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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3호 2014년 4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모교 120년사 편찬위 李 泰 鎭위원장






 - 일복을 타고나신 것 같아요. 국사편찬위원장 임기가 끝나자마자 모교 120년사 편찬위원장을 맡게 되셨는데.

 사실은 국사편찬위원장을 끝내고 좀 쉬고 싶었는데, 지난 연말 총동창회 林光洙회장(당시)께서 기다렸다는 듯이 일을 맡기셨습니다. 모교 120년사 편찬사업이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라 제게 기회가 주어진 것이 크나큰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 위원회 구성은 어떻게 되는지요.

 “120년사 편찬위원회는 상임 편찬위원과 단과대학 추천 편찬위원으로 구성됩니다. 상임 편찬위원은 저를 포함해서 편집부장에 역사교육과 金泰雄교수, 교열부장에 법학과 鄭肯植교수 등 총 4, 연구위원으로 박사학위 소지자 및 교수 4명이 있고, 또 통합개교 이전의 역사를 갖고 있는 9개의 단과대학 추천 교수 9명이 단과대학 추천 편찬위원으로 참가하고 있습니다. 그 외에 방대한 사료를 수집할 사료수집요원으로 국사학과와 역사교육과 대학원생 5명을 임명했습니다.”

 - 120년사 편찬이 결국 지난 2010년 공표한 `개학 1895, 통합개교 1946'을 심화하는 작업이라고 하겠는데요.

 지금 `국립서울대학교 개학 반세기'라는 사업 명칭 아래 1946년 통합개교 이전까지의 역사를 조사, 정리하는 작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46년 이후의 역사는 이미 여러 번 편찬된 것이 있습니다. 역사 찾기가 왜 절실한가는 총동창회가 발간한 `正統正體性'이란 책을 통해 충분히 입증됐다고 생각합니다. 120년사는 그 흐름을 꿰뚫어 구체화하는 작업이라고 보면 되겠습니다.”

 - 아시다시피 개교 원년 찾기 때도 적잖은 논란이 있었고, 지난해 120년사 편찬 계획이 나오자 일부 모교 교수들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기도 했는데요.

 평의원회 결정까지 난 공식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일부에서 부정적인 의견이 표면화된 데는 대략 세 가지 요인이 있는 것 같아요. 먼저 `正統正體性'에서 꼼꼼하게 제시하고 있는 사실들을 미처 확인하지 못한 경우가 있고, 다음으로 `경성제대'에 대한 반발이 크게 작용하고 있지 않나 싶습니다. 1946822일 미군정 법령 제102`국립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에 따르면 명백히 9개 전문학교와 경성대학을 합쳐 국립서울대가 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따라서 흡수 통합된 9개 전문학교와 경성대학의 역사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이치죠. 여기에 고종 황제를 `나라 망하게 한 무능한 왕'으로 폄하하는 시각도 작용했고요.”

 - 이른바 `치욕의 역사도 역사'이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그러나 사실 일제가 경성제대를 만든 것은 月南 李商在선생 등 민족지도자들이 民立大學 설립운동을 벌인 것에 긴장해 선수를 친 겁니다. 한편으로 일본제국으로서는 만주 진출에 필요한 인재 양성도 절실했죠. 그런데 1946년부터 진짜 서울대학교의 역사라고 강변한다면 그건 더 치욕스럽죠. 우리 모교가 오로지 미군정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이 돼 버리니 이런 타율의 역사가 더 좋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제가 연구한 바에 따르면 고종은 결코 무능한 군주가 아니었어요. 어떻게든 나라를 부흥시키려 불철주야 애쓰셨죠. 대한제국이란 입헌군주국으로 근대성을 강하게 지니고 있었습니다.”

 - 편찬 방향이나 계획은 어떻게 되나요.

