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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9호 2013년 12월] 문화 꽁트

하늘정원은 왜 자꾸 좁아지나





 그날 오전 신변호사는 벽시계를 흘끔 쳐다보았다. 10시 반, 오전의 중간 휴식시간이 30분이나 지났다. 칸막이 옆의 동료를 힐끔 보았다. 그 친구는 책상에 머리를 박고 무언가를 읽고 있었다. 소송서류는 아닐 테고 아침신문은 대충 다 훑었을 시간이니 잡지라도 읽는가 보았다.

 그는 방해가 될세라 살그머니 일어나 사무실 출입문을 열었다. 그때 갑자기 책상 위 전화벨이 울기 시작했다. 매일 그 시간에 오던, 인터넷회사를 교체하면 돈을 준다는 전화일 것이 뻔했다. 그는 벨소리를 무시하고 복도로 나와 문을 꽉 닫았다. 한참 만에 온 엘리베이터가 꽉 차있는 것이 보였지만 염치없이 몸을 밀어 넣었다. 옆에 선 뚱뚱한 아저씨의 옆구리에 손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며 12층 버튼을 간신히 누르고 나서 안도의 숨을 쉬었다.

 무거운 철문을 어깨로 밀치고 밖으로 나서니 빗줄기가 안경알을 확 덮었다. 그는 잠시 멈추어서 안경이 바깥 기온에 적응하기를 기다렸다가 옷소매로 안경알을 닦았다. 시야가 트이면서 그는 `아악' 소리와 함께 신음을 내뱉었다. 이곳은 이제 정원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로 손바닥만 하게 좁아져 있었다.

 지난 봄 이 신축건물에 사무실을 얻었을 때만 해도 옥상 전체가 정원이었다. `첨단설비의 사무실과 친환경공원의 완벽한 조화'라는 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땐 잔디밭과 일년생 꽃밭뿐이었다. 머리카락이 가늘게 자라 표피가 뽀얗게 드러난 아기의 머리같이 듬성듬성 흙바닥이 드러났었다. 나무도 심고 작은 연못도 만들고 조경작업이 계속되자 한 달 만에 건물 옥상이라고는 믿어지지 않게 평지 위의 공원과 비슷한 모습을 띠게 됐다.

 단조로움으로 그를 질식케 했던 회사원 생활을 집어치우고 로스쿨을 다녔던 것은 변신을 꿈꿨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늦깎이 변호사가 됐다. 하늘정원에서 개업식을 했다. 최고령 합격자와 한 살 차이 때문에 신문기사로 나올 기회를 놓쳐서 안됐다고 하는 친구의 놀림도 아랑곳없이 그는 꽃밭 사이를 겅중겅중 돌아다니며 맥주 잔을 비웠다.

 한동네에서 자란 지희는 난초 화분을 들고 개업식에 왔었다.

 너 이제 좀 변호사 티가 난다. 아직은 그저 영업 허가를 얻어 놓은 것뿐이지만. 내가 장사를 해 봐서 아는데, 첫 손님은 절대 홀대하지 마. 그 사람이 행운을 몰고 올지도 모르니까. 마수걸이하면 전화해, 내가 한 턱 낼게.”

 그럼 내가 너의 첫 남자였니?”

 지희는 씩 웃으며 언제 돈벼락 맞을지 알 수 없으니 행길 걸을 때 조심하라는 말을 했다. 그녀는 오늘도 가게에서 라면을 먹으며 지나가는 행인을 간절한 눈으로 좇고 있을 것이다.

 그 건물 3층의 사무실은 넓었고 깨끗했고 밝았고, 무엇보다 시세에 비해서 쌌었다. 하지만 즐거움도 잠깐이었다. 새집 냄새 때문에 한 시간 이상을 사무실에 있을 수가 없었다. 건강을 생각해 오전에 두 번, 오후에 세 번을 하늘정원에 올라와 공기를 마시면서 세월이 흘러 새집증후군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바깥 대기도 오염돼 있긴 했지만 그래도 사무실 안 보다는 훨씬 나아 산에라도 오른 듯 상쾌한 느낌이었다.

 여름이 되자 냉방용 탱크가 숫자를 늘리면서 옥상의 구석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냉방장치는 심한 소음과 냄새를 발산하곤 해서 그 옆에는 얼씬도 하기 싫었다. 사람이 거닐 공원이 반으로 준 셈이었다. 한 달 후 큼지막한 창고가 하나 들어섰다. 그런지 얼마 되지 않아 또 하나의 창고가 들어섰다.

 신변호사는 그 날 연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또 다른 창고를 짓는 공사가 벌어지는 것을 보았다. 정원을 아주 망가뜨리려 하는 건물주에 대해 분노가 치밀었다. 건축법을 이런 편법으로 피해가다니. 그는 건축자재가 수북이 쌓여 있는 틈을 비집고 걸음을 내딛으며 요리조리 살폈다. 사무실 입주자를 대표해서 구청에 고발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맴돌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섬뜩한 추위가 감돌았다. 어떤 사람이 입에 담배를 물고 흡연지정석을 떠나 그가 서 있는 쪽으로 다가왔다. 누르려 했던 짜증과 분노가 왈칵 치밀었다. 하늘정원이 작아지면서 그의 마음도 좁아졌다. 전에는 가까이서 담배연기를 내뿜는 사람을 아무렇지도 않게 봐 넘기곤 했었다는 데에 생각이 미쳤다.

