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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호 2013년 10월] 문화 꽁트

희미한 옛 그림자의 사랑




 청수 옹이 이번 낙산클럽 모임에 참가한 것은 거의 10년 만의 일이다. 60년대 중엽에 낙산 기슭의 ㅁ대에 다닌 대학동기생들이 낙산클럽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많이들 모인다는 말을 일찍부터 들어 알기는 했지만 원거리 나들이라는 부담 때문에 선뜻 참가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다 이 모임에 얼굴을 내밀 때 그를 알아볼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임이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그만큼 청수 옹의 대학시절은 친한 친구도 없고 오래 남을 만한 추억도 별로 없이 삭막한 허허벌판이었다. 친구 사귈 돈도 시간도 없는 고학생이었고, 이름 없는 시골 고등학교 출신으로 엘리트 집단인 이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동향 친구도 별로 없었다. 게다가 청수 옹이 다니던 학과는 입학정원이 10명밖에 안 됐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 수가 더 적어지는 소위 비인기 학과 소수집단이어서 어떤 종류의 학과 행사이든 잘 성사되는 적이 없었던 관계로 그만큼 지면을 넓힐 기회가 적었다.

 그전에 이 동창회에 나왔을 때의 기억도 떨떠름한 채로 남아있다. 그 때엔 입학 40주년 기념 송년행사로 더욱 성대하게 열렸던 관계로 200명 남짓인 회원들 중에서 100명 가까이나 나왔다고 했는데, 행사 진행 도중에 낙산클럽 총무는 청수 옹처럼 모임에 처음 나온 회원들을 무대 앞으로 나오도록 하여 인사소개를 시키고 박수를 유도했었다. 꼭 못 올 데를 잘못 찾아온 사람처럼 몸둘 바를 몰라 하던 청수 옹은 자기가 호명되는 소리를 듣고 앞으로 나가더니 호기롭게 한마디 뽑았다.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조차도 없는 사람은 희미한 옛 그림자의 사랑이라도 놓치지 않는 것이 낙산클럽 모임의 정신으로 알고 불원천리 탐라국에서 올라왔습니다…. (`희미한 옛 그림자의 사랑'은 낙산클럽 홈피 안에 대화방 문패에 달린 문구임을 청수 옹은 알고 있다.) 걸쭉하게 한마디 하긴 했지만, 이 같은 인사말이 부적절하지는 않았는지 자리에 앉은 내내 불편한 심기를 벗어나지 못했었다.

 청수 옹의 대학시절이 삭막한 허허벌판이었다고는 하나 그 가운데에 아름다운 추억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ㅁ대 합창단에 한 축 끼여 노래불렀던 추억이 아련하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 시절 청수 학생이 그 합창단에 가입했다는 것은 사실 대단한 용기를 요하는 일이었다. 준수한 미남이면서 서울 소재 명문 고교 출신인 학과 선배의 꼬드김을 받고서 가능한 일이었다. 대강당을 겸하는 합창 연습실에 들어가 앉기는 했지만 천하의 명문대학 합창단 수준을 따라가기는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합창단의 주류는 여학생들이었다. 이 여학생들을 합창 연습실 밖에서 만나 얼굴 마주하고 목소리 들어보는 기회는 원천적으로 봉쇄돼 있었다. 이들 예쁘고 세련된 여학생들에게서 낭랑하게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 가운데에 그 자신의 목소리가 섞여 나온다는 것, 그것은 설렘이었고 두근거림이었고 황홀이었다. 그는 자기 목소리를 한껏 낮춰야 했다. 고운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고, 악보 볼 줄도 음정 맞출 줄도 잘 모르는 한심한 실력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데 그런 목소리가 표나게 들리도록 해서야 어떻게 되겠는가 하는 마음 일색이었던 것이다. 간혹 그를 합창부에 가입시킨 선배가 결장하는 날이면 그는 아예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몇 명 되지 않는 잘 모르는 남학생들 옆에 앉아있는 것도 거북했지만, 옆자리에서 표준발성법을 가지고 그의 껄끄러운 음성을 차폐시켜줄 사람이 없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그렇지 않은 날에는 개근이었다. 합창발표회 날에는 핑계를 대고 슬그머니 빠져버렸다. 그 날 합창소리가 우렁차게 울려 퍼질 때 그는 객석 맨 뒷자리에 숨을 죽이고 앉았지만 누구보다도 열심히 귀를 기울여서 들었다.