 “`正統正體性'에서 1차 그림은 그려졌고, 지난 1월부터 사업을 시작해 내년 말까지는 집필을 완료하려 합니다. 대략 본문 8백여 쪽 안팎, 부록 2백여 쪽 안팎으로 총 1천 쪽 안팎이 될 겁니다. 2016년 초에 발간할 예정입니다.”

 - 자료 조사 과정에서 秘史들을 발견할 텐데 그런 내용들도 소개되나요.

 당연하죠. 예컨대, 李 儁열사와 咸台永 3대 부통령이 법관양성소 1출신인 건 잘 알려져 있지만, 安重根의사 공판 때 한국 측 변호인으로 나섰던 安秉瓚변호사가 3출신이란 건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재판을 진행하던 여순 지방법원이 `본 법정은 외국인 변호사를 채택하지 않는다'고 선언해 무산되긴 했습니다만.”

 - 경성대학과 국립서울대 시절 사회주의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고, 그 중 월북한 분도 꽤 되죠. 북한이 자랑하는 비날론(Vinalon) 섬유를 만든 李升基교수가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그 분들의 행적도 엄연히 모교 역사의 일부분 아닐까요.

 당연히 넣어야죠. 학적을 갖고 있으니까.”

 - 법관양성소, 한성사범학교 등 개화기의 전문학교나, 경성제대 동문 중 독립운동(광복군 포함)을 했거나 학도병으로 끌려가 산화한 분이 꽤 될 것이고, 해방공간과 6·25전쟁, 그리고 월남전 등에서 희생된 분들도 있을 텐데요. 이분들에 대한 발굴과 기록도 중요할 것 같아요.

 역사적 사건 속에서 역할을 하신 동문들에 대해선 각별히 부각시켜야겠죠. 일단 학교 설립에 관계된 분이나, 동문에 관한 데이터베이스는 구축돼 있습니다. 1차로 이를 검색하고 다음 단계로 가야죠. 상임 편찬위원들이 큰 줄기를 구성하고, 9개 대학 편찬위원들에겐 각론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 학술원 회원으로 국사편찬위원장을 지내셨으니, `국사 홀대'에 대해 누구보다 하실 말씀이 많으실 텐데요.

 벌어진 일이 너무 커서 뭐라고 한마디로 말씀드리기가 어렵네요. 결국 과목 이기주의에서 역사, 한국사가 밀린 거죠. 과거 수능 필수였다가 선택과목으로 강등됐는데, 외워야 하는 것이 많은 과목 특성상 수험생으로선 기피 과목이죠. 이렇게 된 데는 중고교 교과서에 대해 관심이 부족했던 역사학계와 역사교육계의 책임도 있습니다. 좌우이념 문제를 떠나서 교과서 내용이 우선 너무 많고 복잡합니다. 교과서 정책에 무언가 문제가 많은 결과로 보입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한국사 교과서를 실제로 읽어보면, 사건, 사항 나열이 많고 `?'가 없어요. `?'가 없으니 暗記臺帳이죠. 집필자가 역사의 흐름을 얘기하면서 사실을 제시해야 학생들이 따라오는데.”

 - 위원장님은 총동창회와 연계된 업무를 많이 하신 편이죠. 지난 몇 년 총동창회를 지켜보면서 느끼신 소회가 있으시다면.

 놀란 것이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총동창회에서 신년교례회와 정기총회를 개최하는데, 근래 신년교례회에 가보면 롯데호텔 메인 홀이 꽉 찹니다. 옛날에는 생각도 못했던 광경입니다. `모래알 같다던 서울대, 이제 뭔가 새로워지는구나' 느꼈습니다. 다른 하나는 `개학원년 1895, 통합개교 1946'을 재학생들이 제일 반기는 것 같습니다. 각종 행사 때마다 팸플릿에 이 문구를 크게 넣거든요. 아마 재학생들이 오랜 역사를 내세우는 K, Y대에 주눅이 들었다가 역사 찾기를 계기로 우리도 유구한 역사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된 듯합니다.” 사진 = 邊廷洙기자·정리 = 林香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