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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호 2004년 10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개처럼 취재해 정승처럼 쓴다

夫 亨 權(93년 社會大卒)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아들아. 기자 그만 두면 안 되니….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지"  1996년 초 수습기자 시절 새벽 4시에 출근하는 필자의 등을 향해 어머니는 조심스럽게 이렇게 말했다. 일주일 내내 경찰서에서 먹고 자다가 옷가지를 챙기러 집에 갈 수 있는 날은 토요일 저녁. 그렇게 집에 도착한 아들이 잠시 거실에 눕더니 그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새벽 4시가 되자 훈련소 신병처럼 벌떡 일어나 다시 경찰서로 향하자 어머니는 어지간히 마음이 아프셨던 모양이다.  어머니는 그 때를 "주5일 근무를 하고 주말이면 가족과 여가를 보내는 한의사 큰아들의 넉넉한 삶과 둘째 아들(필자) 앞에 펼쳐질 고달픈 삶이 너무 대비되더라"고 회고하신다.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라는 유행가 가사처럼 기자의 삶은 실제로 고달팠다. 특히 젊은 기자들 사이에서 `3D 부서'로 불리는 사회부, 정치부만 전전해온 필자에게 그 고달픔은 가족에게 그대로 전가됐다.
 신문 최종마감 시간인 자정 이전에 귀가하려면 자꾸 뒷골이 당기는 `묘한 병'이 생겼다. 가뭄에 콩 나듯 오후 10시경 퇴근한 필자에게 "아빠, 오늘은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라며 의아해하는 아홉 살 맏딸의 반응이 더 이상 낯설거나 서글프지 않다.  기자 사회의 경구는 대부분 바쁘고 고달픈 생활을 표현하는 것이다. `마감 시간엔 소변 보고 뭐 볼 시간도 없다'가 대표적. `마감 시간엔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눈물 흐를 겨를이 없다'는 反인륜적 표현도 있다.  기자생활의 경구(警句)들  `기사만 안 쓰면 기자가 최고 직업'이란 말은 기사 쓰고 마감시간을 지키는 스트레스의 막중함을 다르게 묘사한 것이다. `선거만 없으면 국회의원이 최고 직업'이라는 경구와 비슷하다. 물론 총선은 4년에 한 번이고, 기자들은 매일 기사를 쓴다는 것이 엄청난 차이이지만….  필자가 2001년 10월부터 2004년 4월까지 편집국 내에서 시간외 수당을 가장 많이 주는 출입처 중 하나인 정당을 담당하면서 체득한 경구가 하나 있다. `개처럼 취재해 정승처럼 쓰자'  나이 40이 넘는 고참 선배 기자들이 단 말 몇 마디를 듣기 위해 남(의원들) 밥 다 먹을 때까지 식당 한 귀퉁이에서 몇 시간을 기다리고 있을 땐 "좋은 대학 나와서 내가 뭐하는 짓이냐. 아이들은 아빠가 이러는 것 알까"라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곤 한다. 그러나 그렇게 주워들은 한 마디가 신문 1면 톱기사를 바꿀 수 있기 때문에 `비참한' 취재 과정을 참아내는 것이다. 취재가 힘들수록 기사는 힘있는 법이니까.  동아일보 7월 9일자 A2면에 보도된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 고구려 삭제 파문' 기사는 한국기자협회와 한국언론재단이 주관하는 `이 달의 기자상(제167회 취재보도 부문)'을 받았다. 중국 외교부가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한국의 3국(고구려·백제·신라) 시대를 소개하는 부분에서 갑자기 `고구려'란 세 글자를 지워버렸다는 내용이었다.  한밤중의 `고구려' 찾기 대작전  필자는 올 4·15 총선이 끝난 뒤 정당팀에서 외교통상부로 출입처를 옮겼다. 당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이미 한·중간 중요한 외교현안이었다. 그 핵심은 중국 정부가 직접 왜곡에 가담하고 있느냐는 것이다. 심증은 충분하지만 물증이 없는 상태였다.  밤마다 외교부 기자실에 남아 서울과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체크하는 `전화 마와리'(경찰서를 돌아다니는 사건기자를 지칭하는 `사쯔마와리 察廻'에서 파생된 기자사회의 은어)를 돌기 시작했다.  7월 8일 오후 11시경 한 외교소식통으로부터 귀가 번쩍 뜨이는 말을 들었다.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에서 최근 고구려가 삭제됐다는 말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사실이면 중국 정부 차원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한 첫 증거가 되는 셈이다.  통일부를 출입하는 金昇鍊(92년 社會大卒)기자, 국방부를 출입하는 崔虎元기자, 黃有成 베이징특파원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중국 외교부 홈페이지를 이 잡듯 뒤지는 대작전을 폈다. 11시45분경 홈페이지의 한국 개황 부분에서 삼국시대 관련 기술 부분에 `신라'와 `백제'만 남아 있는 것이 간신히 확인됐고, 신문의 주요도시 시내판 마감 시간인 자정 전에 서둘러 기사를 출고했다. 그야말로 `개처럼' 헐떡거린 시간들이었다. 그러나 그 기사는 `정승' 이상의 위력을 발휘했다. 한국 정부가 중국 측에 정식으로 항의하면서 고구려사 왜곡 문제는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되기 시작한 것이다.  필자가 기자생활을 하는 한 `개처럼 취재해 정승처럼 쓰자'는 경구는 좌우명처럼 지킬 생각이다. 취재 과정의 심적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을 달랠 수 있는 도구이기 때문이다. 아들을 향해 "사람 같지 않은 기자 생활 그만 두면 안 되냐"고 하시던 어머니는 요즘 이렇게 말씀하신다.  "개처럼 헐떡거리며 열심히 사는 것이 네 팔자려니 생각해라."  필자가 1970년생 개띠고 삼복더위가 한창인 8월 초(양력) 대낮에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이 어머니식 사주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