 그는 마음 한 구석에서 또 다른 분노가 솟구치는 것을 느꼈다. 갑작스런 어지러움에 그의 몸이 왼쪽으로 기우뚱거렸다. 주위에서 일어나는 일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시절이 생각났다. 그 사고를 친지 거의 십 년이 다 돼가고 있었다. 안 돼. 그는 외쳤다. 두뇌의 평형추가 필요했다. 세상 걱정이란 게 다 덧없는 일이야. 그는 보이지 않는 비눗방울을 불어 공중에 날리는 시늉을 하면서 그곳을 떠났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오면서, 사무실을 비우겠다고 결심했다. 처음에 품었던 계획은 반년 만에 아주 작게 오그라들었다. 몇 달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장밋빛 꿈을 고집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현실을 바로 봐야 할 시점이었다. 무엇보다 사무실 임대료를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이제는 하다 못해 상품 외판원이나 택시운전기사 자리라도 무언가 돈벌이 되는 일을 찾아 또 다른 변신을 시도해 봐야 했다.



 방으로 돌아오니 동료가 싱글거리며 그의 책상으로 다가왔다.

 너를 찾는 전화가 왔었어. 사건을 맡길 기세더라. 십 분 후에 다시 전화하라고 했으니 곧 다시 올 거야.”

 그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보는 사람마다 명함을 돌린 지 반년이 넘었지만 자신을 찾아 사건을 의뢰하는 고객은 없었다. 선배 변호사의 사건에 판례검색을 해주거나 서류작성을 도와주는 조수 노릇이 고작이었다.

 맡고 있는 사건이 한 건도 없다는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기 싫었다. 사무실을 같이 쓰는 로스쿨 동창생도 같은 처지였다. 두 사람은 싸고 맛있는 식당을 찾아내어 점심 먹고 카드게임 하다가 사우나하고 집에 돌아가는 것이 일과였다.

 전화는 전에 근무하던 건설회사 김 사장이 건 것이었다. 사직서를 낸 날 혼자 노래방에 들러 목이 쉬도록 고래고래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났다. 김 사장이 자신의 전화번호를 검색해 내어 전화해 준 것은 고맙지만 타이밍이 안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사장에게 일을 때려치우려는 참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바빠서 당장은 시간을 낼 수 없다고, 그러니 다른 변호사를 소개해 주겠다고 둘러댔다.

 거절의 전화를 끊자마자 검게 탄 얼굴의 김 사장이 사무실로 들이닥쳤다. 김 사장은 지방출장을 다녀 온 사이 도둑이 들어 금고를 완전히 비워갔다고 했다.

 도둑이 누군지는 짐작하고 있네. 자네가 해 줄 일은 그 놈을 증거와 함께 경찰에 신고하고 재판이 끝나 감방에 갈 때까지 계속 풀 서비스를 해 주는 것일세.”

 신변호사는 속으로 웅얼거렸다. 사장실이란 곳이 누구든 들락거릴 수 있게 보안이 허술했으니 당할 만 했지. 경찰에 신고하면 될 일을 가지고, 내가 뭐 사립탐정인가, 도둑을 어떻게 잡으란 말인가.

 경찰은 도난 당한 돈이 얼마인가만 묻거든. 돈만 찾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한다니까. 난 그 이상을 원해. 그래서 자네를 찾아왔다네.”

 도둑질했다고 다 감방에 가는 것은 아니에요. 도둑맞은 물건을 돌려받으면 대개 처벌이 면제돼요. 초범이면 훈방되기도 하구요.”

 그 물건을 가져가다니 절대 용서할 수 없어.”

 도난품이 무엇인지 가르쳐 주지도 않으면서 어떻게 찾으란 말이에요.”

 차차 얘기해 줄게. 한때의 실패를 상기시켜 주는 물건이라고 해야 되겠지. 난 아직도 그것을 보면 굴욕감으로 떨린다네.”

 신변호사의 머리에 `굴욕감'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십 년 전에 겪었던 치욕이 뜨거운 느낌으로 목줄을 타고 올라왔다. 아직 가슴에서 지워버리지 못한 사건, 언젠가 꼭 되갚아줘야 할 그의 숙제이기도 했다.

 흥신소를 시켜서 그걸 찾으면 되잖아요.”

 아니, 난 그 놈에게 꼭 콩밥을 먹이겠어. 돈은 중요하지 않아. 돈을 돌려 받지 않아야 그 놈에게 유죄판결이 내려진다면 돈은 찾아내지 말게나.”

 그는 김 사장이 착수금이라고 내미는 봉투를 받아서 책상서랍에 넣었다. 한 달 임대료는 벌었으니 폐업은 다음에 생각해 볼 일이라고 몰래 큰 숨을 내쉬었다.

 동료의 축하인사에 그는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하필 침 뱉고 떠난 직장에서 개시손님이 나타나다니. 훌훌 벗어 세탁물통에 던진 속옷을 다시 꺼내 입은 기분이야. 우라질 첫 사건만 아니어도.”

 , 그러지 말고. 이따가 지희네 가게나 같이 들러보자.”

 고객을 위해 쫓아다니는 일은 그를 매일 녹초로 만들었다. 하지만 휴식을 위해 하늘정원을 찾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마음을 작게 만들었던 하늘정원을 용서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