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4호 2013년 7월] 문화 꽁트
어떤 귀향

남으로 떠나는 마지막 기차가 기적을 울렸다. 여관 주인은 역이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라면서 방세는 선불이라고 말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K역에서 나올 때 부슬부슬하던 빗방울이 제법 굵어졌다. K읍은 김민배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입학한 후 찬바람이 쌩쌩 부는 겨울날이 돼서야 하룻밤을 묵어가곤 했던 고향이었다. 그땐 그래도 그의 어머니와 사촌들이 살았건만, 이제는 찾아갈 혈육도, 집도 없는 곳이 되고 말았다.
“아니 갑자기 웬 출장이세요?”
아내는 출장 때면 늘상 그랬듯이 여행용 가방을 챙기면서 남편의 갑작스런 출장에 입이 씰룩했다.
“응, 그렇게 됐어. 요새 정국에 회사일이라는 게 워낙 알 수 없이 돌아가잖아?”
“그래도 그렇지요. 전화라도 주시지….”
어려워진 회사 형편에 고비를 넘길 때마다 그는 가슴에 사표를 쓰고 다녀야 했다. 耳順을 바라보는 그 나이쯤이면 부장으로 승진했어도 벌써 했어야 했는데, 그는 과장 직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서울 변두리에 가까스로 장만한 아파트 대출금을 갚으면서, 두 아이의 학원비를 대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낡아버린 자가용도 팔아치운 지도 여러 해가 됐다.
늘 출근할 때면 사들고 가던 원두커피 향은 착잡한 그의 마음을 잊게 해주는 위안제였으므로, 그것이 다할 때까지 잠시나마 무념무상에 젖는 것이 그에게는 일상의 거의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과장님, 김 부장님이 찾으시는데요?”
눈이 특히 매력적인 미스 서가 오늘 던져 놓은 첫마디다.
`부장이 이른 시각에 호출을 하다니, 아직 서류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부장도 알 텐데.'
“김 과장, 자네도 알다시피 분단선 너머 공단에 있는 공장이 폐쇄돼 회사가 매우 어렵게 됐다네. 자네가 최선을 다했다는 것을 회사도 잘 알고 있네. 며칠 여행이나 다녀오게.”
그는 부장이 임석한 자리에서 사장이 한 말에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할 줄을 몰랐다. 공단 폐쇄로 회사의 앞날이 어둡다는 것을 충분히 예상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빨리 자기에게 불똥이 떨어질 줄은 몰랐다. 사장인들 어떤 방책이 있겠는가. 두 자식과 어머니, 아내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
`잠깐이면 돼. 곧 돌아올 수 있겠지.'
그는 회사 정문을 나섰다. 대학에 입학하면서부터 이 도시에 던져졌을 때도 이렇게까진 참담하지 않았다. 그때는 총각이었으며, 젊었으므로 두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시위 전력으로 간신히 얻게 된 직장을 갖고서 결혼하고, 아이들도 낳고, 어머니도 모셔왔으므로 이제 겨우 오십을 바라보는 가장으로서의 짐은 이루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누구세요?”
초인종을 눌렀을 때, 낯선 사람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누가 감히 우리의 행복을 넘볼 수 있느냐는 말투이다.
“저예요, 어머님.”
“아니, 아범이 웬일이야.”
“이렇게 일찍. 무슨 일 있으세요.”
아내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돌아서며 말했다.
“응, 급하게 출장을 가게 됐어.”
요란한 발걸음 소리와 사람들의 취한 목소리가 좁다란 여관 복도의 침묵을 잠시 동안 뒤흔들어 놓았다. 바람이 창문을 흔들고 있을 뿐 비는 더 이상 뿌리지 않았다. 그는 여관 문을 나섰다. 여름의 문턱으로 넘어가고 있지만, 비바람은 싸늘한 냉기를 남기었다. 역 앞에서 경찰서로 시원하게 뚫린 사차선 도로를 따라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다. 버스 정류장이 있는 곳 뒤편에 `되는집'이라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안쪽으로 주방이 보이고, 식탁 몇 개와 의자들이 오지 않은 손님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육십을 넘겨 보이는 여자가 반겼다.
“손님이 없나보죠.”
“말도 마세요. 요즘은 아이엠인가 뭣인가 그 때보다 더 해요. 내 장사한 지 삼십년 만에 이런 경우는 처음이오.”
그는 대꾸할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뭘 드실라우.”
“우선 소주 한 병 주세요.”
그는 들어오기 전부터 이 집 간판이 낯익은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썼다. 그 낯익음이 이 집에 들어오게 했으므로.
“보아허니 이곳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아저씨는 어디서 오셨소.”
“이곳이 원래 고향입니다. 잠시 객지에 나가 있었을 뿐입니다.”
“아주머니는 이곳이 고향입니까?”
