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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2013년 9월] 문화 꽁트

책 주사(注射)





 의사로부터 다시는 아이를 낳지 말라는 경고를 받은 어머니에게서 나는 태어났다. 나를 낳고도 딸을 둘씩이나 더 낳은 어머니는 그 후로도 자연유산을 세 번 하고, 중절 수술을 두 번 받았다. 아버지는 갈수록 더 생활에는 무관심해졌다.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농사를 짓고 아이들을 키우고 살림을 꾸려나가자니 어머니로서는 죽지 못해 사는 꼴이었다. 피를 쏟으며 쓰러진 적도 있고 임신중독으로 부풀린 술빵 모양이 된 적도 있었지만, 어머니는 당신 새끼나 짐승 새끼나 그 놈의 새끼들이 애련해 어디 도망가지도 못했다.

 오빠가 학교에 들어간 다음부터는 솔솔 돈 나갈 일이 생겨 더 힘들어졌다. 당신 몸 쓰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돈 꿔달라고 입 떼는 일보다는 쉬운 일이었다. 현금을 마련하느라 삯바느질도 하고 누에도 쳤지만, 십 원 한 장 없을 때가 부지기수였다. 시아버지한테도 꾸고 종갓집 아주머니한테도 꾸다가 어느 날은 아버지의 사촌뻘인 일가 시숙 집에 십 원 한 푼을 꾸러 갔다. 미술 시간 준비물인 도화지 한 장 값을 받아내지 못한 오빠가 학교에 벌써 도착했을 시간인데도 사립문을 붙들고 울고 있던 날이었다. 시숙은 어머니에게 십 원을 던져주며 고대 뼈아픈 소리를 중얼거렸다.

 “지꿈부터 돈 십 원이 없어가 일갓집에 채로(빌리러) 댕기미드르 앞으로 자석덜 공부를 우예 시길라 카는공.”

 어머니는 그 말을 결코 잊지 않았다. 분하고 창피한 것은 둘째이고 시숙의 말이 틀린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논 서 마지기 농사지어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고 사는 주제에 자식들을 중학교 이상 교육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헛된 희망사항일 거였다. 고등학교부터는 통학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셋방을 얻어 자취를 시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당장 목돈이 필요할 뿐더러 부대비용도 만만찮게 감당해야 하는 실정이었다. 이 골짝에 있어 가지고는 내 자식들까지 농투성이밖에는 못 만들겠구나. 그렇게 생각하니까 그러구러 버텨오던 농사일에도 정나미가 떨어져 버렸다.

 어머니는 그 즈음부터 조금이라도 젊었을 적에 도시로 나가자고 아버지를 조르기 시작했다. 도시에만 나가면 식모살이를 하더라도 자식들 공부는 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아버지는, 무엇이고 결정하기를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기다 아니다 말을 않고 시간만 끌었다. 아니 아버지로선 고향에서 농사지어 굶지 않고 느릿느릿 살면서 목마를 때는 회관으로 내려가 막걸리를 받아 마시는 생활을 포기하기 싫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 역시 집요했다.

 우리 가족은 마침내 막내가 네 살, 그 위의 동생이 여덟 살, 내가 열 살, 오빠가 열다섯 살 때 얼마 안 되는 논밭과 초가삼간이나마 팔아서 대구로 이사를 갔다. 외할아버지가 자식들 공부시킬 밑천을 만들라고 어머니에게 재봉틀을 마련해 주었다. 솜씨가 좋아서 시골에서도 동네 바느질감을 도맡다시피 했던 어머니는, 흰 바탕에 빨간 글자로 `한복'이라고 쓰인 조그마한 간판을 셋집 대문에 내걸었다. 오른손 검지를 잃은 - 시골서 소여물을 썰다 작둣날에 잘려나갔는데 끝내 봉합하지 못했다 - 손으로 하는 바느질이었지만, 손님이 손님을 끌고 오는 식으로 어머니의 일거리는 끊이지 않았다.

 비누공장에 다니던 아버지는 월급의 대부분을 공장 앞 술집에 가져다 바쳤고, 월급날 눈이 빠지게 당신을 기다린 식구들에게는 찬 밤바람 냄새와 함께 식어버린 풀빵 한 봉지를 던져주곤 했다. 숙취 때문에 지각과 결근을 자주 했는데, 지각 세 번에 하루치 일당, 무단결근 하루에 사흘치 일당을 제해 버리는 무지막지한 공장에 다녔기 때문에 월급이라고 해봤자 쥐꼬리 반 토막도 못 되기는 했다.

 나는 도시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요즘 말로 하면 왕따 비슷한 걸 당했던 것 같다. 그때의 외로움과 소외감은 내 첫 번째 소설 `에덴의 서쪽'에서 윤지의 경험 속에 녹아 있다. 가난뱅이 촌년으로 낙인찍힌 나는 마음 꼴이 어떻게 태풍 지나간 뒤의 비닐하우스를 닮을 수 있는지, 숭숭 뚫린 마음 구멍으로 습한 바람이 웅웅 지나가는 소리를 듣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됐다.

 집에 오면 하나밖에 없는 방은 어머니의 덜그럭거리는 재봉틀 소리로 언제나 시끄러웠고, 가지각색의 천 조각으로 어지러웠고, 자욱한 옷감 먼지로 매웠다. 어머니의 재봉틀 소리는 밤낮을 가리지 않았다. 명절 대목이나 봄가을 결혼 시즌이 닥치면 어머니는 토끼눈을 하고 밥 먹을 시간도 없이 재봉틀에 매달려 있기 일쑤였다.

