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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9호 2004년 10월] 기고 감상평

살맛나는 세상 만들기에 동참하자!

朴恩熙(74년 農大卒) 충주환경운동연합 고문
 졸업한지 30년이 지난 지금, 동창회보는 잊고 지냈던 학창시절을 잠시나마 떠오르게 해주는 오래된 음악과 같은 것이다.  엊그제 환경모임의 일로 안면도를 다녀왔다. 꽃지 해수욕장의 일몰은 참으로 장관이었다. 황금빛 바닷물의 출렁임과 꽃보라의 하늘, 그러면서 서서히 어둠을 받아 내리는 저녁 빛들은 무한한 감동을 주는 청정함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자연의 아름다움을 우리들은 과연 언제까지 가만히 놔둘 수 있을까?  농가정학과를 다니던 70년대에는 환경문제가 거의 없던 시절이었다. 마음껏 수원캠퍼스를 누비며 農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연습림 새벽기도를 통해 이 나라를 사랑하고 농촌을 사랑하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후 직장생활도 하고 결혼도 해 농촌을 배경으로 한 충주, 함경도 끝에서 이어도 끝을 잇는 일직선상 한 가운데에 자리한 중심고을 중원의 땅에 자리잡은지 어언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80년대 중반 충주댐이 생기고 수도권은 한강물을 바탕으로 커져서 지금에 이르렀고 충주를 비롯한 한강 상류 지역 사람들은 개발 제한과 규제로 점점 살기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작년 경우 1년 동안 큰 면 단위 하나인 3천여 명의 사람들이 이사를 갔다.  80년대 땅투기 망령이 횡행하여 산골짜기까지 파헤치고 전국에 온천을 파서 난리를 치던 그 때, 이곳도 예외는 아니어서 달천강(남한강 지류) 상류에 문장대, 용화온천을 개발하려는 투기꾼들과의 싸움으로 이 연약하던(?) 필자까지 환경운동에 뛰어들어 10여 년의 지루하고도 긴 싸움 끝에 승리하는 감격을 맛보았고 달천강의 오염도 막게 됐다. 그 수도 없는 싸움을 하면서 늘 연습림의 새벽하늘과 이슬을 떠올렸다.  태아의 탯줄처럼 나의 내면 의식 속에서 농대는, 農은 살아 있어서 수많은 자양분을 내게 끊임없이 공급해줬다. 필자가 만일 농대를, 농가정과를 나오지 않았다면 그렇게 살갑게 환경운동을 할 수 있었을까? 아니다. 나의 의식은 늘 생명의 소중함, 생명의 원천인 자연에 대한 경이로움으로 차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라고 지금 충주엔 또 하나의 커다란 환경 파괴 사건이 진행되고 있다. 충주의 보물인 탄금호(남한강)에 커다란 다리를 놔서 탄금호를 반으로 토막내고 일본 3대 신성한 보물 중 하나인 칠지도를 만든 철생산지로 추정되는 쇠꼬지와 書聖 金 生유허지를 훼손하는 괴물 같은 국도대체 우회도로이다.  환경단체와 주민은 물론 문화재청과 원주지방환경청도 노선변경을 요구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시하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이고 있다. 이 하늘, 이 땅이 이렇게 상처가 나서 신음하면서 언제까지 우리 인간들에게 자비만 베풀겠는가? 정말 인간들이 이렇게 오만해도 되는 건가?  졸업한지 30년, 이제는 농대 캠퍼스도 옮겨졌고 농가정과도 없어져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많은 인재들을 양성해서 좋은 세상, 살맛나는 세상을 만드는데 큰 기둥이 되는 모교가 되기를 기원한다. 현실적으로 한 가지 더 바란다면 공기 좋고 물 좋은 이 충주로 서울대 전체가 이사 와서 중원의 정기를 받아 세계 제일의 대학으로 발전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