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319호 2004년 10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昔 成 煥(59년 法大卒)前한국전력 외자처장

헌법학 `주권론'시험 과반수 F학점 `충격' 영어문제엔 라틴어 알아듣는(?) 토끼 등장
 대학을 나와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도 두 가지 시험을 잊지 못한다.  첫 번째는 입학시험이다. 1953년 휴전이 되고 서울대학교도 환도해서 1954학년부터 신입생 입시를 서울에서 치렀다. 영어과목 시간에 시험지를 펼쳐든 필자는 처음 문항을 읽어보다 그만 `허허'하고 작은 소리로 웃었다. 그 내용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내용은 이렇다.  어느 대학생들이 사냥을 가기 위한 준비모임에서 교수인 Mr. London을 동행할 것인가를 논의하다가 결국 그가 사냥을 마칠 때까지 조용히 할 것을 약속하면 동행하기로 했다. 드디어 사냥이 시작되고 얼마가 지나 토끼가 발견됐다. 학생들이 살금살금 다가가던 중 느닷없이 교수가 큰 소리를 질렀다. (그것은 라틴어로 `토끼다'는 말이었다) 토끼는 도망가고 사냥은 실패했다. 학교에 돌아온 학생들이 Mr. London에게 왜 약속을 어겼느냐고 물었다.
뜻밖에도 Mr. London은 "아, 토끼가 라틴어를 알아들을 줄은 몰랐지"라고 했다. 지문은 여기서 끝난다. 하도 재미가 있어서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도 부분적으로는 그럴 듯 하면서도 전혀 말이 안되는 말을 하는 사람들이 온 나라를 뒤흔들고 있지 않은가?  두 번째 사례는 1학년 1학기의 헌법학 시험이다. 헌법학의 첫째 논제는 `주권론'이다. 주권에 관한 통설은 우리가 고교시절에 배운 바와 같이 `국가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여기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韓泰淵교수는 이런 거 다 헛소리라고 일축했다. 유럽 각국에 군주제가 물러가고 근대국가가 들어서면서 군주가 가지고 있던 국가의 절대권력에 대신해서 고안된 개념이라는 것이다. 독일 공법학자의 말을 인용해 "주권 개념은 政治神學이다. 실제로는 `힘'을 가진 세력이 권력을 잡고 나라를 다스릴 뿐"이라는 것이다.  韓교수는 "식민지에서 해방된 후진국들이 비록 민주주의 체제를 취한다고 해도 국민들의 민주주의 수행능력 부족으로 독재정치가 된다. 대한민국도 李承晩박사의 카리스마에 의지해 통치되는 일종의 독재국가다"라고 했다. 당시로서는 폭탄선언이나 다름이 없었다. "李박사 이후를 생각해 보라. 민주주의 체제는 유지되겠지만 험난한 역사가 이어질 것이다. 우선 정당이 힘을 쓰는 때가 올 것이니 그때 출세하려는 사람은 지금부터 정당 깃발 메고 다니라. 그러나 결국 특정의 조직 즉 종교집단, 군대(쿠데타) 또는 공산당이 집권하게 될지도 모른다"면서 "내 이야기는 지금은 잘 모를 거야. 먼 훗날 아련한 추억 속에서 이해될 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윽고 1학기 시험이 시작됐다. 헌법학 시험문제는 `주권개념의 정치성'이었다. 설마 `주권개념은 허구다'라는 답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겠지 하면서 당시의 통설대로 답안을 써냈다. 웬걸 F학점이 나왔다(1학년의 3분의 2 가까이가 그랬다). 이래서 모두 韓교수를 기피인물로 생각했다. 더구나 70년대 초 유신헌법을 기초한 장본인이라고 해서 모두 비판했다.  그러나 50여 년 세월이 지나면서 곰곰이 살펴보니 그의 말이 하나하나 현실로 나타나지를 않는가. 오늘날 우리 나라가 이 지경이 될 것을 그는 50년 전에 이미 예견했던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