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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5호 2013년 8월] 문화 꽁트

모란 무늬 코끼리 향로






 K항 상아호의 단골 沈船 포인트가 참사 현장이라는 사실을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몰랐다. 침선 낚싯배들 중에서도 상아호는 유난히 씨알 좋은 우럭들을 박스 가득 담아오곤 했다. 다른 포구에서 출항했던 배들이 겨우 놀래미 몇 마리와 잔 씨알의 우럭 몇 마리 건져오는 날에도 상아호만은 유독 `대박'에 가까운 조황을 보였다.

 우럭 낚시철은 바다 수온이 올라가는 늦은 봄부터 초겨울까지 이어진다. 육지보다 바다는 서서히 뜨거워지다 서서히 차가워지기 때문에 한겨울부터 초봄까지는 우럭들도 바다 바닥에서 먹이를 구하지 않고 동면 상태에 접어든다. 육지와 가까운 바다일수록 쉽게 수온이 내려가서 우럭 낚시철은 더 빨리 끝나고 만다. 겨울 한 철 놀고 지내야 하는 선주들이 근년 들어 새로 개발한 것이 침선 낚시다. 배의 엔진 마력을 높여서 새벽 일찍 출발해 서해 공해상 가까이까지 다섯 시간 정도 달려나가면, 수온이 근해처럼 내려가지 않고 어느 정도 온도를 유지하는 먼바다의 깊은 바닥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우럭이라는 놈들은 주로 바다 밑 돌밭이나 어초 같은 지형에 서식하기 때문에 이 녀석들이 노닐 만한 지형이 아니면 아무리 멀리 나가도 허탕이다. 선장들은 먼바다에 탐사를 나가 어탐기로 바다 밑에 좌초한 침선들을 찾아 나섰다. 난파된 배들이 누워 있는 먼바다의 바닥은 우럭들이 서식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인 셈이다.

 바닥을 뚫고 올라오던 엔진소리가 갑자기 잦아들었다. 목적지 포인트에 거의 다다라 속력을 늦추는 신호음이었다. 깊은 잠에 빠져 있는 것처럼 보이던 낚시꾼들이 예민하게 반응하기 시작했다. 언제 잠에 들었냐는 듯이 일제히 일어나 옷깃을 여미고 갑판으로 올라가는 좁은 나무 사다리로 향했다. 배가 멈추고 선장의 부저 소리가 들리자 꾼들은 무거운 추를 매단 낚싯줄을 일제히 바다로 드리운 뒤 릴의 잠금쇠를 풀었다.

 봉돌이 한참 동안 낙하하다가 침선 모서리에 닿을 무렵 낚싯대가 휘청거리더니 바늘에 무엇인가 덜컥, 걸렸다. 이 경우 낚싯대를 들어 올려 릴을 감을 때 무겁게 끌려 올라오는 느낌이라면 제법 굵은 씨알의 우럭이 매달린 확실한 증거이다. 안타깝게도 바늘이 침선에 걸렸는지 릴이 돌아가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목줄을 끊어내려 낚싯대를 좌우로 흔들어 보았는데, 다행히도 릴이 느리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묵직했다. 수심계가 5미터 안팎을 가리키기 시작할 무렵 수면 위에 떠오를 개우럭에 대한 환상이 심장 뛰는 속도를 빠르게 했다. 힘겹게 릴을 감는 동작을 지켜보던 양 옆의 꾼들이 다가와 대물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드러냈다. 안타깝게도 바늘 끝에 매달린 것은 개우럭이 아니었다.

 지지리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오랜만에 먼바다까지 나온 고생을 만회하려나 싶었는데 엉뚱하게도 이상한 물건이 깊은 바다에서 올라왔다. 남자들이 들고 다니는 그리 크지 않은 가죽 손가방이었다. 지퍼는 녹이 슬어 좀체 열리지 않았다. 옆 사람에게서 회칼을 빌려 가죽에 들이밀었다. 예리한 회칼도 가죽을 비집고 들어가기는 무리였다. 지퍼를 잇는 헝겊 부위에 회칼을 조심스럽게 집어넣어 겨우 가방을 열었다. 내부에서 발견한 것은 가죽지갑 하나와 모란 무늬가 새겨진 코끼리 형상의 향로였다. 지갑 속 주민등록증이 가방 임자를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었다. 오래된 바다 무덤에서 유골이라도 건져낸 듯한 느낌이 꺼림칙했다. 가방을 다시 바다에 던져버리려다 지갑에서 삐죽이 빠져나온 비닐로 코팅된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 젊은 남자와 긴 머리칼이 바람에 날리는 또래의 여자가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이었다.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남자 옆에서 여자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낚시 가방에서 꺼낸 향로를 밝은 불빛에 비춰봤다. 바닷물에 약간 색이 바래긴 했어도 헝겊으로 열심히 닦아내니 은은한 연록의 陶瓷 빛깔이 드러났다. 향로 양쪽에 달린 귀는 코끼리 머리 모양이었고 몸통에는 연한 붉은 빛 모란이 그려져 있었다. 향로를 들고 이리저리 돌려보다 밑바닥에 새겨진 글귀를 발견했다. 세 개의 발이 달린 바닥 가운데 부분에 검은색 붓글씨로 씌어진 문구였다. 문구를 새긴 뒤 유약을 발라 다시 구웠던 모양인데, 오랫동안 바닷물에 시달린 탓에 글씨가 대부분 지워져 해독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원…영…타…서.'

