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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0호 2014년 1월] 문화 꽁트

2040년 구보 씨의 일일



 서기 204011일 아침, 소설가 구보 씨는 종달새 지저귀는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희미하게 코끝을 스치는 소쇄한 솔향기. 침대에 누워있던 구보 씨는 눈을 슬쩍 떴다. 침실을 둥그렇게 둘러싼 초대형 홀로그램 화면엔 아침 이슬에 촉촉이 젖은 숲 속 풍경이 떠오르고 있었다. 구보 씨는 다시 눈을 감았다. 그리고는 비몽사몽 현실과 환상을 착종하는 의식의 혼몽을 즐겼다. 그러다가 그는 퍼뜩 오늘이 새해 아침임을 깨달았다. 새해 아침을 침대에서 뒹굴며 보내다니 안 될 말이었다. 구보 씨는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그리고 거울에 제 얼굴을 비춰보았다. 마악 중년으로 접어든 외로운 사내가 무감동한 표정으로 마주 보고 있었다.

 내가 오늘로 마흔 살이 됐단 말이지. 그럼 평균수명으로 따져 60년쯤을 더 살 수 있다는 이야기로군.”

 자신의 나이가 새삼스러웠다. 나이 마흔에 내가 이룬 것은 도대체 무엇인가. 세 개의 단편소설집과 세 개의 장편소설을 펴낸 것이 구보 씨가 40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가시적으로 이뤄낸 전부였다. 그리고 약간의 허명. 문학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기가 없긴 마찬가지여서 구보 씨 역시 오랫동안 다국적 전자상사의 `텔레마케터' 노릇으로 호구지책을 삼았던 터였다. 물론 대부분의 직장인들처럼 광통신을 통한 재택근무이긴 했지만.

 구보 씨가 전업작가가 된 건 2년 전이었다. 그것은 그의 판타지 소설 `명왕성 탈출'이 독자들의 시선을 끌어준 덕분이었다. 유료조회 100만 회를 돌파하고 게임제작사에 만만찮은 원작료를 받고 판권을 판 덕분에 도심 언덕바지의 구질구질한 독신자용 아파트를 벗어나 교외의 전원에 거창하게 세워진 140층 짜리 마천루 아파트 한 칸을 장만했고 직장을 그만둘 용기도 생긴 것이었다. 결혼도, 아이도 포기한 대가로 얻은 결과치고는 초라한 것이었지만 그는 그 조그만 성취에 그다지 불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구보 씨가 자신의 삶을 항상 만족스럽게만 생각했던 건 아니었다. 낡아만 가는 상상력과 감성을 싼값에 팔아 넘기며 현대문명의 한 귀퉁이를 배회하는 소지식인으로 머문 그였지만 세상의 모든 독자들을 경탄과 감동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훌륭한 소설을 쓰겠다는, 이제는 스러진 문학청년 시절의 청운의 꿈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 한쪽엔 휑하니 찬바람이 일곤 했다.

 결혼을 하지 않은 게 구보 씨만은 아니었다. 이미 일부일처제는 케케묵은 유물이 된 지 오래였다. 구보 씨 또래만 해도 절반 넘은 사람이 계약 동거나 독신 상태였다. 젊은 축에선 결혼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구보 씨는 다른 사람들처럼 6개월 단위의 계약동거를 하고 싶은 생각도 없었고 그렇다고 사이버 섹스프로그램에 욕정을 내맡기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어느 편이냐 하면 구보 씨는 스스로를 좀 구닥다리 감각의 소유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동료들에게 구식이라고 가끔 놀림을 받는 필명인 `구보'만 해도 그랬다. 20년 전 그러니까 스무 살 문학청년 시절 광통신컴퓨터의 `전자박물관'을 통해 1934년 박태원이란 작가가 쓴 `소설가 구보 씨의 일일'이란 제목의 소설을 검색했을 때 그는 무릎을 쳤다. 그는 한 세기 전 아득한 옛날소설에 나오는 그 이름이 풍기는 고색창연함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래 오늘부터 내 필명은 구보다!”

 세면을 마친 그가 밖으로 나왔을 때 식탁에서 구수한 냄새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구보 씨가 좋아하는, 제주도 유전자배양농장에서 직송된 옥돔구이와 송이버섯 볶음이 주메뉴였다. 아침은 인공야채와 커피로 가볍게 때우는 구보 씨의 식사습관을 아는 가사전용 로봇 `쇠돌이'였지만 오늘은 설날 아침이라 저 딴엔 마음을 쓴 게 분명했다. 쇠돌이는 미소를 지으며 구보 씨에게 인사를 건넸다.

 구보 선생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자신에게 새해 인사를 가장 먼저 건네준 게 사람이 아닌 기계라니. 구보 씨는 쇠돌이에게 고개를 끄떡해 보이면서도 다시 쓸쓸해졌다. 돈 많은 치들은 팔등신 미녀 로봇을 몇 개나 사서 마치 옛날 할렘의 술탄이나 된 것처럼 기분을 낸다지만 구보 씨는 꼭 사람처럼 생긴 로봇을 볼 때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살아 있는 노예를 부리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아침을 들면서 구보 씨는 맞은편 벽에 걸린 쌍방향 디지털 TV에게 물었다.

 메시지 들어온 것 있나?”

 동료작가인 폴라21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입체화면 속의 폴라21은 살집이 두껍게 잡힌 볼을 실룩거리며 그에게 말을 건넸다.

 어이, 구보. 정월 초하루부터 무슨 청승으로 집구석에 틀어박혀 있나? 어때, 나랑 삼박사일쯤 화성여행 갈 생각 없어? 같이 간다면 말야. `마르스 타운'에서 한턱 쏘지. 생각 있으면 전화하라구.”

