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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2013년 9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인문학에 필요한 토양




 오늘날 한국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일시적 유행이 아니라 문화적 현상인 듯하다. 적잖은 이들이 인문학에서 혁신에 영감을 주는 지혜를 얻으려 한다면, 다른 한편에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인생 행로를 되돌아보며 새로운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되는 지침을 얻으려 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인들이 선진국을 모방하며 물질적 풍요를 성취하는 데 몰두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최근 현상은 과거의 생활방식에 대해 반성하는 흐름으로 보인다. 이런 변화는 인문학도의 견지에서 볼 때 오랜 가뭄 끝에 내리는 단비처럼 반가운 것이다.

 그렇지만 단비가 온다고 해서 걱정거리가 모두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풍토는 인문학이라는 나무가 자라는 데 적합하다고 할 수 없다. 인문학은 본질적으로 전문가와 일반인이 공유하는 학문이다.

 인문학자들은 오늘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 삼고, 우리가 누구인가, 어디서 왔는가, 또 어디로 가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천착한다.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은 일반인들 사이에서 널리 공감을 얻을 때야 비로소 활력을 지닐 수 있다. 바꿔 말해 문학작품이나 철학서적, 또는 역사책을 찾아서 읽고 또 생각하고 말하는 독자들이 마치 나무가 뿌리를 내리며 커 나가도록 밑받침해주는 흙처럼 인문학에 필요한 토양이 된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그 토양이 척박하다. 널리 알려져 있듯이, 한국인들은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 성인의 독서량이 선진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데다가 성인 세 사람 가운데서 한 사람은 한 해에 한 권도 읽지 않는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책을 가까이 하지 않는 자세가 공식 교육을 통해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당국은 사교육 부담을 줄이기 위해 교과서만 강조하고, 그에 따라 학교는 기껏해야 참고서까지 읽힐 뿐이다. 게다가 대학도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폭넓은 독서를 요구하지 않는다. 아직도 인문학 교과목은 흔히 교재 1∼2권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런 풍토는 가정에서도 별로 다르지 않다. 가정에서는 흔히 부모가 자녀에게 독서를 권장하기보다는 교과서나 참고서를 펼쳐놓고 입시 준비에 열중하기를 바란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처럼 단비가 계속 내린다 해도 한국 인문학이 착실하게 성장할 것인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그처럼 척박한 토양을 개량해야 한다. 학교에서는 물론이요 가정에서도 폭넓은 독서를 강조해야 한다. 대학입시를 비롯한 교육제도 자체도 그런 방향으로 개혁해야 한다. 폭넓은 독서는 시야를 넓혀주고, 또 깊은 사고로 이어진다. 거기서 우리는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변화에 상응하는 정신적 성장을, 그리고 인간과 인생에 대한 깊은 이해를 기대할 수 있다.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창의적 사고도 기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