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9호 2004년 10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우리'의 장애인 올림픽이 되길…
李星勳(01년 人文大卒) SBS 스포츠본부 기자
장애인 사격 여자 공기소총의 세계최강 김임연 선수. 올림픽 4연패에 도전했지만, 이번 아테네 올림픽에서는 부담감이 컸던지 아쉽게 은메달에 그치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금메달을 따지 못해 죄송합니다."
씩씩한 해병이었던 스물 한 살 때 훈련 도중 벼랑에서 추락해 사지가 마비된 이해곤 씨. 불굴의 의지로 움직이지 않는 손가락에 라켓을 끼운 뒤 붕대로 감아 매고 탁구를 시작했다고 한다.
믿겨지지 않는 투혼으로 88년 서울 올림픽 때 첫 금메달. 이후 장애인 올림픽에서 이해곤 씨의 적수는 없었다. 내리 올림픽 4연패. 하지만 역시나 갑자기 몰려든 취재진에 부담을 느껴서일까. 이번 대회엔 의외로 은메달에 그치고서는 이렇게 말한다.
"국민 여러분께 금메달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송합니다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왜 죄송하냐고. 죄송해야 하는 건 우리라고. 당신들이 세계 정상을 달리고 있을 때, 미움보다 더 고통스러운 무관심을 보낸 건 우리라고. 당신들이 금메달을 따고도 훈련할 수 있는 여건도, 어엿한 직업도 구하지 못해 생의 벼랑으로 몰아낸 것도 우리라고. 주최국이었던 1988년에 벼락치기로 장애인 선수들을 급조해낸 뒤 손을 놓아버린, 그래서 선수단의 대다수가 30~40대 선수들로만 구성된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고. 48세 아줌마 사수 허명숙 씨가 금메달을 따고도 한 달 60만원씩 지원받는 생계보조금이 삭감될 것을 걱정해야 하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사회보장체계를 만들고, 정확히는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쓴 것도 우리라고. 88년 장애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여러 명이 구걸로 생을 연명하게 만든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고. 무엇보다 `우리'와 `당신들'의 경계선을 그은 것도 `우리'라고. 대회 개막식 선수입장 때, 그리스 선수단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밖에서 자신들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너무나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마치 MT라도 온 듯 잔치를 벌이던 모습을. 그리스 선수단이 입장하는 순간, 지난 하계 올림픽 때와 똑같이 주경기장을 꽉 메운 7만5천 그리스 관중들은 소리 높여 `헬라스!(그리스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부르는 이름)'를 외치며 영웅들을 환영했다. 그들은 모두 축제의 주인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우리'와 `당신들'의 경계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축제의 주인 여느 때보다 많은 관심 속에 치러진 장애인 올림픽. 이제는 한국 사회에도 `우리'와 `당신들'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우리 다 함께' `우리의 금메달' 아니 `우리의 올림픽'에 기뻐할 수 있을까? 장애인 올림픽이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닌, 승부의 박진감을 함께 나누는 스포츠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국민 여러분께 금메달을 보여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죄송합니다 필자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다. 당신들이 왜 죄송하냐고. 죄송해야 하는 건 우리라고. 당신들이 세계 정상을 달리고 있을 때, 미움보다 더 고통스러운 무관심을 보낸 건 우리라고. 당신들이 금메달을 따고도 훈련할 수 있는 여건도, 어엿한 직업도 구하지 못해 생의 벼랑으로 몰아낸 것도 우리라고. 주최국이었던 1988년에 벼락치기로 장애인 선수들을 급조해낸 뒤 손을 놓아버린, 그래서 선수단의 대다수가 30~40대 선수들로만 구성된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고. 48세 아줌마 사수 허명숙 씨가 금메달을 따고도 한 달 60만원씩 지원받는 생계보조금이 삭감될 것을 걱정해야 하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사회보장체계를 만들고, 정확히는 있는지 없는지 신경도 안 쓴 것도 우리라고. 88년 장애인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가운데 여러 명이 구걸로 생을 연명하게 만든 책임도 우리에게 있다고. 무엇보다 `우리'와 `당신들'의 경계선을 그은 것도 `우리'라고. 대회 개막식 선수입장 때, 그리스 선수단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밖에서 자신들의 차례가 오길 기다리며 너무나 신나게 노래 부르고 춤추며, 마치 MT라도 온 듯 잔치를 벌이던 모습을. 그리스 선수단이 입장하는 순간, 지난 하계 올림픽 때와 똑같이 주경기장을 꽉 메운 7만5천 그리스 관중들은 소리 높여 `헬라스!(그리스 사람들이 자기 나라를 부르는 이름)'를 외치며 영웅들을 환영했다. 그들은 모두 축제의 주인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우리'와 `당신들'의 경계는 없었다. 그들은 모두 축제의 주인 여느 때보다 많은 관심 속에 치러진 장애인 올림픽. 이제는 한국 사회에도 `우리'와 `당신들'의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을까? 이제부터는 `우리 다 함께' `우리의 금메달' 아니 `우리의 올림픽'에 기뻐할 수 있을까? 장애인 올림픽이 `신기한 구경거리'가 아닌, 승부의 박진감을 함께 나누는 스포츠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