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호 2004년 11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미국대학은 진학하기 쉽다?
워싱턴특파원 근무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온 뒤에 미국의 교육 실정을 묻는 질문을 많이 받게 된다. 질문들을 듣다 보면 미국에서는 놀면서도 대학에 쉽게 진학할 수 있다는 전제를 갖는 경향이 있다. 아이 둘을 학생으로 두었던 필자의 경험으로 보면 미국은 그런 곳이 아니다.
우선 학교 수업이 만만치 않다. 과목마다 우열반이 있고 각 과목의 우열반인 AP나 HONOR 반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야 명문 대학에 다닐 수 있기 때문에 기를 쓰고 공부를 해야 살아 남는다.
우리 아이들의 경우 영어가 모자란 탓도 있지만 시도 때도 없는 시험과 퀴즈, 상당히 철학적인 숙제와 구두 발표, 그리고 수업 참여의 압박으로 밤을 새우고도 모자라 주말까지 반납해야 했다. 거기에다가 성적의 상승세를 유지해야 좋은 평가를 받기 때문에 원서를 내는 12학년 1학기까지 여유를 잡기 어렵다.
학력고사에 해당하는 SAT에서 수학은 그래도 해볼 만 하지만 영어에서는 처음 보는 단어들을 끝없이 외워도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는다. 좋은 대학에서는 선택 과목의 SAT2 성적을 요구한다. SAT를 여러 번 칠 수 있어 위안이 되긴 하지만 이 시험을 주관하는 민간 회사가 난이도 관리를 철저히 하는 덕에 엄청난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부는 그래도 어떻게 해 본다고 하겠지만 학내외 활동과 사회 봉사, 인턴과 수상에서 골병이 든다. 대학에서 높게 인정해주는 미식 축구나 농구 선수 또는 신문 편집장 같은 경력을 쌓는 일은 꿈꾸기도 쉽지 않아 몸으로 때우는 밴드부에서 품을 파는 편이 낫다. 원서를 쓰는 일도 몇 십 분에 끝나지 않는다. 직접 써야 하는 수많은 작문, 교사들의 추천서, 요구하는 증빙 자료가 많아 점검표를 만들어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10개 정도 원서를 내다보면 우송료와 전형료도 꽤 들어간다. 이런 관문을 지나 기다리고 있으면 대학에서 당락을 알려주는 간단한 편지가 온다. 그런데 당락의 기준을 알 수 없고 물을 수도 없다. 교육 관계자들도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니 왜 내 아이는 떨어지고 성적이 모자란 다른 아이는 합격했는지를 묻는 항의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과정에서 내신등급을 올려주는 일, 고교등급을 둘러싼 논란, 학력고사를 둘러싼 논쟁도 없다. 대학의 기준을 공개하라는 항의도 없다. 여기를 관통하는 것은 합리성이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그 바탕에는 좋은 인재를 뽑아 훈련을 시켜야만 대학도 사회도 살아 남는다는 경쟁이 깔려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정도에 이르게 위해서는 얼마나 수많은 논란과 아픔을 겪어야할까. 그리고 그것은 언제쯤일까.
학력고사에 해당하는 SAT에서 수학은 그래도 해볼 만 하지만 영어에서는 처음 보는 단어들을 끝없이 외워도 좋은 점수가 나오지 않아 애를 먹는다. 좋은 대학에서는 선택 과목의 SAT2 성적을 요구한다. SAT를 여러 번 칠 수 있어 위안이 되긴 하지만 이 시험을 주관하는 민간 회사가 난이도 관리를 철저히 하는 덕에 엄청난 상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공부는 그래도 어떻게 해 본다고 하겠지만 학내외 활동과 사회 봉사, 인턴과 수상에서 골병이 든다. 대학에서 높게 인정해주는 미식 축구나 농구 선수 또는 신문 편집장 같은 경력을 쌓는 일은 꿈꾸기도 쉽지 않아 몸으로 때우는 밴드부에서 품을 파는 편이 낫다. 원서를 쓰는 일도 몇 십 분에 끝나지 않는다. 직접 써야 하는 수많은 작문, 교사들의 추천서, 요구하는 증빙 자료가 많아 점검표를 만들어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해야 한다. 10개 정도 원서를 내다보면 우송료와 전형료도 꽤 들어간다. 이런 관문을 지나 기다리고 있으면 대학에서 당락을 알려주는 간단한 편지가 온다. 그런데 당락의 기준을 알 수 없고 물을 수도 없다. 교육 관계자들도 모르겠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니 왜 내 아이는 떨어지고 성적이 모자란 다른 아이는 합격했는지를 묻는 항의는 찾아볼 수 없다. 이런 과정에서 내신등급을 올려주는 일, 고교등급을 둘러싼 논란, 학력고사를 둘러싼 논쟁도 없다. 대학의 기준을 공개하라는 항의도 없다. 여기를 관통하는 것은 합리성이고 서로에 대한 믿음이다. 그 바탕에는 좋은 인재를 뽑아 훈련을 시켜야만 대학도 사회도 살아 남는다는 경쟁이 깔려있다. 우리 사회가 이런 정도에 이르게 위해서는 얼마나 수많은 논란과 아픔을 겪어야할까. 그리고 그것은 언제쯤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