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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호 2013년 5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서울대 출판문화원이 할 일



 요즘 사람들은 책을 잘 안 읽는다. 당연히 책이 덜 팔리고 있다. 실제로 10년 전에 전국에 6천 개소에 달하던 서점들이 이제 1천5백 개소도 채 안 된다. 우리나라의 출판은 1년 매출이 약 4조원 가까운 시장이다. 그러나 대부분이 어린이 도서나 초·중·고 참고서이고 실제 순수 학술출판사는 시장 규모가 다 해봤자 수백억원에 불과한 셈이다. 전반적으로 책이 안 팔리다 보니 학술서적을 전문으로 하는 대학출판사들은 거의가 적자로 학교로부터 별도 지원을 받거나 심지어는 문을 닫거나 외부에 위탁운영으로 전환하는 수가 많다.

 흔히 책은 안 보고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인터넷 그리고 스마트폰 앱의 정보만 보아도 쳐지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은 요즘 의료정보나 다양한 예술 교양적 지식들을 책을 사지 않고 인터넷에서 얻는다. 대영백과사전이 매년 출판하던 것을 멈추고 그 위치를 위키피디아가 대신하게 된 것을 보면 문자로 된 책의 한계와 빠르게 확대되는 멀티미디어의 지적 영향력을 실감할 수 있는 시대다. 지식의 생산자들이 대학 교수 같은 전문인들이기보다 요즘에는 인터넷 콘텐츠에 참여하고 스스로 정보를 올리기도 하는 일반 군중이라고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군중이 만들어 내는 지식정보도 그냥 만들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예컨대, 얼마 전 보부상 이야기들이 텔레비전 드라마들마다 유행처럼 쏟아져 나온 일이 있다. 金周榮의 `객주'나 崔仁浩의 `상도'가 독자들에게 주었던 감동을 영상으로 다시 창조해낸 결과라고 본다. 그러면 `객주'나 `상도' 같은 보부상 관련 소설들이 옛날에는 없다가 갑자기 많이 나온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조선 후기 보부상에 대한 학계의 다양한 연구업적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오늘날 상당한 대중적인 지식 콘텐츠들도 사실은 학계의 깊은 원천 지식의 창출이 선행돼야 가능하다는 말이다. 서울대학교 출판문화원은 바로 이런 원천 지식을 생산하는 데 그 첫째 존재 의의를 두고 있다. 해마다 학술원 선정 우수도서에 다른 출판사들과는 비교도 안 되게 많은 책이 뽑히는 것이 바로 보람이다.

 사실 우리나라 학문의 거의 모두가 따져 올라가 보면 서울대 각 학과의 역사적 발전과 맥을 같이 한다. 그래서 최근 서울대 출판문화원에서는 `SNU 스토리 플러스사업'도 벌여 왔다. 예컨대, 서울대 조각과 출신들 중심 한국 조각사의 숨은 이야기들을 엮어 놓은 `빌라다르와 예술가들', 한국신경외과학의 선구자인 沈輔星교수의 전기를 다룬 `심보성', 또 한국 정치학의 선구자였던 閔丙台교수의 이야기를 쓴 `공삼 민병태 교수의 정치학', 한국을 사랑한 선교사로서 서울대 수의학을 이끌어 준 스코필드 박사의 자료를 모아 놓은 `강한 자에는 호랑이처럼 약한 자에는 비둘기처럼' 등은 정말 서울대의 귀한 이야기들일 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학문의 소중한 정신적 유산으로서 생각된다. 아주 최근에는 한국 사회의 최고 인맥이라고 여겨졌던 서울대 법대 출신들의 이야기를 다룬 `서울법대시대'가 올 초에 정년을 한 崔鍾庫교수의 노력으로 결실을 맺었다.

 앞으로도 우리 나름의 원천 지식을 발굴 체계화하고, 서울대인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학문공동체의 성과를 찾아내고 만들어 나가는 일이 바로 서울대 출판문화원이 할 일이다.