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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6호 2013년 9월] 오피니언 관악춘추

120年史와 서울대인의 정체성


 지난 6월 뉴욕의 한 호텔에서다.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갔더니 한국 고등학생 10여 명이 앉아 있다. 다음날도 보였다. 궁금해서 물어봤다. 어디서 온 건지. 아이비리그대학을 보러 왔다고 한다. 꿈을 키우기 위해서란다.

 호기심에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프린스턴대학을 방문했다. 안내원은 기숙사 창문을 가리키며 물었다. “왜 깨진 유리창을 붙여놓은 것 같고, 녹이 슨 곳이 많은지 아세요? 1700년대에 대학을 만들면서 영국 대학들의 역사에 콤플렉스를 느낀 때문입니다.” 학교를 둘러본 그 고등학생들은 古色蒼然한 강의실과 기숙사를 보며 입학하고 싶다는 의욕을 불태웠을 것이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것은 보편적 욕구다. 소속원을 근신하고 격려하는 자극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2010년 10월 교수평의회가 1895년을 서울대 開學 元年으로 의결한 것은 졸업생에게 자랑스러운 일이다. 더군다나 개학 120년에 맞춰 총동창회에서 지원해 `서울대 120年史' 편찬과 `歷史記念館'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의 역사를 분명하게 정리하게 됐다는 점에서 박수를 보낸다.

 개학 원년에 대해 일부에서는 아직도 부정적인 의견이 있다고 한다. `국립서울대학교'라는 이름과 법적 권리를 승계하기 이전의 역사로 올라가는 것은 억지란 주장이다. 그렇다면 헌법 전문에 명시한 임시정부의 역사는 어찌할 것인가. 이미 단과대학별로는 母胎가 된 역사들을 기록하고 있는 것과도 배치된다. 법관양성소, 한성사범학교, 의학교, 상공학교, 농상공학교 등이다. 법과대학은 법관양성소 1회 졸업생인 李 儁열사 동상을 세웠다.

 하버드대학교도 영국 식민지 시대에 학생 9명과 강사 한 명을 두고 목사를 양성한 역사를 원년으로 삼고 있다. 프린스턴대학교도 목사 응접실에서 목사 지망생 10명에게 강의하는 것에서 시작했다. 어느 대학도 소박한 역사라고, 식민지 시대라고 역사에서 지우지 않는다. 일제시대를 지우려고 해방 이후로 쭈그러뜨릴 이유가 없다. `서울대 120年史' 편찬이 서울대인의 정체성을 찾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金鎭國 중앙일보 논설주간·본보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