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8호 2013년 11월] 문화 꽁트
어떤 멸종


뚜룻뚜…, 뚜룻뚜….
그닥 시끄럽진 않지만 귀를 파고드는 듯한 날카로움이 섞인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아침 일곱 시. 그러고 보면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는 날임에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일어난 건 참 오랜만의 일이다. 만일 내게 얼마 전의 소통의 어긋남만 없었다면, 오늘도 해가 중천에 뜰 때까지 늘어지게 늦잠을 자는 서기 2113년의 여느 휴일 아침과 다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오늘 일정!”
허공을 향해 외치자 나긋나긋한 목소리를 가진 나의 그녀, 홈컴398호의 안내가 시작된다.
“오전에 국립 디지털 도서관에 가서 점심식사 전까지 사자에 관한 자료를 검색하시고, 오후엔 졸업을 위한 마지막 리포트를 재작성하셔야 합니다. 저녁식사 후 늦지 않게 아르바이트 직장에 도착해서….”
그렇다. 어젯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가 입력했던 계획에 따르면, 나는 아침에 도서관을 가기로 했다. 여기서 도서관까지 멀진 않아도, 스카이 버스 시간을 맞추려면 일찍 나서는 수밖에 없다. 누가 들으면 나를 대학 졸업반인데도 마지막까지 도서관을 찾을 정도의 공부벌레라고 여길지도 모르지만, 실상은 교수가 내준 리포트 하나를 전혀 엉뚱한 내용으로 제출해 다시 써오라는 명을 받았을 뿐이다. 졸업 전 마지막 전공 강의를 맡은 교수는 일대일 면담에서 내게 분명 이렇게 말했다.
“4년 동안 동물학을 공부해온 자네에게, 졸업 전에 꼭 필요한 과제를 내주겠네. 자네가 관련 직종에서 일하게 되든 그렇지 않든, 실상 이 지구의 주인인 동물들이 사라져가고 있다는 점을 절대 잊지 말아 주었으면 하네. 바로 멸종을 말하는 걸세. 그런 의미에서 마지막 리포트의 주제는 사자들의 사냥 습성 변화와 영양에 관한 내용으로 준비해 보게나.”
그렇게 해서 난 2주 동안의 준비 끝에 사자들의 사냥 습성이 그것들의 주된 사냥 대상인 영양 무리의 증감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관해, 치밀하다고는 못하지만 한 학기 통과용 리포트로는 제법 그럴싸한 글을 만들어 제출했다. 그런데 내게 돌아온 건 의외의 호통이었다.
“자네는 2주 동안 대체 뭘 한 건가?”
“…?”
“인간들에 의해 개체 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멸종 위기에 처한 사자들이 무리 사냥에서 단독 사냥으로 습성이 바뀌어 가고 있고, 그것이 다시 사자들의 멸종을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을 추론했어야지. 여기서 뜬금없이 영양이 왜 나오나?”
“교수님께서 분명 영양에 관해서 알아보라고….”
“그래, 영양. 사자의 사냥 습성 변화가 사자의 멸종에 미치는 영양 말일세.”
“….”
“아무리 마지막 학기라도 점수를 줄 수 없으니, 다음 주까지 다시 써오게.”
대략 이렇게 된 이야기였다. 교수는 `영향'을 말한 것인데, 나는 `영양'으로 알아들은 것이다. 억울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별 수 없는 노릇이었다. `영향'이나 `영양'이나, 둘 다 `영양'으로 발음되기는 매한가지니까 말이다. 난 졸업을 위해서는 꼼짝없이 리포트를 다시 쓰는 수고를 감수해야만 했고, 그렇게 해서 이 좋은 휴일에 아침부터 도서관행 스카이 버스에 몸을 싣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많지 않은 휴일 아침의 도서관에서, 내가 입체 검색 시스템을 머리에 장착하고 가장 먼저 내뱉은 말은 `사자'가 아니었다. 스카이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교수도 나도 잘못은 없지만 결과적으로 큰 피해를 입게 된 나의 처지가 하도 억울해, 아무런 소리도 갖지 못한 그 놈의 `ㅎ'에 관해 분노와 궁금증이 분간할 수 없이 뒤섞인 채로 차올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헤드셋 속 가상 입체공간을 향해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ㅎ'에 관해 이것저것 파고들기 시작했다.