 어쨌거나 청수 학생으로서는 ㅁ대 합창단에 한 축 끼어들어 한 학기를 보낼 수 있었음은 허허벌판 사막 속에 꽃피는 오아시스 같은 일이었다. 미흡하게나마 명곡 노래들도 여러 곡조 배울 수 있었다. 그 때 그가 배운 노래 중에 제일 강한 기억으로 남는 것은,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교향곡을 편곡한 `보람이 옵니까'라는 노래이다. 편곡은 그 당시 ㅁ대 합창부 지휘자가 했었다. 비창 교향곡은 그리 쉽지 않은 작품이지만 청수 옹이 지금도 아무 데서나 이 교향곡의 한 소절만을 듣고서 금방 알아들을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대학시절 한 학기 동안 어설프게 합창부에 기웃거렸던 전력의 덕분이다. `以夷制夷'라는 말이 어울릴지는 모르되, 차이코프스키의 비창교향곡을 들을 때 가슴에 와닿는 비탄의 감정은 생명의 슬픔과 세상의 고달픔을 모두 녹이고 승화시키는 것 같다. 요동치던 슬픔이 다소곳한 슬픔으로 변한다고나 할까. 대가들의 명곡과 명연주에 대응하는 맞울림 공명판을 자신의 영혼 깊숙한 곳에 간직하고 다니는 것만 같다.

 이런 것이 늙어간다는 것인지, 요즘 들어 청수 옹은 옛날의 기억들이 가물가물 희미해질 때가 있다. ㅁ대 합창부에서 배웠던 노래가 어디에서 들려올 때는 노랫소리가 일으키는 추억의 감동이 감해지는 일은 없는 것 같되(그는 이것을 참으로 신기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노래들을 배웠던 시간과 장소에 대한 기억은 아슴푸레 흐릿해지는 것만 같은 것이다. 때로는 그런 일이 과거의 언젠가 존재하기나 했었나 아리송해지기조차 한다.

 오래 전 옛날의 기억이 깜빡깜빡해질 때마다 마음 한 켠이 허전해져옴을 느끼던 청수 옹은 생각 끝에 이번 낙산클럽 모임에 나오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컴퓨터 메모리라면 한 번 입력한 것은 지워지는 일이 없겠지만 살아 숨쉬는 사람에게는 메모리 강화라는 것이 필요할 터이었다. 나는 컴퓨터가 아니다. 새로운 입력이 있어야 메모리 강화가 된다. 나의 흐릿해진 메모리 수첩에 뭔가를 써넣기 위해 과거의 시간과 장소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내가 간직한 메모리 수첩의 다른 異本들을 잠시 들여다 볼 수는 있을 거 아닌가.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을 사람들, 옛날 ㅁ대 합창부에서 노래하던 동창들 중에 살아있는 사람이 많이 있을 것이고 우리 낙산클럽 회원 중에도 있을 것이 아닌가.


 청수 옹 딴에는 큰 마음 먹고 참가한 오늘 모임이다. 이번 모임의 프로 중에는 3개월마다 열리는 세미나 순서도 들어 있었는데 청수 옹은 이 세미나의 주제발표를 자원했다. 옛날 한 울타리 안에서 추억을 공유했던 학우들과 재회하고 메모리 강화를 기하는 기회가 될 터이었다.

 동창회가 시작돼 한 시간 가량, 세미나 발표와 질의응답까지 모두 마친 청수 옹은 지금 총회 순서의 진행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그의 귀에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좀 전에 있었던 자신의 연구발표에 대한 떨떠름한 뒷맛 때문이다. 동창들이 귀담아 들어줄 만큼 그의 연구발표가 흥미를 끌지 못한 것만 같다. 그러나 그거야 아무려면 어떤가. 막상 얼굴들을 대하고 보니 그를 알아보는 옛날 학우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는 것 같아서 그런대로 동창회에 나온 기분이 난다. 특히 그의 관심을 끄는 것은 오늘 나온 대여섯 명 여자회원들 중에 그가 기억하는 얼굴이 두 사람이나 있다는 사실이다. 분명히 옛날 합창부에서 노래 불렀던 얼굴들이다. 그는 이들의 이름까지도 용케 기억하고 있다. 서은희와 김영숙이었다.

 청수 옹은 오늘 모임의 앞으로 남은 순서에 대해 궁금증과 불안이 커진다. 아마도 총회 순서가 끝나면 자리를 옮겨서 만찬 시간이 있을 것이고 그 다음에는 어떤 형태로든 뒤풀이가 있을 것이다.

 그의 바람대로 마지막 뒤풀이 장소인 단란주점 노래방에까지 옛날 합창단 동지 한 사람은 동행했다. 서은희가 아닌 김영숙이었다. 노래방까지 간 사람 수는 확 줄어서 열 명 아래이다. 이것도 그가 바라는 바였다. 노래하는 시간 중간중간에 옆자리에 앉을 기회를 보아 김영숙에게 물어본다. `보람이 옵니까'가 기억나십니까. 박찬석 작곡의 가곡 `낙엽'은요.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술기운이 막 달아오른다. 까놓고 묻지 않을 수 없네, 쨩. 나, 전청수의 얼굴은 기억하십니까, ㅁ대 합창단에서 노래 불렀던 거 잊어 먹었남요, 이거, 정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