 당시 사고일지를 탐색해봤다. 추석을 맞아 귀성객들을 가득 태운 그 페리호는 십삼 년 전 서해 먼바다의 섬을 향해 가다가 일기예보와는 달리 점차 파도가 높아지자 회항을 하려다 삼각파도에 휘말려 순식간에 침몰하고 말았다. 인근 어선들이 달려와 일부 승선객을 구조하긴 했지만, 해양경비정이 사고 해역에 도착했을 때 바다에는 높은 파도를 따라 승객들의 가벼운 소지품들만 떠다니고 있었다. 그날 남자와 가방은 떠오르지 않았다. 가방의 주인 남자 김연우는 그때 발견하지 못한 실종자 중 한 사람이었다.

 김연우, 남자, 사고 당시 33세, 지금 살아있다면 사십대 중반을 넘어선 나이. 유족 이하원, 사고 당시 31세. 남편의 시신을 끝내 찾지 못하자 임시로 꾸려진 사고대책본부 앞에서 단식투쟁. 20일째 꼼짝도 하지 않고 단식을 하다가 쓰러져 병원으로 이송.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입원가료를 받다가 사라짐. 이상이 신문기사 검색에서 확보한 남자의 유족 이하원이라는 여자에 대한 기록의 전부였다.

 인터넷 검색란에 `이하원'이라는 이름을 쳐 넣고 수많은 동명이인들이 나오는 잡다한 내용을 넘기다가 섬진강 매화마을 명소 섬진가든 사이트에서 잠시 멈췄다. 수염이 텁수룩한 남자와 나란히 서서 찍은 사진 밑에 섬진가든 대표 이하원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바다무덤에서 나온 사진 속 여자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전혀 다른 이미지로 다가오기도 했다.


 매실농원 취재를 마치고 섬진강을 따라 하동 쪽으로 내려가던 길 언덕에 섬진가든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이 내려다보이는 언덕배기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흰색 단층양옥이었는데, 강이 보이는 카페의 정면은 넓은 통유리가 끼워져 있어 전망이 좋았다. 베란다의 늙은 매화나무에서 날리는 매화 꽃잎이 느리게 섬진강 앞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매화만 하느작거리며 떨어질 뿐 카페는 적막했다. 카운터에 앉은 여자가 간혹 음반을 고르기 위해 허리를 굽혔다 펼 때 부드럽게 드러나는 허리 라인이 섬진강물처럼 느리게 움직일 뿐이다. 낙하하는 매화꽃잎을 통유리 너머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데, 여자가 또각또각 발소리를 내며 걸어왔다.

 “이 향로를 어떻게 손에 넣으신 거죠?”

 “침선 낚시를 갔다가 우연히 낚시 바늘에 걸려서 올라왔습니다. 마침 손가방 안에 망자의 신분증도 남아 있더군요. 혹시나 싶어서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남쪽으로 내려오는 길에 들렀습니다.”

 여자가 내놓은 60도를 웃도는 녹향주의 위력은 대단했다. 뜰 바깥 화장실에 갔다가 변기 위에 앉은 채로 잠시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퍼뜩 정신이 들어 고개를 들자 매화가지 어른거리는 쪽창 너머로 벌써 어둠이 내리고 있었다. 서둘러 카페로 돌아왔을 때 여자가 향로를 비닐로 밀봉하고 있었다. 여자가 젖은 눈으로 물었다.

 “혹시 그 자리로 다시 낚시를 갈 일이 있나요?”

 희미하게 고개를 끄덕거리자 여자가 단호하게 말했다.

 “번거로우시겠지만, 이유는 묻지 마시고, 이 거 그냥 그 자리에 다시 돌려주세요.”

 배신당하는 느낌이었다. 죽은 이의 유품을, 아무리 아픈 기억을 건드리는 물건이라 하더라도 이렇게 냉정하게 돌려보내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여자의 충혈된 눈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 천천히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향로를 가방에 집어넣었다. 찻집을 나올 무렵 남정네 하나가 나무를 실은 트럭을 몰고 올라오고 있었다. 천천히 언덕길을 내려오는데 트럭에서 뛰어내린 남자가 여자를 잠시 껴안더니 다정하게 어깨를 감싸고 매화 날리는 통유리 너머로 사라졌다.

 물길이 평탄해도 오늘은 어두운 배 밑창에서 잠을 이루기 쉽지 않다. 오늘같이 잔잔한 날에는 갑판에 나가 양광이라도 쐬면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낚시 가방을 챙겨 배 앞머리 쪽으로 올라갔다. 해가 비치는 각도에 따라서 바다는 다양한 빛깔로 말을 건넨다. 오늘 서해바다는 오랜만에 짙푸른 군청색이다. 낚시 가방에서 향로를 꺼내 여자의 손길이 간 비닐 포장지를 회칼로 찢어버렸다. 향로는 차라리 맨몸으로 남자에게 돌아가는 게 더 나았다. 알몸에서 빛나는 모란꽃이 붉다. 배가 갑자기 속력을 높이면서 몸이 휘청거리는 바람에 향로가 갑판으로 굴러 떨어졌다. 다행히 향로는 꾼들의 낚시 가방 위로 떨어져 깨지진 않았다. 바다 밑 남자가 서러워서 몸부림이라도 치는 걸까. 조심스럽게 향로를 들어 올렸을 때, 향로 바닥의 글자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분명 처음 그 글귀를 접했을 때는 검은 붓글씨였고 몇 글자만 겨우 남아 해독이 어려웠는데, 붉은 글씨로 완성된 문장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향로를 돌려주면서 여인이 복원시켜놓은 듯한 남자의 기도가 바다에 반사된 아침 햇빛에 황금빛으로 흔들렸다.

 `하원 연우 영원히 타오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