미 4~5세 어린 시
 절에 부모님께서 형제들에게 南자 돌림으로 지어주셨다고 합니다.

- 정치학과 총동창회장(89년~91년)을 역임하셨고, 1980년 3월부터 2000년 3월까지
 총동창회 부회장을 지내시고 현재 고문으로 계시는데, 동창회 발전방향에 대한 조
 언을 해주신다면.

 서울대 출신의 동문들이 현재 각계각층에서 많은 활약을 하고 있습니다. 그 어느 학교보다
 많은 인재들이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총동창회에서 모든 동창들을 아우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보다 작은 규모의 단과대학의 동창회를 활성화시
 키고 총동창회에서는 이들 단과대학 동창회를 중심으로 이끌어가는 현재의 시스템이 가장
 적당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 동창회관 `장학빌딩' 건립을 추진하고 있는데, 좋은 의견이 있으시면 말씀해 주시
 지요.

 초기의 계획은 서울대 교내에 건물을 건립해 이사가는 방안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지금은 건물을 새로 짓는 방향으로 조정이 된 것으로 들었습니다. 이왕에 지으려면 서울대
 동창회관에 걸맞게 아주 훌륭한 건물이 되었으면 합니다.

- 서울대 동문으로 살아오시면서 좋았던 점 혹은 불편하셨던 점은.

 조금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우리 서울대 동문들은 사회 각계각층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 선·후배님들께서 우리 서울대의 위상을 많이 높여주신 덕분에 저도
 더불어 인정받고 사는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서울대 출신으로서 좋았으면 좋았지 불편했
 던 적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말이 가끔 나오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대 동문, 특히
 후배들에게 한 말씀해 주시지요.

 글쎄요, 서울대를 없애자는 말이 왜 나왔는지 오히려 저는 그게 더 궁금합니다. 또 한편으
 로는 서울대인의 한사람으로서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온 원인에는 우리 자신들에게도
 문제가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잘못됐으니 고치자라는 말씀은 못 드
 립니다만 이 기회에 우리가 잘못한 점이 있다면 반성하고, 발전시킬 것은 더욱 계승 발전
 시켜서 사회에 더욱 기여하고 인정받는 서울대 동문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마지막으로 동창회보를 통해 모교와 동창회 발전을 위해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
 면...

 저는 항상 서울대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것은 선·후배님들
 의 피땀어린 노력으로 우리 서울대의 위상을 그만큼 높이 올려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
 다. 이 자리를 빌려 그간의 성과와 노고에 경의를 표하는 바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가 해야할 일은 많이 남아 있습니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세계 최고
 의 명문대학이 되도록 우리 총동창회를 중심으로 끊임없는 노력을 기울여 주시기 바랍니다.

-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리=安興燮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