“임실서 스무 살에 시집와서 아들 둘하고 딸 셋을 낳아 둘은 대학까지 보내고…, 막내만 빼고 결혼도 시켰고…, 참 무던히도 고생했지요.”
여주인은 묻지도 않은 자식 이야기까지 늘어놓았다. 여주인은 말 끝머리에 큰자식은 그래도 우리나라 최고의 명문대학을 졸업했다는 사실을 힘주어 말했다.
“아무나 그런 대학을 들어갈 수 없지.”
그러고 보니, `되는집'의 친숙함은 아들을 명문대학에 보냈다는 소문으로 듣던 바로 그 집에서 연유한 것이었다.
“그 자제분은 자주 연락이 오겠군요.”
“아, 오다마다. 엊그저께도 다녀갔는걸. 이런 시골에서 최고의 대학을 들어갔으니까, 앞으로 큰일을 하는 사람이 돼야지 않겠소. 요즘은 워낙 바빠서….”
여주인의 말 끝머리와 표정으로 보아 분명 뭔가 불편한 심정을 감추고 있는 듯했다. 그는 단숨에 한 잔을 들이켰다.
“갈 데가 없는 게구려.”
여주인은 안주를 놓으며 오랜 시간이 쌓아 놓은 육감으로 던져 놓았다.
`정말 갈 곳이 없단 말인가.'
민배는 문득 혈육을, 친구를 떠올려 보았다. 오래전에 어머님도 서울에 올라오셨고, 남아 있던 외숙모도 아들 따라 인천으로 올라갔고, 친구들도 도청 소재지로 다들 나가고 없었다.
식당 문이 열리고 옆에는 기다란 연장 가방을 멘 서너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여주인과 그들은 초면이 아닌 듯 대충 인사를 하는 사이에 그녀는 소주병을 들고 갔다.
“오늘은 돈벌이가 괜찮았소?”
“말도 마쇼 원, 뭔놈의 비가 그렇게 오는지.”
“거 뭣이냐 김 사장도 튀었다며. 나 참, 그 양반한테 받지 못한 돈이 있는데.”
“글쎄, 그 돈 받을 수 있을까?”
“우리같이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사람들은 하루살이 인생인데, 그 돈마저 떼인다면 어찌 살라고.”
“가진 사람들이 더하는구먼.”
“한 잔 하세나.”
하루살이 인생. 그 하루살이 인생이 그에게 그렇게 멀게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친구 아버지도, 그 친구도 막노동자였다. 그의 아버지는 술로 노동을 달래다가 결국은 알코올 중독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역시 가계의 대를 잇듯이 막노동꾼으로 나갔다. 토목기사 자격증만 따면 무언가 해볼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서 어느 전문대학 토목공학과를 다니기도 했지만, 그의 소망이 이루어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는 위암을 얻었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되는집'을 나온 그는 K역 광장에 있는 시계탑을 보면서 전화기를 들었다.
“여보세요, 당신이에요. 왜 이렇게 소식이 늦었어요.”
“응, 도착하자마자 할 일이 있어서, 깜박했네. 어머님은 잘 주무시지. 애들도 잘 자고?”
“네, 염려 마세요. 하시는 일이나 잘 마치고 돌아오세요. 숙소는 정하셨지요. 숙소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응, 지금 밖인데, 아까 숙소를 나오면서 그냥 나왔거든. 그래서 전화번호를 알 수 없으니까, 내일 아침에 다시 연락할게.”
“그래요. 그럼 내일 아침에 꼭 연락 주세요. 참, 언제 돌아오실 거예요.”
“내일이나 모레쯤, 그럼 내일 아침에 봐요.”
휴대폰으로 연락하면 될걸, 아내는 늘 숙소 전화번호를 요구한다. 그것은 가족에 대한 아내의 보호 본능에서 나온 것일까. 그는 형광등을 켜지 않았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불빛이 없음으로 안과 바깥이 소통할 수 있는 세계라는 것이 좋았다. 역 앞 광장의 가로등 뒤로 끝도 없는 검은 바다가 펼쳐 있었다. 별도 달도 그 속에 묻혀버린 밤. 그는 검은 물 속에 한동안 잠겨 있었다.
꿈속에서 그는 대학 시절의 겨울 어느 날, 서울로 향하는 기차를 타고 있었다. 그는 차창 너머로 듬성듬성 하얀 이를 드러내고 있는 눈 덮인 들판을 보고 있었다. 그는 그것들이 뭔가 말을 건네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내려고 애썼다. 그것은 삼십 년 전의 마을 어른들의 목소리였다. `요새 공부 잘 하고 있는가', `그 데모하는 데는 휩쓸리지 마소', `꼭 성공하게', `자네는 우리 마을과 나라의 기둥이 돼야 하네'. 그는 언젠가 저 눈도 녹아내릴 것이며, 그러면 마을 어른들의 목소리도 함께 녹아내릴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기차는 선로에 쌓인 눈을 흩뿌리며 북으로 달리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