처음엔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 배운 기억이 있는 기초적인 내용 정도만 확인하고 그만두려 했다. 사자의 멸종 위기에 관한 리포트를 다시 작성할 시간도 빠듯했고, `ㅎ'발음에 관해 뭘 알아낸다고 해서 상황이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래전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이 `ㅎ'의 소리를 제대로 내지 않기 시작했다는 것과, 그러다 지금으로부터 70년 전인 서기 2043년에 단행된 `한글 큰 정리'때 결국 `ㅎ'은 발음이 없는 것으로 정해지기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되자, 나는 그 즈음의 조상들에게 화가 치밀어 참을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대체 나의 조상들은 엄연히 자음인 `ㅎ'을 왜 소리 없는 놈으로 만들어 놓은 걸까. 게을러서인지, 아니면 그 무슨 효율성의 논리에 사로잡혀 그랬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로 인해 2113년의 내가 이렇게 아무런 잘못도 없이 오롯이 휴일을 빼앗기는 피해를 입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그렇게 `사자'에 관해 생각해야 할 내 머릿속을 온통 `ㅎ'에 대한 생각으로 채우고 오전 시간을 고스란히 허비하고 있는 내 눈앞에, 1백년 전에 쓰인 고문서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서기 2013년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어느 소설가가 자신의 대학 동창회보에 쓴 것으로 기록된 그 짧은 글은, 사자의 멸종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어떤 멸종'에 관한 우울한 예언이었다. 쳇, 그런데 그 예언에는 바로 내 얘기가 담겨 있었다.
갑 : 볕 좋은 일요일인데, 오늘 어디 가?
을 : 응, 오랜만에 교외에 나가 보려고.
갑 : 우와, 괜찮은 계획인데. 누구랑, 가족들이랑?
을 : 아니, 우리 식구 중에 나만 교외 나가잖아.
갑 : …?
비교적 절친해 보이는 두 사람 사이의 대화인데, 뭔가 소통이 잘 안 되고 있다. 말을 할수록 서로가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짙어진다. 무엇이 문제일까. 계속해서 들어보자.
갑 : 왜, 식구들이 교외를 싫어하나 보지?
을 : 알잖아, 너무들 이성적이라 뭘 잘 믿으려 들어야 말이지.
갑 : 교외 나가는데 믿긴 뭘 믿어?
을 : 그럼 교외를 놀러가? 믿으러 가지.
갑 : …?
이쯤 되면 두 사람 사이의 대화에서 어디가 잘못됐는지 느낌이 온다. 만약 그래도 잘 모르겠으면, `모여서 신에게 예배를 드리는 곳'이라는 뜻이 담긴 교회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발음해 보길. 그리고 평소 주위사람들이 이 말을 발음하는 것도 유심히 한번 들어보길. 허다한 사람들이 `교회'를 `도심 밖 가까운 주변'이라는 뜻이 담긴 `교외'로 발음하고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영향'을 `영양'으로, `고향'을 `고양'으로 발음하는 사이, 나름의 독립된 음가를 지닌 자음인 `ㅎ'발음이 알게 모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마치 생물체의 한 종이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리는 것처럼, 이러다간 오래지 않아 우리말의 생태계에서 `ㅎ'발음의 멸종을 맞을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한 예를 하나 더 보면 이렇다.
1. 소설의 출간이 작년보다 두 배로 늘어났다.
2. 소설의 출간이 작년보다 배로 늘어났다.
`배'는 위의 예 1에서처럼 `수량을 나타내는 말 뒤에 쓰여 일정한 수나 양이 그 수만큼 거듭됨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지만, 예 2에서처럼 그 자체로 `어떤 수나 양을 두 번 합한 만큼', 즉 `갑절'이나 `곱절'이라는 뜻도 가진다. 그런데 이제 사람들은 `두 배', `세 배', `네 배'로 표현하는 데 익숙해져, 예 2의 뜻을 거의 살려 쓰지 않고 있다. 무슨 쓸데없는 걱정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배'라는 말이 오롯이 혼자서 쓰일 수 있는 의미는 영원히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이 역시 또 하나의 멸종 사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생물들의 세계에서 한 종의 멸종은 곧 생태계의 교란으로 이어진다. 거미줄처럼 얽히고설킨 각 종들의 관계와 체계가 흐트러지게 된다는 얘기다. 우리가 내뱉는 말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들의 세계와 견주어지는 비유가 타당하다면, 어떤 발음이나 의미의 멸종이 가져올 생태계의 교란은 생각 이상으로 심각해질 수 있다. 생각해 보자, `ㅎ'이 음가를 완전히 잃게 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말들이 동음이의어로 전락하거나 특정한 의미를 잃고 버려지게 될지를 말이다.
혹시 또 누가 알겠는가. 1백년쯤 뒤의 어느 날 우리 후손들 중 누군가가, `ㅎ'발음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리게 내버려둔 게으른 조상들을 몹시도 원망하게 될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