 마르스 타운은 미국의 초국적 자본이 5년 전 화성에 세운 화성판 라스베가스였다. 구보 씨는 픽 웃었다.

 마르스 타운 좋아하네. 그 살풍경한 화성까지 가서 고작 기계여자의 시중을 받으면서 술이나 퍼마시자구? 아이구, 나는 사양하겠네.”


 구보 씨는 다시 TV에게 뉴스를 돌리라고 지시했다. 예상대로 `유전자은행 설치법' 문제로 시끌벅적했다. 각 분야별로 남녀 최고 엘리트 100명씩의 유전자를 조합해 최고 영재를 만들어낸 후 여왕봉 교육을 시킨 다음 첨단 기획업무에 투입하겠다는 정부 발표가 발단이었다. 여당인 `뉴 유니버스당'의 발의에 야당인 `디모크라틱당'`문명퇴보운동연합' 같은 시민단체들이 새로운 계급사회를 불러올 `유전자 카스트'라고 맹렬히 반대하고 있었다.

 청탁 원고를 몇 장 쓴 오후 무렵 구보 씨는 집을 나섰다. 용인의 대규모 `실버시티'에 사는 부모님께 세배를 가기 위해서였다. 아파트 옥상엔 도시형 에어버스 정차장이 만들어져 있었지만 그는 오랜만에 바깥 공기가 쐬고 싶었으므로 건물 밖으로 나갔다. 인적 뜸한 한강변을 걷고 있자니 그는 마치 자신이 100년 전, 지팡이를 짚고 봄의 거리를 외출한 소설 속의 구보 씨라도 된 기분이었다.

 부모님은 그를 반갑게 맞았다. 두 분의 연세가 이제 일흔 다섯. 생명공학의 발달로 급격하게 늘어난 수명 때문에 아버지는 세 번의 직장을 바꾼 다음 겨우 3년 전에야 은퇴를 하셨고 평생에 걸친 노동의 대가로 국가가 제공하는 실버시티에 입주하셨던 것이다. 노인들을 위한 서비스가 완비된 실버시티에서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두 분이지만 그래도 구보 씨는 자신의 방문을 반가워하는 표정에 배어나는 쓸쓸함을 발견하고는 가슴 한편이 짠해졌다. 구보 씨로부터 세배를 받은 어머니는 작은 상에 무언가를 차려내 왔다.

 이게 뭐예요?”

 구보 씨는 상 위에 놓인 낯선 음식에 눈길을 떨구며 의아하게 되물었다. 어머니의 얼굴에서 백 점 맞은 시험지를 자랑하는 듯한 아이 같은 천진한 웃음이 떠올랐다. 어머니가 손수 빚은 백설기와 수정과였다.

 백설기!

 아주 어릴 적 맛보고는 잊어버린, 이제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20세기의 설음식이 아닌가. 그런데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이 음식을 만들어 두셨던 것이다. 구보 씨는 묵묵히 떡과 수정과를 먹기 시작했다. 흡족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어머니가 혼잣말 비슷이 나무랐다.

 넌 도대체 장가는 가지 않을 거냐? 이런 날 혼자 불쑥 나타나지 말고 며느리랑, 손주랑 같이 오면 좀 좋아?”

 구보 씨는 쓴웃음을 흘렸다. 요즘 같은 세상에 아직도 손주를 안아볼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니 어머니는 영원한 구식 여자였다.

 문득 어머니가 생각이라도 난 듯 그에게 뭔가를 내밀었다.

 , 이거 말야. 새해도 오고 해서 며칠 전 내가 집안 정리를 하지 않았겠니? 그런데 네 어릴 적 물건을 모아놓은 상자에서 이게 나오지 뭐냐?”

 새끼손가락 마디만 한 납작한 금속판이었다. 이게 뭐더라? 구보 씨는 그것을 받아들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윽고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렇다. 그것은 3040년쯤 전에 쓰였던, 지금은 흔적조차 사라진 USB였다.

 구보 씨는 아버지의 서재로 들어갔다. 옛날 물건 모으기를 좋아하는 아버지의 서재 벽장 속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을 구형 컴퓨터에 생각이 미쳤기 때문이다. 갖가지 허섭스레기를 뒤져 낡은 컴퓨터를 꺼낸 구보 씨는 성급히 전원을 넣었다. 말로 시키면 뭐든지 척척 알아서 하는 요즘 컴퓨터와는 달리 하나하나 자판을 쳐 넣어야 하는 그 구식 컴퓨터를 더듬더듬 실행시키며 모니터를 들여다보던 그의 시선이 어느 순간 딱 멎었다. 서기 201411, 바로 열세 살 적의 구보 씨 자신이 쓴 작문이었다.

 `나의 꿈 - 오늘로 서기 2014년이다. 나는 올해 열세 살. 서기 2040년이면 마흔 살이 된다. 그때 나는 무엇이 되어 있을까. 아마도 틀림없이 노벨문학상을 탈만큼 유명한 소설가가 돼 있을 것이다. 나는 앞으로 이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과 감동을 주는 훌륭한 소설가가 될 것이다.'

 구보 씨는 순간 가슴이 철렁해졌다. 짐짓 웃어보려 했으나 얼굴 근육이 마비된 듯 입술이 당겨지지 않았다. 희망, 감동, . 요즘엔 이미 쓰이지 않은 단어들이 아닌가. 수십 년 전 낡은 사전에나 실려 있을 법한 그 낯선 사어들이 아프게 그의 시선을 파고들었다.

 그때였다. 문득 구보 씨의 메마른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툭하고 컴퓨터 자판 위로 떨어진 것은. 창을 새어든 2040년의 석양은 머리를 숙이고 오열하는 구보 씨의 등판에 작은 새의 깃털처럼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