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0호 2004년 11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평등보다 경쟁이다
국회의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鄭雲燦총장은 ꡒ교육부의 3不(고교등급제, 본고사, 기여입학제 불가)원칙을 서울대는 지키지만, 의원들이 이를 재고해달라ꡓ고 요청했다. 鄭총장의 `소신' 발언은 우리 대학교육이 더 이상 평등주의에 매몰되어서는 안 되며, 경쟁 논리로 나아가야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에둘러 강조한 것이다. 얼마전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1백4개국 국가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은 작년보다 무려 11단계나 추락해 29위를 나타냈다. 국가경쟁력은 정치․경제․사회발전과 관련된 수많은 지표의 종합적인 평가에서 나오지만, 그 토대의 하나는 반드시 국민 교육수준이 떠받치고 있다. 1960~70년대에 착근한 국가발전 동력은 당시 학부모들의 교육열이었고, 자녀들의 교육기회 확대였다. 그리고 그 바탕엔 경쟁의 원리가 깔려 있었다. 대학은 물론 중․고교까지 시험을 치러야 진학할 수 있었다. 고속 성장을 가져다 준 산업화 시대는 그 역작용으로 개발 독재, 입시 지옥, 빈부 격차 등 그늘도 그만큼 컸던 것은 사실이다. 1980년대 후반부터 정치적 민주화가 진전됨에 따라 한국 사회에서 인권, 분배, 평등주의가 강조된 것은 어쩌면 역사 발전의 순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소득이 1만달러의 늪을 10년째 헤어나지 못하고, 형평성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2세 교육의 하향 평준화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제 우리 사회의 발전 철학을 재검토할 때가 됐다. 물론 시민사회의 영역이 확대되고, 의사소통이 과거처럼 수직적 방식이 아니라 수평적 네트워크로 이뤄진다 해도 평등주의가 결코 국가발전의 철학이 될 수는 없다. 21세기 지식기반 사회를 발전시켜나갈 나라의 경쟁력은 젊은 인재의 배출에 있고, 그 인재의 산실은 바로 대학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지식 시대의 국가발전 동력은 경쟁의 원리 아래, 각 대학이 어떻게 하면 새로운 지식과 기술, 자질과 품성을 갖춘 인재를 잘 길러내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의 특성에 따라 다양한 기법으로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자율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한때 `서울대 폐교'라는 해괴한 주장이 나돌기도 했다. 이 같은 하향평준화의 극단주의나 절대 평등주의의 포퓰리즘은 사회발전의 걸림돌만 될 뿐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난 10월 17일 모교 관악캠퍼스에서 있은 제26회 홈커밍데이 겸 서울대 가족 친목 등산대회는 서울대가 한국의 국가경쟁력 향상에 첨병 역할을 해야 한다는 각오를 새로이 다진 소중한 시간이었다.〈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