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4호 2014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돈 받고 욕하기

필자는 얼마 전까지 동아일보 기자였다. 신문사 편집국의 특징 중 하나는 서울대 동문들이 많다는 거다. 많아도 너무 많다. 필자의 입사 동기 중 절반 이상이 서울대 출신이다. 이렇다 보니 서울대 출신 기자들은 타대학 출신들과는 달리 대학 동문 모임을 잘 안 한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편집국에서 서울대 동창모임 열심히 하면 타대학 출신들은 생존공간이 없어진다. 공정경쟁이 안 되는 것이다. 그동안 대학 동창회 안에서 필자의 역할이 영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만 27년 신문기자 하면서 적어도 동아일보 내에서는, 동아일보 기자들끼리는 서울대 모임을 거의 안 했다. 동창회 입장에서는 섭섭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필자는 이것을 `참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기자생활을 접는 마당에 `기자 시절 필자가 잘한 일' 하나만 더 얘기하고 싶다. 기자들도 일과를 마친 후 이런저런 이유를 핑계 삼아 동료들과 한 잔 걸치곤 한다. 이때 주로 상사 또는 선배들이 안줏거리로 오른다. 후배들과 술자리를 할 경우, 그리고 상사를 안주로 씹는 후배가 있을 경우, 필자는 말한다. “웬만하면 딴 사람 욕은 하지 마라.” “무슨 소리냐”는 반응에 이렇게 답한다. “기자는 돈 받고 욕하는 사람이다. 비판하고, 불평하고, 지적하고…. 결론적으로 듣기 싫은 소리 하는 대가로 밥벌이하는 사람이다. 더러운 직업이다. 이왕 그렇다면 욕은 전문적으로, 직업적으로, 프로답게 해야 한다. 논거를 갖춰서, 체계적으로, 심도 있게 해야 한다. 대안까지 제시하며 한다면 더 좋겠지. 인간 세상 어차피 욕 나오게 돼 있다. 욕이 넘쳐나는 거다. 그냥 터져 나오는 욕은 아마추어들에게 맡기자. 우리는 한 번을 해도 돈을 받고, 제대로 욕을 하자. 그래서 하는 말이다. 돈 안 주면 욕하지 마라. 그래야 프로다.” 대개의 경우엔 이 국면에서 “아, 그렇군요” 소리가 나온다. “한마디를 해도 충분히 검토된 상태에서 문제 제기하라는 것이군요.” “비판을 통한 비전 제시라는 기자직의 존재론적 소명을 다시금 되뇌게 하는 말씀입니다.” 나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스윽 폼을 잡는다. 하지만 가끔 고개를 외로 꼬는 까칠한 후배를 만나기도 한다. “아니 선배, 그렇다면 공론의 장,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만 욕을 하게 되잖아요. 신문사 오너나 국장, 부장에게는 불평하지 말라는 거잖아요. 선배가 그렇게 조직 친화적 존재였어요?” 더 난감한 반응도 있다. “그리 말씀하시니 선배가 그동안 쓴 기사나 칼럼이 얼마나 `프로다운 욕하기'였는지 한번 찬찬히 살펴봐야겠어요.” 대화가 이 지경에 이르면 막걸리의 힘을 빌려 호기 있게 쏟아낸 말들을 황급히 주워담고 싶어진다. 내가 27년간 어떤 기사들을 썼는지도 두렵다. 불현듯 이것들을 잠시 감춰두고 싶다. 아아, 감당 못할 기록의 무서움이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