 나는 그 와중에도 어설프게나마 움쩍움쩍 자라고 있었으며 일상적 결핍과 소음과 억압에 적응하고 있었다. 젖가슴에 홍시만 한 몽우리가 생겼고, 나에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무심한 남자아이를 짝사랑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이, 일기장 검사를 한 뒤 붉은 인주로 `참 잘했어요'를 찍고는 그 밑에다 깨알같이 작은 글씨로 `브라자를 착용하도록'이라고 써주었고, 남자아이는 학년이 바뀔 때까지도 여전히 나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으며, 나는 책이라고 생긴 것은 손에 잡히기 무섭게 읽어 치웠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문고판 소설책 한 권에 기백 원 하던 시절이었다. 판형이 크고 황금색 표지를 한 어린이 문고는 좀 더 비싸서 천 원쯤 했지 싶다. 돈이 모이면 그런 문고판 책을 사 읽고, 돈이 없으면 서점에서 선 채로 읽었다.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그러고 서서 저녁 먹을 시간을 하염없이 넘기고 있으면, 서점 주인이 집에 가서 곱게 읽고 내일 가져오라면서 책을 빌려주기도 했다.

 `빨간 머리 앤'은 그렇게 해서 서점 주인에게 처음으로 빌려 읽은 책이다. 모윤숙의 양장본 `렌의 애가'를 어여쁜 책표지와 애상적인 제목에 이끌려 이틀여 서점에 선 채로 독파한 다음이었을 것이다. 사나흘 재미나게 읽었으면서도, 나이에 걸맞지 않은 남독(濫讀)으로 눈만 높아진 나는 `렌의 애가'를 문학소녀의 감상에나 어울릴 만한 책으로 치부한 후 다른 책을 고르기 시작했다. 그때 눈에 띈 `빨간 머리 앤'은 `렌의 애가'와 크게 다를 것 같지 않은 겉보매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다리가 아팠고 배가 고팠기 때문에 무거운 내용의 책을 시작하기 싫었다. 조금만 읽다 덮어두고 집에 가야지, 하는 생각으로 나는 `빨간 머리 앤'의 첫 장을 펼쳤다.

 그러나 나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세상의 모든 빗나감 중에 그런 빗나감처럼 기분 좋으면서 난감한 빗나감도 드물 것이다.

 지긋한 나이의 독신 남매 매슈와 마릴라가 애당초 원하던, 농사일을 도와줄 사내아이가 아니라서 고아원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고아소녀 앤의 처지, 비리비리한 말라깽이에 빨간 머리 소녀 앤이 한편으로는 가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생활에 도움이 안 된다는 생각에 마릴라가 앤을 돌려보내려고 벌이는 신경전, 좋은 가정에서 사랑 받으며 자랄 기대에 부푼 앤이 눈치코치 없이 초록색 지붕 집과 그 주변의 경관에 대해 끝없이 늘어놓는 수다에서 나는 눈을 떼지 못했다. 초록색 지붕 집의 아이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된 앤이 그 비참한 날의 아침에도 늘어놓는 수다는, 마릴라의 마음뿐만 아니라 읽는 이의 마음을 부드럽고 환한 빛으로 가득 채우는 힘을 가진 것이었다.

 노름에 미친 사람이 “딱 한 판만 더 하고 끝내자”고 해놓고는 그 한 판이 두 판 되고 두 판이 세 판 되어 밤을 꼴딱 새우는 것처럼 나는 “딱 한 페이지만 더 읽고 집에 가자”고 다짐하면서 백 페이지를 넘기고 있었다. 그러고도 책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자니까 주인아주머니가 나를 불렀다. 나는 차마 책을 덮지 못하겠어서 엉거주춤 든 채로 쭈뼛쭈뼛 아주머니 앞에 섰다.

 “느거 집이 어데고?”

 “조오게 서울우유 대리점 있는 데예.”

 “그렇나. 난도 책 좋아하다 이래 책쟁이 안 하나. 느거 집에 가주가여 마저 읽고 낼 아침에 곱기 돌리도고.”

 “예. 고맙심더.”

 둥글고 하얀 동안(童顔)에 까만 뿔테 안경을 써서 명랑만화 주인공 같은 느낌을 주는 얼굴의 그 아주머니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새벽까지 책을 다 읽고 깜빡 잠들었다 늦잠을 잤다. 엄마의 호통소리에 억지로 일어나 눈곱을 떼고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지만 워낙에 동작이 굼떠서 그예 학교에는 지각을 했는데, 하필이면 그날 아침조회 시간에 두어 주일 전에 치렀던 글짓기대회 시상식을 했다는 게 아닌가. 나는 담임선생님께 한바탕 꾸중을 들은 뒤에야 내 몫의 상장을 받아 챙길 수 있었다.

 나는 `빨간 머리 앤'을 돌려주고 나서도 가끔씩 서점에 선 채로 그 책을 다시 아무 페이지나 들춰 읽곤 했다. 돌이켜 보면 사는 게 팍팍하고 우울할 때 그랬던 것 같다. 앤에게 공상이 필요했듯이 나에게는 `빨간 머리 앤'과 같은 종류의 이야기가 필요했다.

 뇌에서 분비하는 강력한 진통 호르몬 엔도르핀. 정제나 주사약으로는 만들 수 없다지만, `빨간 머리 앤' 같은 책을 주사기로 쓰면 가능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