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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7호 2013년 10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나에 대해 증언해 주세요”



 엄지손가락만한 새가 날아와 창턱에 앉는다. 양쪽 귀가 얼굴 반을 덮은 개가 의자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야행성 햄스터가 쳇바퀴를 돌리고 있다. 신문을 펼쳐 든 내가 비스듬히 누워있다. 방금 먹은 밥알을 삭히느라 허리가 구부정하다.

 묻지 않으면 절대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금고 속에 넣어둔 비밀 종이를 태워버리고 난 뒤 33년 동안이나 말하지 않은 남자가 있다. 왜 그랬냐고 물으니까 뭘? 하고 되물었다. 왜 말하지 않았냐고? 하고 다시 묻자 대답했다. 33년 동안 아무도 묻는 사람이 없었어.

 내 삶에는 아직 대답을 못 찾은 많은 의문이 도사리고 있다. 이유는 하나다. 대답을 가진 사람을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묻지 못했기 때문이다. 갑자기 내가 궁금해진다. 나는 진짜 누구인가. 내가 알고 있는 나는 지구상에 존재하고 인식돼진 진짜 나의 100분의 1도 안 되는 것 같다.

 “나에 대해 증언해주세요” 하고 주변 사람에게 묻고 싶다. 내가 살아온 내 삶이라는 것이 정작 내가 알지 못하는 이야기로 이뤄져 있을 것만 같다. 내 어린 시절도 내가 나에 대해 기억하는 것은 일부분이거나 왜곡돼 있을 것이다. 어린 시절 내 모습은 부모와 형제가 더 잘 알 것이다. 내 내면세계까지도 그럴 것이다. 형에게 묻고 싶다. “형, 내가 초등학생일 때 어떤 아이였어요?”

 청소년 때도 비슷하다.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이었을 때 친구들이 증언하는 내 모습은 무얼까 궁금하다. 내가 나 스스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들이 증언하는 내용의 10분의 1이나 될까.

 군대에서 나는 고문관이었을까. 그들은 병장 계급장을 단 내 뒤에 숨어서 나를 고문관이라고 손가락질했을까. 똘똘이 김일병으로 기억하는 전우도 있었을까 싶다. 제대하는 선임병에게 추억 앨범이나 만들어주는 신입 병사로 알고 있을까 궁금하다.

 직장에서 김기자는 누구일까. 나는 김기자를 모른다. 잘 웃고 잘 마시는, 젠틀하지만 물렁뼈인 사람으로 알고 있지 않을까 짐작은 해본다. 아이디어와 열정으로 가득 차 있으나 사실은 무대뽀 데스크 이미지로 나를 기억하는 후배도 있을 것 같다. 나는 내 이름으로 지난 30년 가까이 행세해온 김기자를 모르고 김부장을 모른다.

 거울을 보며 묻는다. 너는 누구냐. 나에 대해 얘기해줄 증언자를 찾아나선다. 우선 어린 시절 나를 기억해줄 노인을 찾아가겠다. 아흔일곱 되신 큰어머니를 찾아뵙고 그리고 내일모레 여든 되시는 작은아버지 부부를 찾아뵙겠다. 첫째 작은어머니, 고모, 이모, 이모부, 외사촌에게 나는 어떤 아이였는지, 청년이었는지, 30대였는지 물을 것이다.

 혹시 대학 은사님을 찾아뵈면 의외의 얘기를 들을지 모른다. 내가 장학금을 받지 못한 건 지하서클 가입이 들통나 정보기관 감시를 받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라 장학금을 주기엔 성적이 너무 형편없었다는 말을 듣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생각한다. 창턱에 앉았던 새가 날아간다. 무릎 밑 개가 머리를 앞발 위에 얹고 눈을 감는다. 햄스터 쳇바퀴 소리가 멎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